[출처: Getty Images] 2022 월드컵 개최국인 카타르 당국은
[출처: Getty Images] 2022 월드컵 개최국인 카타르 당국은 “인종, 배경, 종교, 성별, 성적 지향, 국적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환영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공공장소 애정 표현은 카타르 문화가 아니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주변 남성들의 성차별적 모욕이 최악에 달했던 어느 날, 밀리 라콤은 어떻게든 마음을 진정시킨 뒤 브라질의 축구 경기장을 떠났다.

라콤은 “여자친구와 상파울루 경기를 보러 갔다. 실책이 나오니 뒤에 있던 한 남자가 화를 내며 내 좌석 뒤를 발로 찼다. 항의했더니 내게 닥치라며 레즈비언을 비하하는 욕설을 내뱉었다”고 말했다.

라콤(55)은 브라질 성소수자(LGBTQ) 작가다. 경기를 관전하는 동안 앞으로 집에서 TV로만 봐야겠다고 계속 생각할 만큼 불쾌한 경험을 했다. 그래도 아직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라콤은 BBC에 “나는 경기장에서 여성으로서나 레즈비언으로서 전혀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편견, 괴롭힘, 공격성이 지나치다”며 “여성과 성소수자는 우리에게 적대적인 스포츠를 좋아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2022년 FIFA 월드컵이 다가오자 개최국인 카타르를 향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출처: Getty Images]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경기를 관전하는 LGBTQ 팬의 안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출처: Getty Images]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경기를 관전하는 LGBTQ 팬의 안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카타르가 동성애자·양성애자·성전환자 권리를 억압하는 상황이 계속 회자되고 있으며, 경기를 관전하는 LGBTQ 팬의 안전도 우려된다.

카타르 당국은 “인종, 배경, 종교, 성별, 성적 지향, 국적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환영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지만 “공공장소 애정 표현은 카타르 문화가 아니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준수해야 할 규범이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한편, 축구팬의 동성애 혐오는 축구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다. 선수와 축구협회가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증가하는 문제

월드컵 기간 동안 주장이 무지개색 완장을 착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는 프로 축구 경기에서 성 지향성 관련 증오 범죄의 신고 횟수가 증가했다.

영국 내무부 발표에 따르면, 2021/22 시즌에 130건 이상의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5년 전 집계를 시작한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출처: Getty Images] 영국 축구클럽 가운데 LGBTQ 팬 그룹들이 늘고 있지만, 경기장에는 여전히 남성집단 위주의 관람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출처: Getty Images] 영국 축구클럽 가운데 LGBTQ 팬 그룹들이 늘고 있지만, 경기장에는 여전히 남성집단 위주의 관람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양성애자이고 팟캐스트 프로듀서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 토미 스튜어트는 “여자친구들과는 경기를 보러 가서 키스한 적도 있지만, 축구장에서 남자와 손을 잡는다면 불편한 분위기가 느껴질 것”이라며 “나는 키 1.85m, 몸무게 95kg의 남성”이라고 덧붙였다.

스튜어트는 경기장 관중석에서 문제가 발생한 상황을 직접 목격한 적은 없지만, 영국과 세계 각국의 전형적인 축구팬 집단은 주로 남성이고, 이성애자이고, 종종 만취 상태이며, 본인처럼 몸집이 큰 사람에게도 위협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스튜어트는 “여성과 LGBTQ 사람들은 분위기에 적응하기 더 힘들 것이 분명하다”며 “얼마 전 원정경기 관람을 갔는데 주변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서포터들이 동성애 혐오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정말 불편했다”고 설명했다.

영국 당국은 지난 몇 년 동안 관중석의 인종차별과 동성애혐오를 통제하기 위해 일련의 조치를 취했다. 그 일환으로 모욕적·폭력적 행동을 하는 팬들을 경찰이 구금하기도 하지만, 스튜어트는 동성애 혐오가 딱히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멕시코의 응원 문화

멕시코 또한 같은 골칫거리를 안고 있다. 멕시코는 미국·캐나다와 함께 다음 월드컵의 공동 주최국이며, 경기장의 ‘파도타기 응원’이 만들어진 곳으로 더 유명하다.

멕시코 서포터들도 동성애자 모욕을 경기 중 구호처럼 외친다. 축구협회는 이를 막기 위해 수년 동안 노력해 왔다.

국제대회 남자대표팀 경기에서도 모욕적 구호가 들렸다.

2021년 11월, 국제축구연맹(FIFA)은 멕시코에 월드컵 예선 2경기를 비공개로 치르도록 명령했다. 최대 5년 동안 가해자 출입을 금지하겠다는 멕시코 스포츠 협회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올해 초 미국과의 홈 경기에서 모욕적 구호가 다시 울려 퍼졌다.

멕시코 LGBT 인권운동가 안도니 벨로는 지난 8월 기자 회견에서 “멕시코인이 이 구호를 수출한다고 알려졌다”고 말했다. 현재 브라질과 미국의 프로 경기에서도 같은 구호가 들린다는 보도를 암시한 것이다.

“우리는 경기장의 모욕적 구호를 반드시 근절해야 합니다.”

[출처: Getty Images] 현재까지 세계 최고리그에서 활동하며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한 선수는 1990년 영국의 저스틴 파샤누 단 한 명뿐이다
[출처: Getty Images] 현재까지 세계 최고리그에서 활동하며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한 선수는 1990년 영국의 저스틴 파샤누 단 한 명뿐이다

LGBTQ 선수의 존재

남자축구 선수의 LGBTQ 커밍아웃 비율은 미미한 수준이며 현재까지 세계 최고리그에서 활동하며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한 선수는 1990년 영국의 저스틴 파샤누 단 한 명뿐이다.

토미 스튜어트는 “동성애자 축구 선수가 수천 명은 있겠지만 커밍아웃하지 않는 건 어떤 모욕·폭력에 처할지 끔찍하기 때문”이라며 “남자 축구업계에 문제가 있다는 가장 큰 신호”라고 말했다.

11월 11일(현지시간) 기준, 동성애자임을 알리고 카타르 월드컵에 참가하는 선수는 2021년 10월 공개 커밍아웃한 호주의 조시 카발로 선수가 유일하다.

여자축구의 상황을 보면, 가장 유명한 미국의 메건 러피노 선수가 레즈비언임을 공개했고 농구 선수인 수 버드와 결혼했다. 유로 2022 토너먼트에서 우승한 잉글랜드 대표팀에는 “당당하게 커밍아웃한” 선수들이 몇 명 더 있다.

이 주제는 아프리카에서도 논란거리다. BBC 리얼리티체크(Reality Check) 팀의 2021년 분석에 따르면, 법적으로 동성애를 범죄로 규정하는 국가가 69개국이고, 그중 절반 가까이가 아프리카 국가였다. 여기에는 아프리카 여자축구 강호인 나이지리아도 포함된다.

2016년 나이지리아가 리우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지 못하자, 나이지리아 축구연맹의 세이 아킨운미 부회장은 부진한 경기력을 “여성 동성애(lesbianism)”의 탓으로 돌렸다.

[출처: Getty Images] 레즈비언임을 공개하고 여자농구 선수와 결혼한 미국 여자축구의 메건 러피노(왼쪽)
[출처: Getty Images] 레즈비언임을 공개하고 여자농구 선수와 결혼한 미국 여자축구의 메건 러피노(왼쪽)

‘자취를 감추는 팬들’

인도네시아에서 동성애는 범죄가 아니지만, 결혼·입양 등 일련의 권리는 제한된다.

또한, 인권단체에 의하면 차별도 만연하다.

자카르타의 LGBTQ 마케팅 컨설턴트인 스탠이 지난달 동부 자바 스타디움에서 130명 넘게 사망한 참사가 발생하기 전부터 축구 경기 직관을 피한 것도 이해가 된다.

성이 아닌 이름만 밝힌 25세 남성 스탠은 “4년 전 경기를 보러 갔는데 관중이 선수와 다른 서포터에게 동성애 혐오적 모욕을 구호처럼 외쳐서 정말 놀랐다. 내게 경기장이 안전한 장소가 아니라는 점이 슬프다. 축구업계는 나처럼 축구를 정말 사랑하는 LGBTQ 팬을 놓치고 있다”고 말했다.

해결은 장기전

좋은 소식은 전 세계 스포츠 협회와 축구클럽이 LGBTQ 팬과 함께하고 동성애 혐오 행위를 억제하려는 노력을 강화 중이라는 것이다. 다양한 팀에 LGBTQ 서포터 그룹이 있다.

그러나 밀리 라콤은 “이성애자 경기”라는 축구의 이미지를 바꾸려면 모든 측면에서 더 많은 교육성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라콤은 “여성용으로 디자인된 축구 유니폼 상품이 나온 것도 얼마 안 됐다”며 “여성과 LGBTQ도 축구경기의 일원이 되길 원하지만, 현재 축구는 여성혐오와 동성애혐오와의 싸움에서 혐오자들의 마지막 보루처럼 남아 있다”고 전했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
0
+1
0
+1
0
+1
0
+1
0

랭킹 뉴스

실시간 급상승 뉴스 베스트 클릭

금주 BEST 인기글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