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Getty Images] 이 사진은 실제 인물 및 사건과 관련이 없습니다
[출처: Getty Images] 이 사진은 실제 인물 및 사건과 관련이 없습니다

지난달 일어난 이태원 참사는 158명의 목숨을 앗아갔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남겼다.

사고 현장에 출동한 구급대원들도 예외는 아니다. BBC 코리아가 인터뷰 한 대원들은 끊임없이 떠오르는 이태원 골목길, 희생자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사고 조사 과정에서의 혼란 등을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자꾸만 떠오르는 그날의 기억

“(소방대원으로서) 뭐라고 얘기하기가 조심스러워요. 우리는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해 얘기하지만, 유가족이 겪은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테니까요.”

서울 중부소방서 신당119센터 소속 권영준 대원(50)은 사고 발생 초기에 현장에 출동한 대원 중 한 명이다. 베테랑 대원인 그에게도 이렇게 사상자가 많은 사고 현장은 처음이었다.

권씨를 비롯한 구급대원들은 이태원역 부근에 구급차를 세워놓은 채 들 것과 제세동기를 갖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쓰러진 사람들에게 CPR(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CPR은 3명이 번갈아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사상자가 속출하면서 주변에 있던 시민들까지 나섰음에도 손이 턱없이 부족했다.

“사고 발생 시간으로부터 시간이 20분 이상 흘렀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지금 내가 가슴 압박하고 있는 분이 과연 살 수 있을까, 그래도 운이 좋으면 살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10명 중에, 아니 20명 중에 한 분이라도’ 이런 마음으로 CPR을 했어요.”

권 대원은 “사고가 일어난 지 4~5일 후에 이태원 안전센터에 갈 일이 있었는데 골목에 가는 순간 머리가 찡하면서 누가 내 가슴을 누르는 것 같이 아팠다”며 “그때 제가 가슴 압박했던 분들, 돌아가신 그 영혼들이 가슴을 누르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골목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그곳을 빠져나와야 했다.

5년차 인천 남동소방서 119안전센터 소속 유병혁 대원(32)은 사고 발생 후 구급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출동했다. 희생자들과 마찬가지로 이태원에서 핼러윈을 즐기는 젊은 구급대원으로서, 사고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고 했다.

“저도 (사고 현장에) 그렇게 많은 시체가 있는 걸 보는 게 처음이었어요. 그 상황이 마치 전쟁터나 지옥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게다가 그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귀가하지 않고 그대로 놀고 있었거든요. 사람들이 불과 2m도 안되는 거리에서 노래 부르면서 춤추고 술 마시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 장면이 굉장히 큰 트라우마로 남았어요.”

‘내 PTSD를 남에게 전가할 수는 없어’

이태원 사고 현장에 출동한 구급대원들을 대상으로 심리 상담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상담에서조차 트라우마를 털어놓는 것을 힘들어하는 대원들도 있다.

권 대원은 1차 심리 상담은 받았지만, 2차 심리 상담은 아직 받지 못했다.

“대원들끼리도 이태원 참사 얘기를 잘 안 해요. 자꾸 그 일이 떠오르니까… 얘기할수록 스스로 힘들어지고, 기운도 안 나고, 일하는 게 더 힘들어지니까요. 아마 (소방대원의) 절반 정도는 이 일을 그냥 가슴에 묻을 텐데, 이런 일이 쌓이고 쌓이다가 자기 개인적으로도 힘든 일이 생기면 상황이 심각해질 수도 있죠.”

부산광역시 소방재난본부 구조구급과 소속인 배한진씨(41)는 “PTSD가 자주 쓰이는 말이다 보니 가볍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실제 생활상의 어려움으로 이어지는 심각한 정신적 장애”라며 “구급대원들 중에는 사고 현장에 가면 손이 떨리고 심장이 두근거려 몇 년이 지나도 그곳에 가지 못 하는 사람들도 있다”라고 말했다.

유 대원은 상담 대신 혼자 조용히 휴식을 취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근무 여건상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근무 특성상 제가 휴가를 가더라도 누군가 제 자리에 들어가야 해요. 근데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지금 제가 휴가 가면 2교대로 돌아가게 되죠. 지금도 다른 근무자가 일주일 휴가를 가서 일주일 동안 24시간 근무하고 24시간 쉬고를 반복하는 중이에요. 제가 (이태원 참사) 트라우마 때문에 특별 휴가를 받는다고 해도 누군가는 지금의 저처럼 24시간 동안 근무해야 한다는 건데, 그 사람도 또 다른 출동을 나가면서 트라우마를 겪잖아요. 그러면 내 PTSD를 지우기 위해 남한테 PTSD를 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죠.”

지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 동안 전국 소방공무원 수는 약 30% 늘어 6만4768명에 달한다.

하지만 인구 과밀 지역으로 구급 출동 건수가 월등히 많은 서울 및 경기 지역 구급대원 사이에서는 인력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해당 지역 구급대원 1인당 연간 출동 건수는 365건을 넘는다. 1년 동안 매일 1건 이상 출동했다는 뜻이다.

유 대원은 “(이태원 참사 같은) 대형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게 가장 좋지만 언제 또 이런 대형 사고가 날지 모르는 상황에 잘 대처하려면 대원들도 어느 정도 좋은 컨디션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현재로선 트라우마를 해소할 기회가 상당히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꼬리 자르기식 수사’ 비판도

이태원 참사 원인 및 책임 규명을 위해 꾸려진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경찰과 소방 등 실무자들을 중심으로 수사를 진행하면서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특수본은 용산 소방서장과 팀장급 관계자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한 상태다. 특수본은 소방 대응 2단계 발령 시점 등을 근거로 이들이 적절한 예방 및 구호 조치를 취했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이에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공노총)은 이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직무유기 ·업무상과실치사상·직권남용으로 고발하고 진상 규명 및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

같은 날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 소방본부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이태원 참사의 책임자 처벌과 하위직 소방관들에 대한 수사 중단을 촉구했다.

앞서 한국노총 공무원노동조합연맹(공무원연맹) 전국소방안전공무원노동조합도 성명서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참사의 진상 규명과 책임소재를 가리는 일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면서도 “그러나 국민의 안전을 담당하고 있는 장관을 비롯한 책임있는 당국자들의 몰지각한 책임회피와 무책임한 변명이 횡행하는 상황에서 정부 당국이 현장 실무 지휘자들에게만 책임을 떠넘기며 책임회피를 시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소방뿐만 아니라 일부 여론 조사 결과에서도 이 장관 사퇴 여론은 50%를 넘었다.

장관은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현재의 자리에서 제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제 책임을 가장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
0
+1
0
+1
0
+1
0
+1
0

랭킹 뉴스

실시간 급상승 뉴스 베스트 클릭

금주 BEST 인기글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