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가 자연적인 현상이고, 어느 순간 지구가 스스로 회복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인류를 제외하고 생각하면 그럴 수 있겠죠. ‘지구의 안녕’과 우리 ‘인류의 안녕’은 또 다른 얘기라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남극 연구자 진경)
전 세계가 기후변화로 들썩인다. 많은 사람들이 기후행동에 나서는 가운데, 기후 과학자들도 연구실 밖으로 나왔다. 기후위기가 인류를 위협할 정도로 성큼 다가왔다는 과학자들의 경고는 무겁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이달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7)에서도 과학자들의 우려와 엄중한 경고가 이어졌고, 개최국 이집트의 삼엄한 감시에도 불구하고 시위대는 행사장 안팎에서 시위를 벌였다.
한국의 기후과학자들은 현재 기후변화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BBC 코리아가 ‘기후변화의 척도’로 알려진 남극과 북극을 연구하는 한국의 젊은 기후과학자들을 만났다.
![[출처: BBC] 극지연구소(KOPRI) 소속 진경 빙하환경연구본부 책임연구원(왼쪽)과 김승희 원격탐사빙권정보센터 선임연구원](https://c.files.bbci.co.uk/2E18/production/_127600811_d16cd1bd-96cb-4118-a624-9b3b1be86ab2.jpg)
‘이제는 북극만 아니라 남극도 녹고 있다’
남극 연구자인 진경씨는 그 어느 때보다 기후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진씨는 인천 송도에 위치한 극지연구소(KOPRI) 빙하환경연구본부 책임연구원으로서 남극 빙하가 녹아서 발생하는 해수면 상승 예측 연구를 하고 있다.
“내륙을 통해 남극에 들어가려면 단단하게 얼어있는 해빙(바다얼음) 위에 비행기를 착륙시켜야 돼요. 그런데 최근에 남극에도 온난화가 진행돼 해빙이 얼어 있는 시기가 조금씩 줄어들면서 의지와 상관없이 (남극에서) 빨리 나오거나 더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죠.”
지금까지 남극은 북극에 비해 기후변화 양상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곳은 아니었다. 바다에 크고 작은 해빙이 많이 떠 있는 북극과 달리 남극은 얼음이 넓은 대륙을 덮고 있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해빙은 햇빛 대부분을 반사하는데, 지구온난화로 얼음이 녹으면서 바다가 더 많은 햇빛을 흡수하고 이에 따라 더 많은 얼음이 녹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러한 작용을 ‘얼음 반사 피드백’이라고도 부른다.
이미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2050년쯤이면 북극에서 여름철에는 해빙을 보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런데 이제는 북극뿐만 아니라 남극마저도 녹고 있다.
진 연구원은 “남극은 땅 위에 있는 굉장히 큰 얼음 덩어리이기 때문에 이전에는 지구가 따뜻해져도 빨리 녹거나 변화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그런데 최근 10년 동안 남극 빙하가 녹는 속도가 지난 10년에 비해 3배 이상 빨라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했다.
특히 ‘스웨이트 빙하(Thwaites Glacier)’는 전 세계 연구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약 19만2000㎢로 한반도(22만㎢)와 비슷한 크기의 초대형 빙하다.
연구자들은 이 빙하가 현재 전 세계 해수면 상승분의 4%를 차지하며 다 녹을 경우 해수면을 50cm 이상 높일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지구 종말의 날 빙하’라고도 불리는 이유다.
진 연구원은 “이 빙하는 일종의 코르크 마개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이 빙하가 없어지면 주변 서남극 빙하들이 연쇄적으로 녹아 해수면이 5m 가까이 상승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극지의 얼음이 녹으면 수백만 명이 마시고 사용할 물이 사라지고, 얼음이 녹는 과정에서 오랜 시간 묻혀있던 온실가스가 대기 중으로 배출되면서 지구온난화를 가속화 할 수 있다.
특히 해수면 상승은 여러 국가에게는 ‘실존’의 문제다. 피지, 통가, 투발루, 키리바시 등 남태평양 섬나라들은 30년 내에 국가의 일부 또는 전체가 수몰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출처: Reuters] 미국과 유럽 등 세계 곳곳에서 기후과학자들이 시위를 벌이며 기후대응을 촉구하고 있다](https://c.files.bbci.co.uk/12399/production/_127494647_559d3a69-19c9-4605-b984-87067d4d0af4.jpg)
‘한국에 기후변화 부정론자 많지 않아’
기후변화가 빨라지고 있다는 건 대부분의 기후과학자들이 동의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사실 국내에서는 기후 과학자들이 단체 행동에 나서거나 과격한 발언을 하는 경우가 많진 않다.
진 연구원은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인간 활동으로 인해 기후변화가 발생했다고 믿는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기후변화가 문제이고, 그 문제가 인간 활동 때문에 발생했다는 얘기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거죠.”
국내에서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사람들을 설득할 필요성이 많지 않다보니 기후 과학자들도 과격한 발언이나 활동 대신 기후변화의 문제점과 정보를 전달하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2020년 글로벌 여론조사 업체 입소스가 29개국 16~74세 인구 2만590명을 조사한 결과 인간 활동이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믿는 사람의 비율은 헝가리가 91%로 가장 높았고, 한국이 86%로 뒤를 이었다.
이외에도 ▲인도 83% ▲영국 81% ▲독일·중국 76% 등이었으며 ▲미국(66%) ▲러시아(63%) ▲일본(53%)은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진 연구원은 “기후변화 부정론자가 많은 나라는 에너지 등 화석 연료와 관련된 산업이 굉장히 중요한 경우가 많다”며 “이 경우 기후 변화 이슈 자체가 경제 활동에 타격을 주기 때문에 이를 부정하는 쪽으로 홍보 활동을 벌여왔다”라고 했다.
또 “우리나라 국민의 경우 인터넷이나 책 등을 통해 나름대로 정보를 수집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특성이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승희 선임연구원은 극지연구소 원격탐사빙권정보센터에서 인공위성을 활용한 극지 연구를 하고 있다. 그는 최근 폭우로 침수 피해를 겪은 수재민이기도 하다.
그는 “사람들은 기후변화에 관해 나름의 이유를 들어 다양한 의견을 갖고 있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부정론자들이 ‘틀렸다’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도 비와 눈이 더 많이 오는 등 기후가 실제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기후변화를 믿는 사람은 더 많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골든타임’ 지났나?
역설적이게도, 기후변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일부 사람들은 ‘기후블루스(기후우울)’로 인한 무력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수 년, 또는 수십 년 안에 지구와 인류가 멸망할 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힌 사람들도 있다.
2020년 여성환경연대가 전국 269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이 높은 집단일수록 기후우울이 높게 나타났다. 환경부도 국가환경교육센터를 통해 기후우울증을 정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진 연구원은 “젊은 세대의 경우 기후위기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이걸 일상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그러면서도 더 나은 기후를 위해 행동을 조금씩 바꿈으로써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조언했다.
노력하면 지구온난화를 완전히 막을 수 있을까? 위기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시간, ‘골든타임’에 대해서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조금씩 갈린다.
현재로선 2015년 파리협정에서 제시된 ‘1.5도’가 마지노선으로 언급된다. 기후변화를 효과적으로 막으려면 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1.5도 높아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4월 발표된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제3실무그룹 6차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를 1.5도 아래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2025년부터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감소하기 시작해 2030년에는 43% 줄어들어야 한다.
이번 COP27에서도 회원국들은 최종 결의문에 지구 평균 온도 상승폭 1.5도 제한 목표를 더 강력한 언어로 명시하는 것을 두고 좀처럼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결국 COP27은 폐막일인 18일(현지시간)을 넘어 연장됐다.
김 연구원은 “사실 지구의 자정 능력을 믿는 편이고 오히려 거대한 자연 앞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거대한 지구를 망친 게 인간이라는 건 확실하고, 적어도 더 망쳐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진 연구원은 “이미 골든타임이 지났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과거 몬트리올 의정서를 통한 염화 플루오린화 탄소(CFC) 사용 금지 등 성공적인 사례를 생각하면 약간 희망이 있다”며 “인류 공동의 문제인 만큼, 공동으로 노력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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