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Getty Images]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많은 여성들이 부모가 된 것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https://c.files.bbci.co.uk/16FDE/production/_127747149_bb250328-e900-4de6-8de2-3ff776eb3581.jpg)
모성의 역설
호주 시드니의 모성애 연구 사회학자이자 팟캐스트 ‘굿 이너프 마더’의 진행자인 소피 브록은 “모성의 양가성은 (역설적인 감정들의) ‘그리고(and)’를 포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엄마들은 너무 많은 역설을 마주하며, ‘사실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을 둘 다 느낀다’고 말하는 게 양가성”이라는 것이다.
‘아이와 늘 같이 있고 싶지만 그렇다고 1분도 더 같이 힘들다’, ‘아이의 존재에 감사하지만 (출산 이후) 바뀐 삶은 견디기 힘들다’, ‘가능한 최고의 엄마가 되고 싶은데 내 정체성이 얼마나 변했는지 생각하면 화가 난다’, ‘아이를 강렬하게 사랑하지만, 또 동시에 아이가 밉다’ 등의 감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양면성을 산후우울증이나 불안 증세와 같은 정신 건강 상태로 착각할 수도 있다. 물론 이 모든 걸 동시에 경험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을 외부로 드러내지 않는다면 모성의 양가성은 정신 건강을 더욱 해칠 수 있기에 자신이 양가성을 느낀다는 생각이 들면 전문가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양가성은 비정상적이거나 이상한 게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 모성 정신 건강 전문 상담사로 일하는 케이트 보르사토는 “상담한 거의 모든 엄마들이 ‘엄마’라는 역할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면서 “당연하다. 이들의 삶은 (출산과 육아로) 크게 바뀌었다. 삶의 정말 모든 부분, 즉 자신감을 느끼는 부분도,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미 로스앤젤레스에서 코미디언 및 디지털 크리에이터로 일하는 제시카 로즈는 이를 직접 경험했다. 20대 초반 어린 나이에 임신한 로즈는 임신을 유지할지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하지만 저는 당시 ‘난 할 수 있어. 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31살이 된 지금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내 삶은 정말 모든 측면에서 복잡해졌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21살의 저는 정말로 이 모든 것을 조금도 이해하거나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고군분투
엄마가 된다는 건 언제나 힘든 일이다. 그러나 특히 현대 사회에선 더욱 그렇다. 20세기 초반과 달리 오늘날 어머니들은 직장에서 높은 성과를 거두고 다른 사회적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면서도 자녀들에게 시간, 노동, 감정, 정신, 재정적으로 ‘올인’하라는 기대를 받는다.
1996년 이러한 사회문화적 기대엔 ‘집중적인 모성’ 이데올로기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다.
더욱 문제가 되는 부분은 부모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현실을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와중에도 여성들은 이러한 이상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점이다.
일례로 전 세계적으로 부유한 국가 중에도 출산ㆍ 육아휴직이 4개월이 채 되지 않은 국가가 존재하며, 영국의 경우 맞벌이 가정 내 여성의 소득 절반 이상이 육아에 들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브록은 “엄마들 대부분 자신이 과도한 부담에 시달리며, 감당할 수 있는 이상으로 과로하고, 감정적인 노동이나 가사 노동의 대부분 떠맡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그렇지만 사회는 엄마들에게 ‘난 이 모든 걸 해낼 수 있어. 난 완벽한 엄마이니까. 난 고통받고 있지 않아’라는 가면을 쓰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두 아이의 엄마이자 미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정치 자선 활동가로 일하는 알렉시아 캐리(35)는 임신 중일 때부터 모성의 양가성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사실 이는 드문 일이 아니다.
캐리는 “임신하자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여자로 격하된 기분이었다”면서 “동료들은 이제 나와 임신에 관해서만 얘기하고 싶어 했다. 그게 마치 나의 모든 것이라는 것처럼 말이다. 임신이 내 정체성이 됐다. 그게 너무 싫었다”고 덧붙였다.
또한 캐리는 지금까지 자신의 커리어와 개인적인 관심사 및 포부를 개발하고 인맥을 쌓기 위해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기에 특히 적응하기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이는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되곤 했던 과거 세대와는 조금 다를 수 있는 부분이다.
영국 콘월에 사는 리지 리앙(27) 또한 엄마가 된 이후의 변화에 대해 자신이 준비되지 않았다고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엄마들은 쉽게 역할을 해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엄마가 되기 전) 편했던 삶과 배우자와의 좋았던 관계는 사라진 기분”이라는 리앙은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은 정말 잘해나가는 듯 보인다. 나만 다른 행성에 사는 기분이다. 정말 힘들다”고 설명했다.
“비슷한 시기에 같이 출산한 친구들은 ‘그래, 무슨 뜻인지 알아’라는 다정한 눈빛을 하고 있었지만, 저는 그 친구들과 제가 서로 다른 행성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캐리 또한 임신 기간 동떨어진 느낌이었다고 설명했다. “임신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알고 지내던 무리에서 잘려 나간 듯한 기분”이었다는 것이다.
“매우 고립되는 기분이었습니다. 특히 인터넷상에서, 엄마들이 모인 곳에선 모두가 엄마라는 역할을 사랑하고 만족하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그런데 저는 이 모든 상황이 불편하고, 외로웠습니다. 줄곧 불안감에 휩싸인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부담감은 ‘엄마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서 끝나지 않고 ‘아이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로 이어진다. 아이들의 행동은 종종 엄마의 부모로서의 능력을 반영하는 지표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출처: Getty Images] 모성에 대한 이상적인 묘사가 대중화되면 엄마들에게 대한 비현실적인 기준이 굳어질 수 있다](https://c.files.bbci.co.uk/AAFE/production/_127747734_8234b23a-9c10-4532-a68a-768481061611.jpg)
한편 영국 더비셔에 사는 에밀리 왈리(32)는 지난 2015년 첫 아이를, 2019년 두 번째 아이를 출산했다. 왈리는 “언제나 엄마가 되길 꿈꿨다”면서 “그렇기에 내가 생각보다 엄마라는 역할을 즐기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기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사실 왈리의 자녀들이 앓는 심각한 건강 문제가 큰 몫을 차지했다. 특히 왈리는 아들의 수면 문제에 집착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들은 설소대 단축증을 앓고 있어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저는 엄마가 되는 것에 대한 좋은 경험을 누려보지 못했습니다. 어린 아기를 돌보는 일은 스트레스와 걱정으로 가득했습니다.”
한편 리앙은 영아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자신의 기쁨을 망쳤다”고 말했다. 미디어는 신생아들이 스스로 잠을 청할 뿐만 아니라 하루 중 대부분을 잠을 자기에 엄마들이 집안일이나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묘사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현실은 충격적이었다. 리앙의 어린 딸은 하루 6시간 동안 잠들지 않을 때도 있었으며 공이 튀어 오르는 규칙적인 소리가 있어야만 잠이 들었기 때문이다.
리앙은 “소위 ‘교과서에 나오는 아기’처럼 행동하는 아기는 없다. 그렇지만 나는 모든 아기들이 이렇게 행동한다고 믿었다”면서 “그런데 현실은 아니었다. 이에 나는 화가 났다”면서 부모로서 자신이 실패하고 있다고 느꼈다고 고백했다.
‘제가 뭘 놓치고 있는 걸까요?’
엄마가 되는 것에 크게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느낀다.
특히 SNS에 넘쳐나는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더욱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들 수 있으며, 모성의 양가성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많지 않기에 더욱 그럴 수 있다.
사실 모성의 양가성에 대해 선뜻 말하긴 쉽지 않다. 일례로 디지털 크리에이터인 로즈는 최근 팟캐스트에서 엄마가 된 것을 후회한다고 고백했다. 청취자의 90%가 이에 동의한다고 했지만,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인터넷에는 로즈 같은 엄마를 두는 건 정말 끔찍할 것이라는 영상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 영상에는 3만 개 이상의 ‘좋아요’가 달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로즈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 솔직하지 말았어야 했는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언젠가 로즈가 팟캐스트에서도 말했듯이, 그리고 다른 엄마들이 그렇듯 로즈는 “딸을 둔 것을 후회한 적 없다. ‘엄마’라는 역할에 대해 후회할 뿐”이었다. 사실 로즈는 이 상황에서 딸이 상처받진 않을까 가장 우려했다.
물론 엄마가 된 여성들만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공개적으로 털어놓길 꺼리고 이에 대해 죄책감이나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 아니다. 사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감정들을 겪고, 이를 그냥 묵묵히 감내한다.
한편 영국 워릭셔에 사는 케일리 토마스(30)은 “처음 몇 주 혹은 몇 달간은 엄마가 된다는 건 인생에서 가장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면서 “그러다 나 자신은 온라인이나 책에서 읽은 엄마의 모습이 아니라는 게 힘들었다”고 말했다.
사실 캐리처럼 의도적으로 엄마에 대한 이러한 기대를 버리려고 했던 이들도 여전히 죄책감을 느낀다. 캐리는 남편과의 저녁 식사, 아이 없이 보내는 휴가 등에 대해 “엄마로서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런데 최근 남편과 단둘이 해외여행을 떠나자 친구로부터 ‘딸이 보고 싶지 않아?’라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캐리는 “‘응, (보고 싶지 않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니 ‘나는 끔찍한 사람인가? 나는 감정이 결여됐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저 자신에 대한 모든 걸 놓아 버리고 엄마라는 역할에 모든 걸 집중해야 하는데 제가 뭘 놓치고 있는 걸까요? 저는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게 이렇게 기대하는 시선이 원망스럽습니다. 게다가 제 남편에게는 (아버지로서) 이러한 기대가 쏟아지지 않습니다.”
한편 상담사 보르사토는 여성들이 자신이 느끼는 양가적인 감정에 대해 자신을 비난한다면서 이는 “이미 어려운 상황에서 고통을 가중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이 모든 감정을 감내하기도 어려운데, 비판, 판단, 부정적인 감정들을 더 쌓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보르사토는 느끼는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외로움이나 자기 비판적인 생각도 덜 수 있다면서 침묵으로 일관해선 좋지 않다고 조언했다.
한편 보르사토는 모성의 양가성 자체가 아닌, 이에 대해 주변이 부여하는 의미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즉 “모성의 양가성을 느끼는 사람에 대해 타인이 문제가 있다고 결론 내리거나, 모성의 양가성을 엄마로서 적합하지 않거나, 나쁜 선택을 한 것으로 판단하거나, 아이는 더 나은 엄마를 만날 자격이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게 위험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출처: Getty Images] 엄마가 되면서 정체성 상실을 호소하는 여성들도 있다](https://c.files.bbci.co.uk/F91E/production/_127747736_baabe192-c210-4c0d-a728-9a99b38228a9.jpg)
‘흔한 경험’
여전히 많은 이들이 모성의 양가성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그래도 조금씩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
엄마가 되는 여성들이 더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전문적으로 돕는 직업도 생겨났다. 엄마로서 항상 기쁨을 느끼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알려주는 역할이다.
예를 들어 보르사토 또한 개인적으로 엄마가 되면서 여러 고민이 있었기에 다른 엄마들의 정신 건강 증진을 돕는 길을 택했다.
또한 “사람들이 나보단 부모로서 더 행복하길 바랄 뿐”이라는 왈리는 유아 수면에 대한 부모들의 이해를 돕는 사업을 시작했다.
한편 모성의 양가성에 대해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헌신하는 이들도 있다.
로즈는 솔직하게 감정을 토로한 이후 쏟아진 비난 때문에 고통받았지만, 다른 엄마들에게 양가적인 감정을 느껴도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계속 목소리를 낸다. 로즈는 “이러한 감정을 토로하는 여성에게 ‘좀 조용히 있어라’고 말하는 것만큼 여성 혐오적인 사회가 어디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워드는 자신이 직접 엄마라는 역할이 얼마나 힘든지 터놓고 얘기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이에 지난 2020년 3월부터 틱톡에 ‘솔직한 엄마의 일기’라는 이름으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6개월 뒤엔 인스타그램 계정도 개설했다. 사람들은 특히 손수 만들어준 음식을 먹지 않는 자녀, 엄마가 되면서 어떻게 덜 ‘재미있는’ 사람이 됐는지 등 부모로서의 힘든 상황을 담은 영상을 가장 좋아한다.
워드는 현재 거의 150만 명에 달하는 팔로워를 자랑한다. 엄마들로부터 너무 많은 메시지를 받아 이에 답장하기 위한 직원을 따로 고용할 정도다. 여성들은 워드에게 다른 사람들도 육아에 대해 이렇게 힘들어하는지 몰랐다거나, 이런 양가적인 감정을 느껴 자신은 나쁜 엄마라고 생각했다고 토로한다.
워드는 “정말 많은 엄마들이 자신의 양가적인 감정에 부끄러워하고 죄책감을 느낀다”면서 “그리고 이에 대해 (마치 자신만 이런 것이라는) 외로움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또한 워드는 “엄마가 되기 전 닮고 싶었던 엄마들도 지금 생각해보니 결코 어려운 부분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던 것”이라면서 “엄마가 되면서 겪은 수면 부족, 부끄러움은 물론 아이들에게 소리 질렀던 경험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내가 엄마가 돼 느낀 온전한 고독감과 외로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제가 엄마가 돼 이러한 양가적인 감정을 공개적으로 공유하기 시작하니 비로소 많은 이들이 겪는 흔한 상황과 경험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 인도네시아 지진으로 최소 260명 사망… 사망자 늘어날 듯
- ‘경력단절 여성 줄었다’ 통계의 불편한 진실
- 사진으로 보는 미 전략자산: 한반도 등장한 세계 최강 전투기
- ‘장관님, 뱃살 좀 빼세요’ … 인도 SNS에 퍼지는 바디셰이밍 논란
- 파산법원 심리중, FTX는 샘 뱅크먼-프리드의 ‘개인 영지’였다 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