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BBC] 젤렌스키 대통령은 현재 방코바 10번가에서 생활한다(왼쪽). '키메라의 집'(오른쪽) 맞은편이다](https://c.files.bbci.co.uk/ADB2/production/_127766444_olena_zelenska_lyse.jpg)
BBC가 매년 선정하는 ‘올해의 여성 100인’을 위해 상징적 건물인 ‘키메라의 집’에서 1시간에 가까운 광범위한 인터뷰가 진행됐다. ‘키메라의 집’을 장식한 코끼리 머리의 가고일과 신화 속 생물들의 조각상은 우크라이나에서 런던 다우닝 10번가(총리 관저가 위치함)와 비슷한 의미를 갖는 방코바 10번가를 내려다본다.
이 건물은 러시아 탱크가 국경을 넘은 지 이틀 뒤인 2월 26일, 젤렌스키 대통령이 휴대전화로 촬영한 우크라이나 연설에서 배경으로 등장했다. 연설에서 대통령은 “나는 여기 있다. 우리는 무기를 내려놓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 전날 밤에는 또 다른 셀카 영상을 통해 러시아가 “나를 1번 표적으로, 내 가족을 2번 표적으로 삼았다”고 발표했다.
젤렌스카 여사는 “처음부터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당시 발표 내용을 회상한다. 현재 산산이 조각난 다른 우크라이나 가정과 마찬가지로, 대통령 가족이 겪는 엄청난 부담감이 대화속에 숨겨져있었다.
모래주머니 벽 몇 개와 보안 검색대 너머에서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휴식도 없이 일하고 있다. 너무 가깝고도 먼 거리다. 젤렌스카 여사는 자녀 올렉산드라(18), 키릴로(9)와 함께한 마지막 저녁 식사가 언제였는지 정확한 날짜를 밝히지 않았다. 그저, “요즘은 아주 드물다. 정말 드물다”고 말했다. “나는 아이들과 따로 살고 남편은 직장에서 산다”며 “무엇보다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만큼 오래 앉아 있던 평범한 일상이 그립다”고 말했다.
현재 최전선에서 싸우는 엔지니어부터 발레리나에 이르기까지, 모든 우크라이나인의 삶은 뒤집혔다. 약 800만 명(주로 여성과 아동)은 국경을 넘어 새 삶을 찾아 나서야만 했다.
대통령과 영부인의 인연은 역사가 길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연인이었으며 각각 코미디 극단과 TV 스튜디오 소속으로 함께 일하게 됐다. 대통령은 코미디 배우였고 영부인은 무대 뒤에서 일하는 각본가였다. 3년 전 대통령이 선거에 출마했을 때, 영부인은 그런 삶을 원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이 전쟁은 영부인을 세계 무대의 스포트라이트 아래에 세웠다.
![[출처: Getty Images]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는 남편의 대통령 출마를 반대했다](https://c.files.bbci.co.uk/157EF/production/_127774088_5d217afc-d136-4ede-9788-86fbc6964f84.jpg)
2월 24일 새벽, 러시아 미사일이 키이우를 향하기 시작한 이래 젤렌스카 여사는 자녀와 함께 비밀 장소에 숨어 몇 달을 보냈다. 이후 5월 8일(우크라이나 및 기타 여러 국가에서 어머니의 날)에 모습을 드러냈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리비우의 피난민 보호소에서 질 바이든 미국 영부인을 만났다.
이제 여사는 단정한 헤어스타일에 클래식한 셔츠나 재킷을 입고 줌 연설에 계속 참여한다. 때로는 대면 회의장에 나타나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의 어머니, 누군가의 딸, 한 국가의 영부인”으로서 단호한 연설을 펼친다.
미국 의회는 지난 7월 우크라이나 정상을 향해 2번의 기립 박수를 보냈다. 당시 연단에 선 것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아니라 러시아 침공 이후 처음 국외로 나온 영부인이었다. 타국의 영부인으로서 미국 의회에서 연설 기회를 가진 것은 처음이지만, 젤렌스카 여사는 대중 연설을 결코 좋아하지 않았다.
젤렌스카 여사는 “나는 무서웠다”고 인정하며 “하지만 내 임무를 알고 있었다…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젤렌스카 여사는 평소처럼 우크라이나 아동의 심각한 고통을 강조하면서 러시아의 “헝거 게임”을 비난했다. 이후 한발 더 나아가 미국 의회에 무기 공급을 요청했다.
![[출처: Getty Images]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옆에 선 올레나 젤렌스카 영부인은 대중 연설을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https://c.files.bbci.co.uk/17EFF/production/_127774089_ebeb97d0-7654-4db4-81ed-04d770d31d8a.jpg)
공적 권한도 없는 영부인이 선을 넘은 것일까? 젤렌스카 여사는 “그 발언은 정치적 표명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사명이었다”며 “내가 무기를 요청한 것은 공격에 사용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집에서 죽임당하는 상황을 막기 위함이었다”고 말했다.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는 전쟁이 시작되지 않은 작년에 이미 각국 정상 배우자 회담을 개최했다. 이 회담은 현재 우크라이나 아동 암 환자를 피난시키고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강력한 글로벌 네트워크로 성장했다. 또한, 남편들이 전쟁 중에 나라를 떠날 수 없는 상황에서 국경을 넘어야만 했던 수백만 명의 우크라이나 여성과 아동이 타국에서 우크라이나 서적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번 사태로 인해 국경 밖에서도 에너지와 식품 가격이 상승하는 가운데, 다른 국가의 시선에서 “피로감”을 느끼는지 물었다. 젤렌스카 여사는 “다른 국가가 우리에게 피로감을 느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 현 사태가 우크라이나에 국한된 전쟁이 아니라 세계관의 전쟁임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최전선에서 싸우고 혼자 자녀를 돌보는 것까지, 산산이 조각난 사회 도처에서 여성들이 새로운 역할을 맡는 중이다. 그중에서도 큰 역할을 부여받은 젤렌스카 여사의 존재감이 두드러졌다. 전쟁 전 우크라이나 사회에 관한 유엔(UN) 문서를 보면, 여성의 역할이 제한적이며 “가부장적”, “전통적”과 같은 단어가 등장한다.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는 전쟁이 모든 것을 압도하기 전부터 우크라이나 사회가 변화하고 있었으며, 이제는 그 변화가 가속화되는 중이라고 단호히 설명했다. “이제 우크라이나 여성의 세상은 부엌, 자녀, 교회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현 사태를 겪은 여성은 다시 퇴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사가 새로 설립한 ‘올레나 젤렌스카 재단’은 정신 건강과 가정 폭력을 비롯해 가장 어려운 문제를 다룬다. 전쟁은 개인을 강인하게 만들 수 있지만, 사회를 분열시킬 수도 있다.
러시아 전쟁범죄 의혹과 증거가 계속 등장하고 도시와 마을 전체가 무너지는 가운데 대중의 시각이 굳어지고 있다. 젤렌스카 여사는 이를 반영해 “우리는 현재 점령지에 있는 사람들을 배신할 수 없다. 해방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떠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것은 대통령이나 정부의 정치적 입장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인의 입장”이라고 서둘러 덧붙였다.
Heart breaking photo. Missile destroyed this couple’s home. It took away their happy carefree future. But there is something Russia could not take away from them. Each other. I am often asked about where do I find strength to fight daily. There is only one answer: in our people. pic.twitter.com/LY04J06V1p
— Олена Зеленська (@ZelenskaUA) November 18, 2022
이 정치적 지뢰밭을 조심스럽게 통과 중인 영부인은 매우 단호하다. “승리 없이는 평화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이해한다. 승리 없는 평화는 눈속임이며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젤렌스카 여사에게 “승리”는 무엇을 의미할까?
그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평범한 일상을 되찾는 것이죠… 가끔 모든 것이 멈춘 것처럼 보여요.”
젤렌스카 여사가 남편과 함께하는 일상은 다른 이들의 일상과 다른 부분도 있다. “우리는 단순한 부부가 아니라 가장 친한 친구”라고 말했다.
이번 인터뷰에서 영부인에게 던진 첫 번째 질문은 “잘 지내세요?”였다. 영부인은 모든 우크라이나 사람을 대표해 “버텨내고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얼마 동안 더 버텨야 할까? 아무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는 BBC가 발표하는 2022년 100명의 여성으로 선정됐다. 다른 인물은 12월 6일 시즌 시작과 함께 발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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