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Reuters] 장 전 주석은 재임 기간 여러 번 미국을 방문했다](https://c.files.bbci.co.uk/B223/production/_127830654_b6efba51-a888-4d8c-a510-11d25aa8fca8.jpg)
1999년 장 전 주석은 논란 속에 중국 국가원수로서는 처음으로 영국을 방문했으며, 미국에도 여러 차례 방문했다. 게다가 WTO에 가입하며 중국의 세계 경제 체제 편입을 촉구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을 땐 이에 대한 협조를 약속하기도 했다. 미국과의 우정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지나간 시대의 상징
2002년 11월 장 전 주석은 후진타오에게 총서기직을 내주며 권력 이양 작업에 착수했다. 그렇게 2003년 3월 후진타오가 뒤를 이어 국가주석 자리에 오른다.
2004년 9월 장 전 주석은 중앙군사위 주석직에서도 물러나며 정치 지도 요직에서 모두 물러나게 된다.
![[출처: Reuters] 지난 2019년 시진핑 국가주석(왼쪽)과 리커창 총리와 마지막으로 공개석상에 등장한 장 전 주석](https://c.files.bbci.co.uk/B67A/production/_127841764_b869f2c1-5e3b-466b-a33c-47caa4e395f9.jpg)
완전히 물러난 장 전 주석은 이후 수년간 거의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엔 모습을 드러내며 중국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2012년 권력 승계 문제 논의 과정에서 재등장하는 등 중국 정체에서의 영향력도 유지했다.
2019년 중화인민공화국 70주년 기념대회에 참석했으나, 올해 10월에 열린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 불참하면서 건강 이상설이 제기됐다.
한편 장 전 주석은 말년에 많은 중국 청년에게 예상치 못하게 영웅이 됐다.
청년들은 장 주석의 외모를 두고 ‘두꺼비’라는 별명을 붙여주는 한편 자칭 ‘두꺼비 숭배자’인 팬클럽도 생겨났다. 이들은 장 전 주석을 중국이 더 자유롭던, 지나간 시대의 상징으로 여긴다.
한편 장 주석의 어두운 면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1989년 사태 이후 해외에서 살고 있는 학생 지도자 중 하나인 왕 단은 장 전 주석을 “전형적인 기회주의자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
왕 단은 트위터에 중국어로 “장쩌민은 개방적인 듯 보였지만, 사실 그는 계획 경제로 회귀하려 했다 … 그러다 덩샤오핑에 의해 제지당한 것이다. 언제나 정치적으론 보수주의자였던 인물”이라고 적었다.
한편 홍콩의 정치평론가 조니 라우는 장 전 주석 정권하에서 중국에 더 많은 개방이 이뤄질 수도 있었다고 언급했다.
라우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장 전 주석은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권력을 잡았는데, 당시 많은 이들이 중국이 다시 퇴보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지만, 덩샤오핑의 개혁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어떤 면에선 중국의 발전에 기여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권력을 잡은 뒤 정치 개혁에도 착수했어야 했지만, 장 전 주석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추가 보도: 그레이스 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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