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올해로 10년차 직장인인 최하나(가명)씨는 최근 업무 의욕이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한다.
최 씨는 한 중소 서비스 기업 재무관리팀에서만 줄곧 근무해 현재 과장 직급을 달고 있다.
지난해 말 최 씨 팀 과장급 세 명이 차장 승진 대상자로 올랐다. 이 중 여성은 최 씨 한 명이고 나머지 두 명은 남성이었다.
사측에서는 코로나로 회사 경영 사정이 악화되었음을 들어 이 중 두 명만 승진시키겠다고 했고 결국 최 씨가 제외됐다.
승진한 남자 직원 중 한 명은 본래 팀장 직무를 맞고 있어 직급이 올라가야 했다.
하지만 다른 남자 직원과 최 씨를 두고 나머지 승진자 한 명을 선정할 때 제시된 이유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최 씨는 “이왕이면 미혼인 너보다는 기혼자이고 애기 아빠인 사람한테 더 빠른 기회를 주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최 씨는 “연차는 동일했고 업무 평가 면에서도 제 경우 재무관리팀에서 쭉 근무를 했고 그 분은 부서 이동으로 팀에 온 경우라서 핸디캡이 있었다”고 말했다.
승진에서 제외된 것이 “여자라서”라고 느낀다는 것이다.
OECD 성별 임금격차 한국이 26년째 1위
최근 OECD가 공개한 ‘성별 간 임금 격차(gender wage gap)’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는 31.1%로 조사국들 중 가장 컸다.
남녀 근로자를 각각 연봉 순으로 줄 세울 때 정중앙인 중위임금을 받는 남성이 여성보다 31.1%를 더 받았다는 뜻이다.
한국은 1996년 OECD 가입 이래 26년동안 줄곧 회원국들 중 성별 임금격차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기준 OECD 38개 회원국들의 평균 성별 임금격차는 12%였다.
한국에 이어 성별 임금 격차가 큰 OECD 국가는 24.3%를 기록한 이스라엘다. 일본이 22.1%로 그 뒤를 이었다.
그 밖에 미국은 16.9%, 캐나다는 16.7%, 영국은 14.3%, 독일은 14.2%를 기록해 OECD 평균을 상회했다.
이탈리아는 7.6%, 프랑스는 11.8%를 기록해 OECD 평균보다 성별 임금 격차가 작았다.
한편, 한국은 직종(occupation), 직무(job)와 사업장(establishment)이 같은 남녀 사이의 임금 격차 또한 다른 국가들에 비해 큰 것으로나타났다.
영국의 행동 과학 저널 ‘네이처 인간 행동(Nature Human Behavioiur)’이 지난달 24일 홈페이지에 게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국 15개국 중 직종, 직무, 사업장별 남녀 임금 격차에서 일본과 함께 상위권에 속했다.
즉, 한국의 경우 같은 직종에 종사하며 같은 직장에 다니면서 같은 업무를 수행하더라도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는 이야기다.
직종별로는 한국이 1위(33.5%), 일본이 2위(30.4%)였다. 같은 사업장 및 직무 기준으로는 일본이 1위(사업장 기준 32,8%, 직무 기준 25.7%), 한국이 2위(각각 24.4%, 18.8%)로 나타났다.
한편 이 보고서에서 나이나 학력, 파트타임 고용 상태 여부 등을 고려해 기본 조정치를 반영해 산출한 33세에서 55세 노동자들의 남녀 소득 격차는 15개국 중 헝가리가 10%로 가장 낮았고 한국이 41%로 가장 높았다.
다만 이 보고서는 각국에서 입수한 최신 자료에 기반한 것이어서 국가별로 비교 시점이 다르다. 한국의 경우 2012년, 일본 2013년, 체코 2019년, 스웨덴과 노르웨이 2018년 등이 기준이 됐다.
같은 직종, 같은 직장, 같은 직무지만 기회와 승진은 남자들에게 먼저 주어져
최 씨는 회사 생활을 하는 10년 동안 성별에 따른 회사의 차별적인 대우를 수차례 목격했다.
최 씨가 속한 재무관리팀은 최근 새로운 팀원 7명을 영입했는데 이 중 3명이 여자, 4명이 남자였다.
본래 최 씨의 팀에는 최 씨 혼자만 여성 직원이었지만 이번에 새로운 인원들을 영입하면서 4명으로 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최 씨는 이번 채용이 언뜻 성평등한 인사로 보일 수 있지만 속 사정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최 씨는 “저희 팀은 본래 남자 직원들만 뽑으려고 했는데 남자 직원들이 연봉을 너무 높게 불러서 맞춰줄 수 없었다고 들었다”며 “그래서 여자 직원을 뽑았다고 말하는데 너무 기분이 나빴다”고 말했다.
최 씨는 “남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높은 연봉을 맞춰주려고 해봤다면서 그게 안되자 회사가 제시하는 연봉에 응하는 여자 직원들을 뽑았다라고 말을 하는 것이 기분이 너무 나쁜 것”이라고 덧붙였다.
회사 생활을 하는 동안 채용부터 시작해 승진과 같은 기회 역시 남자들에게 우선적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최 씨는 “회사 직원 중 3분의 2는 남자”라면서 “처음부터 여자들이 있을 자리가 없다”고 말했다.
회사 문화가 애초부터 남성 중심적으로 형성되어 있어 회사에 들어온 여성들이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인정 받거나 승진 등 기회를 얻기가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최 씨의 경우 연차는 같지만 가정과 아이가 있고 나이도 더 많은 남자 직원에게 승진 기회를 양보하라는 회사의 종용이 있었지만, 같은 시기 승진 대상이던 여성 임원의 경우 남자 부하 직원에게 밀려 승진을 하지 못했다.
최 씨는 “직원들은 승진한 남자 직원의 업무 능력이 여자 이사님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해 다들 놀랐던 인사 조치였다”면서 “이 남자 직원은 술을 잘 마시고 골프치러 가는 것을 좋아하고 어울려 담배 피우는 것을 좋아하는 등 소위 영업을 열심히 하시는 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남자 직원들은 여자 직원들에 대해 ‘술을 접대할 수 있냐 아니면 골프를 칠 수 있냐’는 식으로 무시하는 경향이 더 심하다”고 덧붙였다.
최 씨는 이렇게 회사가 애초부터 남성 중심적으로 꾸려지고 그런 문화를 유지해 온 이유에 대해서는 여자들에 대해서만 “잠재적으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회사에 민폐를 끼칠 인원”이라고 보는 편견이 굳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 씨는 현재 미혼으로 앞으로도 결혼이나 아이에 대한 생각이 없다.
하지만 그는 입사 이래 줄곧 상사로부터 “혹시라도 결혼이라는 걸 생각하게 되면 아이를 낳을것에 대해대비를 해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최 씨는 “그 얘기를 듣고 ‘아, (이 회사에) 오래 있으면 안되겠다, 이 회사는 아니다’ 라는 생각을 했는데 모든 회사들이 대부분 다 그렇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듣고 슬펐다”며 “갈 데가 없구나하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가정 돌봄과 양육의 책임 여성에만... 여성이 경력 단절 ‘선택’하도록 부추겨
노동계와 여성계는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가 크게 유지되는 이유로 연공서열제와 여성 경력 단절을 꼽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이주희 교수는 여기에 더해 여성 경력 단절이 일어나도록 하는 여성 차별적인 노동 시장의 문화가 있다고 설명한다.
이 교수는 “여성들의 경력단절이 많이 일어나는 것이 노동시장에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방증한다”면서 “하지만 차별이 작동하는 기제가 굉장히 다양하고 복잡한 데다 당연한 관행처럼 굳어져 직장에 다니던 여성이 중간에 떨어져 나가거나 승진을 못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처럼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노동시장에서 여성이라서 채용하지 않는 식의 직접적 차별은 많이 감소했지만 실질적으로 고학력 여성들이 면접과정에서 많이 탈락하거나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도 승진을 잘 하지 못한다”면서 “이는 회사가 여성을 육아와 가사를 신경 써야 하는 존재로 간주해 여성의 생산선을 낮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남자와 여자가 똑같이 가정을 꾸리고 아이가 생겨도 가정 돌봄이나 양육의 책임은 여성에게만 지워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꾸준히 지적해 왔다. 이런 문화로 인해 여성이 육아 휴직 등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이에 따라 남성과 여성의 생산성에 대한 판단이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이 교수는 또 “승진을 꿈꾸는 여성 중에는 결혼을 안 하거나 못한 여성들이 꽤 될텐데 이 경우 오히려 가정을 가진 자식 있는 남성들보다 생산성이 높아질 수도 있는 것”이라며 “하지만 여성이라는 집단 자체에 대한 스테레오타입(stereotype, 고정관념)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 직원이 결혼을 했든 안했든, 아이가 있든 없든 여성은 매니저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그런 고리타분한 의식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조직에서 여성을 많이 승진시키더라도 상대 조직에 보면 같은 지위에 남성이 더 많아 라포(rapport,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기 힘든 등의 문제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이렇게 차별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힘들게 직장에 다니며 경력을 유지하는 것보다 사회적으로 괜찮은 지위의 남성과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사는 삶이 “기회비용적인 측면에서 더 합리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여성이 직장에서 승진을 하게되면 월급이 많아지는 등 그런 기회비용을 상쇄시켜주기 때문에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여성 차별적 노동 문화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서는 정책적으로 “여성에게만 혜택을 더 주는 것으로 보이는 시혜적 정책을 지양해야 한다”면서 “여성 정책이 여성한테 무언가를 해주는 것으로 되기 보다 남녀 간 평등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사용자 입장에서 남자든 여자든 채용을 했더니 똑같이 2년, 3년씩 육아휴직을 가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 채용이나 승진에서 여성을 차별할 요인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현재의 노동시장은 여성 차별적인 문화와 그러한 문화를 양산하는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히고 굳어져 있어 그 안에 뛰어든 사람들이 비정상적인 차별에 대해서도 “그럴 수 있다”며 수긍하도록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대해 “강렬한 균형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를 깨기 위해 정치계에서 알맞은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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