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Getty Images] 인도네시아 의회가 이번 주 혼외 성관계를 처벌하는 형법 개정안을 승인했다](https://c.files.bbci.co.uk/EC88/production/_127925506_6c40b9e0-70ad-4df1-888c-3939995f6ac6.jpg)
인도네시아 의회가 이번 주 ‘발리 성관계 금지’라는 별명이 붙은 형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전 세계 언론사들은 인도네시아를 찾는 관광객들도 혼외 성관계 혹은 혼전 동거로 적발 시 1년 이하의 징역형을 살 수도 있다는 헤드라인을 실으며 경고하는 모습이다.
다원주의를 존중하는 이슬람 민주주의로 칭송받던 국가가 하루아침에 중세 시대에서나 볼법한 도덕적 간섭에 나섰다는 비난이지만, 사실 이번 개정안엔 훨씬 더 복잡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그리고 많은 인도네시아인들은 소위 ‘성관계 금지’ 조항보다도 인권 및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는 부분을 더욱 우려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의 사법 체계를 이어받았다. 그리고 역대 정부들은 오늘날 인도네시아 사회에 더 맞게 형법을 개정하고자 노력했다.
그렇게 3년 전 의회에 형법 개정안 초안이 제출됐으나, 반발 여론이 들끓으면서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조언에 따라 일단 보류됐다.
그러나 형법 개정 준비 위원회는 올해 또다시 대중의 우려 사항을 일부 고려해 수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물론 이번에 개정된 형법은 3년 뒤에야 효력을 발휘하며, 그 과정에서 헌법재판소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인도네시아 국민들이 이 법을 우려한다.
우선 앞서 언급한 관광객을 향한 경고를 첫 번째 이유로 꼽을 수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 또한 인도네시아 국민들처럼 이 법의 제한을 받지만, 혼전 성관계 혹은 동거로 고소할 수 있는 사람은 당사자의 자녀, 부모, 배우자로 국한된다.
따라서 관광객들이 직접 피해를 볼 가능성은 매우 적다.
법적으로 혼인할 수 없는 인도네시아의 동성애자들에겐 이 법이 더욱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에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또한 앙심을 품은 가족 구성원 혹은 극도로 보수적이거나 종교적인 신념 탓에 자녀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들이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해당 법 조항을 남용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시민의 자유와 관련해 시민들이 더욱 우려하는 조항은 따로 있다.
![[출처: Getty Images] 지난 5일 열린 형법 개정안 반대 시위](https://c.files.bbci.co.uk/11398/production/_127925507_abaab00f-22bd-4a70-8e29-b02487157d6f.jpg)
‘아세안 인권의회(APHR)’의 이사진이기도 한 에바 선다리 인도네시아 전 의원은 “하지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독재 정권이 몰락한 이후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는 크게 진전했다. 그러나 이번 새 형법은 진보를 없던 일로 만들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와 하원은 (개정안 통과 전) 시민사회의 의견을 수렴할 기회를 마련했다고 주장하지만, 학계, 전문가, 인권 운동가들의 반대를 대부분 무시했기에 겉치레에 불과합니다.”
이번 개정에 따라 현직 대통령 및 부통령 모욕은 범죄로 규정되며, 최고 징역 3년까지 구형할 수 있다. 이러한 모욕죄의 경우 대통령 및 부통령만이 고소할 수 있다.
또한 사전 허가 없는 시위도 범죄로 간주한다.
인권 단체들은 1990년대 민주 정권이 다시 들어선 이후 인도네시아 사회가 쟁취한 자유를 위협할 수 있는 조항 17가지를 꼽았다.
일례로 공공 저널리즘 그룹 ‘프로젝트 물타툴리’의 에비 마리아니는 트위터를 통해 거짓으로 의심되는 뉴스를 퍼뜨리고 사회적 소란을 일으키면 징역 4년 형까지 선고할 수 있다는 263조는 언론인을 위협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마리아니는 해당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옥죈다”면서 “이제 반대 의견을 낼 때마다 범죄 혐의가 적용될 위험이 도사리게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비영리 기구 ‘국제인권감시기구(HRW)’ 소속 안드레아스 하르소노 인도네시아 연구원은 이른바 “살아있는 법”인 관습법이 포함된 게 가장 우려된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 일부 지역에선 여전히 삶에 영향을 끼치는 관습법인 ‘아닷(adat)’과 공식적인 형법 간의 충돌을 막는다는 취지로 이번 형법엔 이러한 관습법 일부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이번 형법 개정안에서 가장 위험한 부분입니다. 예전 형법엔 존재하지 않았었죠. 살아있는 법인 관습법은 여성 성기 절제, 아동 결혼, 히잡 강제 착용, 일부다처제와 같은 일부 종교 및 관습적 관행 관철에 이용될 수 있습니다.”
“또한 토지 수탈 등에도 이용될 수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내 최대 원주민 연합은 이번 형법이 원주민들이 전통적으로 지켜온 분쟁 해결법을 무시하는 것으로 보기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한편 신성모독과 관련한 1~6조 및 인도네시아 형법 최초로 배교를 불법화한 조항에서 지난 20년간 인도네시아 정치와 사회 전반에서 더욱 커진 보수적인 이슬람 단체들의 영향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의회가 승인한 다음 날 서자바주 반둥시 어느 경찰서에선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해 용의자 1명이 사망했다. 경찰 당국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조직 ‘이슬람국가(IS)’ 연계 단체인 ‘자마 안샤룻 다울라(JAD)’와 연관된 용의자가 새 형법에 항의하기 위해 벌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JAD’와 같은 단체는 인도네시아라는 국가의 모든 현대적 구조를 거부하는 이들로, 주류 이슬람 운동의 가장 보수적인 세력들로부터도 비난받는 소수의 극단주의자다.
일부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서구 언론이 관광객에게 위험이 될 수 있다며 성관계 제한 규정만 집중 보도하는 것에 우려하기도 했다.
이번 형법 개정은 외국인들의 성생활이 아니라 우리들의 기본적인 권리와 자유가 걸린 일이라는 외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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