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상호주의에 입각해 공직선거법상 외국인투표권조항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외국인 선거권 폐지 여부가 관심을 모았다.

현행 선거법은 영주권을 취득한 지 3년이 지난 외국인들에게 지방선거에 한해 투표권을 부여한다.

한국은 지난 2005년 아시아 국가 중 처음으로 이러한 외국인 참정권을 도입했다.

하지만 한 장관은 지난 5일 인터뷰에서 “공직선거법상 외국인투표권 조항에 상호주의를 반영하는 것은 국익과 상식에 부합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외국인 투표권 제도를 개편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앞서 법무부도 지난달 30일 “외국인 참정권을 상호주의에 따라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느냐”는 시대전환 정당 조정훈 의원실의 질문에 대해 “우리나라는 3년 이상 된 (18세 이상) 영주권자에게 지방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는데 해외 거주 우리나라 국민은 대부분 선거권이 없는 불합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주제도 개편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 외국인 투표권 폐지 검토하나

법무부와 한 장관의 입장 표명에 이어 여당인 국민의힘 홍석준 의원도 국내 거주 외국인에게 부여하는 지방선거 참정권을 상호주의에 따라 제한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7일 대표 발의했다.

여권을 중심으로 해당 논의를 재점화하는 움직임이 일면서 윤석열 정부가 ‘상호주의 입각’을 근거로 외국인 투표권 폐지에 드라이브를 건다는 해석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는 취임 이전부터 줄곧 ‘준법 정치’를 강조해 왔다.

지난 6월 지방선거를 앞두었을 당시에도 국민의힘 경기지사 후보였던 김은혜 현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해당 문제를 제기했다.

도지사 당내 경선 기간 김 후보는 4월 14일 사회관계망(SNS)에 쓴 글에서 “우리 국민은 단 한 명도 중국에서 투표하지 못하는데 10만 명에 달하는 중국인이 우리나라 투표권을 가지는 건 불공정하다”며 “외국인 지방선거 투표권 문제, 국가 간 공정성 관점에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실제 외국인 투표 참여 저조해… 폐지해도 실익 없어’

일부 전문가들은 외국인 투표권이 애초 선진 민주주의 구현을 위한 상징적 제도로 도입된 데다 실제 투표 인원이 미미해 폐지해도 실익이 없다고 말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외국인 참정권이 처음 적용된 2006년 제4회 지방선거에서는 외국인 투표권자는 6726명이었다. 이후 외2014년 4만 8428명, 2018년 10만 6049명이었고, 올해 6·1 지방선거에서는 역대 최다인 12만7623명의 외국인이 투표권을 얻었다.

하지만 실제 투표율은 2014년 17.6%, 2018년 13.5%, 올해 13.3%로 줄곧 저조하다. 올해 외국인 투표권자 중 실제 투표한 인원은 약 1만 6510명이다.

정치평론가 박창환 장안대학교 교수는 “현 외국인 투표 인원이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음을 감안한다면 선거 결과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려울 만큼 비율이 작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애초 외국인 지방선거 투표권을 도입했던 취지 자체가 이것을 통해서 일본이나 중국처럼 우리나라 재외 동포가 많은 국가에서 우리 동포들의 목소리가 커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며 “우리가 먼저 선제적으로 도입해 외국에서도 우리 동포들에 대한 투표권 부여를 유도하자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외국인 투표권 폐지로 인한 실질적인 이득이 크지 않은 상황”이라며 “우리나라가 아시아 최초로 해당 제도를 도입해 민주주의가 발전된 나라로서의 모습을 보였는데 이를 스스로 해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또 “우리나라에서 다문화 가정 인구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국적을 취득한 다문화 인구 뿐만 아니라 이들의 가족이나 관계 인원 등이 와서 살게 되는 경우도 있다”면서 “민주주의에서 지방자치 핵심은 주민권인데 지역에 살고 있으면 주민이기 때문에 투표권을 인정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박 교수는 현행 영주권 제도가 다른 국가들의 제도와 달리 국내 의무 체류기간 요건이 없는 부분에 대한 논의 필요성에는 동의한다고 말했다.

외국인 영주권자가 특정 기간 이상 해외에 체류할 시 영주권을 상실하도록 하면 그에 따라 투표권이 박탈될 수 있다.

한편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해외 국가의 경우, 6개월, 1년, 2년, 3년 등 일정 기간 동안 해외에 체류하게 되면 사유가 소명되지 않는 한 영주권을 상실하도록 하고 있다.

‘외국인 선거권 취득 조건 이미 까다로워.. 기본권 보장돼야’

한국에 거주 중인 외국인들 중에는 10년 이상 한국에서 거주했지만 영주권을 취득하지 못한 사례도 있다.

영주권 비자 취득을 위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거나 충족했더라도 비자 신청까지 준비해야 할 사항들이 많아 어려움이 있다.

미국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국제학연구소에 재직 중인 벤자민 엥겔은 지난 2010년 한국에 유학생으로 와서 12년째 거주 중이다.

엥겔은 학생으로 지내던 기간 동안 수입이 거의 없어 영주권 취득 자격을 충족하지 못했다.

현재는 서울대 연구 교수로 재직 중으로 한국인 여성과 결혼해 영주권 취득 신청 자격을 얻었지만 “그만한 노력을 들일만한 일인지 모르겠다”며 고민 중이다.

한국에 거주 중인 외국인들은 수입 등 특정 조건을 만족하거나 결혼이민 자격(F-6)을 얻은 후 한국에 2년 이상 체류하면 영주 자격(F-5)으로 변경 신청을 할 수 있다.

엥겔 교수는 “이미 결혼이민 비자가 있는 상황에서 영주 자격으로 변경 신청을 할 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딱 두 가지 뿐”이라며 “비자 갱신을 덜 자주해도 된다는 것과 지방선거에서 투표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주 자격 취득 후에도 3년이 지나야 투표가 가능하기 때문에 2026년 지방 선거에서는 투표할 수 있도록 곧 영주 자격을 곧 신청할 생각이었다”며 “하지만 최근 관련 논의를 보니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엥겔 교수는 여권 정치인들이 외국 선거법을 개정하려는 것이 ‘상호주의’ 구현보다 중국인이라는 특정 집단을 타겟한 것처럼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에 제기된 문제는 한국 내 떠 오르는 반중정서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며 “여권 정치인들이 말하는 ‘상호주의’는 보수 유권자들의 반중정서를 달래기 위한 움직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미국에서도 한국인 영주권자는 투표하지 못하지만 반대로 한국에서 투표권을 갖는 미국인 영주권자에 대한 불평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러시아 출신으로 2008년부터 한국에 거주해 2020년 영주 자격을 신청한 A씨도 이번에 제기된 외국인 선거권 이슈가 중국인이라는 특정 집단을 타겟한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까지 본 영주권자의 투표권 반대 의견은 주로 ‘이들 중 중국인들이 너무 많고 중국인들이 주로 (더불어)민주당을 뽑으니 우리나라에서 중국인들이 투표권이 있으면 안된다’는 주장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영주권자는 일본인이나 중국인뿐 아니라 전 세계 각지의 출신자들이 있으니 상호주의 원칙에 부합하려면 전 세계에 영주권자 투표권을 요구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한편 호주 출신으로 2006년부터 한국에 거주해 2009년 영주권을 취득한 루크 도일은 “투표권은 기본권으로 당연히 주어져야 하고 오히려 더 많은 영주권자들에게 주어지도록 법이 개정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
0
+1
0
+1
0
+1
0
+1
0

랭킹 뉴스

실시간 급상승 뉴스 베스트 클릭

금주 BEST 인기글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