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BBC] 필명 '파란다(Paranda)'는 '새'를 의미한다 ㅠ
[출처: BBC] 필명 ‘파란다(Paranda)’는 ‘새’를 의미한다 ㅠ

“제 팬은 새의 날개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는 생각과 꿈을 말할 수 있게 해주죠.”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수도 카불과 다른 도시에서 크고 작은 시위를 벌이며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한다. 때론 아프가니스탄 국외에서 연설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대부분 안전한 장소에서 조용히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밖에 없다. 아니면 점점 더 엄격해지는 탈레반 정권의 규칙과 자기 삶을 조화시키려 노력하면서 머릿속에선 생각이 곪아가곤 한다.

탈레반은 여성들이 무엇을 입고, 어디서 일할지 등 여성들이 삶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없는지 제한한다.

탈레반 재집권 몇 달 전인 작년 8월, 아프가니스탄 여성 작가 18명은 실제 삶을 바탕으로 한 허구의 이야기를 집필했다. 그렇게 올해 초 책 ‘내 펜은 새의 날개(My Pen is the Wing of a Bird)’가 출판됐다.

국제사회의 외면 속 많은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낙담하고 있는 가운데, 이 여성 작가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여성과 소녀 수백만 명이 겪는 문제에 대해 되돌아보고자 펜과 전화기를 들었다.

‘파란다’와 ‘사다프’라는 필명의 여성 작가 2명의 이야기를 비밀리에 들어봤다.

[출처: BBC] 파란다는 분홍색 히잡을 쓰고 거리에 나선다
[출처: BBC] 파란다는 분홍색 히잡을 쓰고 거리에 나선다

‘분홍색 히잡을 쓴 게 죄인가요?’

“오늘 저는 잠에서 깨어나 결심했습니다. 검은색 히잡에 맞서기 위해 오늘 입을 옷을 고를 때 분홍색 히잡을 쓰겠다고요 … 분홍색 히잡을 쓰는 게 죄인가요?”

파란다는 자신이 더 여성스러워 보인다고 느끼는 색인 분홍색 의상을 좋아한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의 복장은 그야말로 논쟁거리다. 탈레반은 정숙한 복장에 대한 칙령을 정하고 때때로 이를 강력하게 적용한다.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히잡에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선택권을 달라고 요구하는 이들도 있다.

길거리나 공공장소에서 이러한 목소리를 느낄 수 있다. 바로 반짝반짝 빛나는, 어둠 속의 작은 빛과도 같은 분홍색 히잡을 통해 말이다.

‘우리는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시인 하피줄라 하밈은 “다시 과거로 되돌아가기란 쉽지 않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힘든 일인데, 희망을 품을 수 있나? 우리는 되돌아갈 수 없다”고 적는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대중 시위는 다물지만, 여성들은 시위를 주도해왔다.

몇몇 소수의 용감한 시민은 카불 등 도시에서 거리로 나와 “빵, 일거리, 자유” 등을 원하는 현수막을 들었다. 그러나 강제로 해산당하거나 구금됐으며, 일부는 구금 중 실종되기도 했다.

이웃 국가인 이란에서도 여성들은 “여성, 삶, 자유”를 외치며 강제 히잡 착용 중단 등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아프간 여성들은 일할 권리를, 소녀들은 교육받을 권리를 원한다.

‘두려움은 분노로 변했습니다’

[출처: BBC] 아프가니스탄 북부 마자르이샤리프의 검문소
[출처: BBC] 아프가니스탄 북부 마자르이샤리프의 검문소

“탈레반 대원이 저희 사무실 차를 세우더니 절 가리켰습니다 … 제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온몸이 떨렸습니다. 바람이 제 쪽으로 불어오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 우리 차가 다시 검문소에서 멀어지자 바람이 다른 방향으로 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내 두려움은 분노로 변했습니다.”

예측 불가능성은 사람을 정말 힘들게 한다. 공격적인 탈레반 대원들도 있고, 조금은 봐주는 이들도 있다. 여성들이 길을 나설 때마다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72km 이상의 장거리 여행길에 나설 때면 마흐람(남성 동행 보호자)과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 그런데 일부 탈레반 대원들은 마음대로 규칙을 들먹이며 여성들에게 귀가를 명령하기도 한다.

‘아이스크림의 즐거움’

[출처: BBC] 아이스크림을 즐기는 아프간 가족들
[출처: BBC] 아이스크림을 즐기는 아프간 가족들

“어렸을 때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느끼는 즐거움은 어른이 돼 우주를 여행하며 느끼는 감정과 같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선 종종 아이스크림 판매 키오스크에 여성과 아이들이 길게 줄 선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러한 아이스크림 키오스크는 귀한 간식을 누리며 잠깐이나마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는 곳이 됐다.

이제 여성들은 공원이나 여성 전용 헬스장 및 대중목욕탕 이용도 금지당했다. “여성들이 히잡 착용 규칙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여성들에게 허용됐던 극히 일부의 공간마저 더욱 줄어들게 됐다.

’13살에 약혼’

[출처: BBC] 카불의 아이스크림 판매대 밖에서 기다리는 소녀들
[출처: BBC] 카불의 아이스크림 판매대 밖에서 기다리는 소녀들

“목욕탕 주인집 딸이 약혼을 했습니다. 놀라운 일이죠. 겨우 13살이거든요. 소녀의 어머니는 탈레반이 절대 여학교 재개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 소녀가 마치 저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저는 탈레반이 처음 정권을 잡았을 때 절망에 빠졌습니다. 저 또한 강제 결혼에 내몰렸죠 그때 입은 상처가 아직 다 아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잿더미에서 일어나 두 발로 섰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에 대한 탄압의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여성 교육의 종말과도 같았던 1990년대 당시 탈레반의 통치를 뼈저리게 기억한다.

그러던 2001년 탈레반 정권이 붕괴하자 다른 많은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파란다는 학교에 다시 가거나 이혼하는 등의 기회를 누렸다.

그렇게 학교에 다녔던 신세대 여성들은 훨씬 더 큰 꿈을 품고 있지만, 여전히 학교가 문을 굳게 잠근 지금 이들의 고통은 아직도 그대로다.

‘여성들을 향한 남성들의 말’

[출처: BBC] 카불의 저녁
[출처: BBC] 카불의 저녁

“전 한 때 SNS를 이용했지만, 지금은 입을 굳게 다물었습니다. 이 사회에, 남성들의 여성들을 겨냥한 노골적인 말들에 화가 납니다. 아프간 여성들이 앓는 문제의 근원은 새로운 규칙을 도입하고 바꾸는 정부가 아닙니다 … 바로 남성들의 여성을 향한 악한 생각입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정권은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도 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가부장제 속 아프간 여성들은 오랫동안 남성들이 정한 한계 내에서 살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엄청난 억압”이라는 UN의 묘사처럼, 최근 몇 년간 이뤄낸 진보는 다시 후퇴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여성과 소녀들이 전면에 나서지 못하는 보수적인 가족 규범과 전통이 더욱 강화하고 있다.

‘살기 아주 좋은 나라가 되리라 믿습니다’

[출처: BBC] 집필 중인 파란다
[출처: BBC] 집필 중인 파란다

“저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써야 합니다. 언론이 얼마 없습니다 … 저는 언젠간 아프가니스탄이 여성과 소녀들이 살기 아주 좋은 나라가 되리라 믿습니다. 시간은 걸리겠죠. 하지만 언젠간 그렇게 될 겁니다.”

‘새’를 뜻하는 필명인 ‘파란다’를 쓰는 이 여성 작가처럼 특히 교육받은 도시 여성들이 새장에 갇히길 거부한다.

많은 여성들이 떠나갔고, 여전히 탈출을 꿈꾸는 이들도 많다.

소수의 사람들은 용감하게 공개 시위에 나서기도 한다.

한편 아프가니스탄 시골구석에서도 비록 문맹이지만 감옥과도 같은 삶에 대해 마음속으로 불만이 끓어오르는 여성들을 만난 적 있다.

‘치유를 위한 글쓰기’

[출처: BBC] 파란다의 일기
[출처: BBC] 파란다의 일기

또 다른 작가 사다프는 “글을 써야 한다! 왜 무서워하나? 누구를 두려워하나? … 당신의 글이 누군가의 영혼을 치유할지도 모른다 … 당신의 펜이 누군가에겐 부러진 팔의 버팀목이, 절망에 빠진 이에겐 작은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적는다.

어디서든 작가의 삶은 의심과 두려움으로 가득 찰 수 있지만, 아프간 여성 작가들의 삶은 특히 더 그렇다. 글을 쓸 수 있는 안전하고 조용한 장소를 찾는 것, 자아와 목적의식을 구축하는 모든 순간에 두려움이 따라온다.

한편 ‘내 펜은 새의 날개’를 출판하며 이들의 단어는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됐다.

“어느 학생이 이 책을 아름답게 소개했어요. 가장 좋았던 부분은 제 이름을 언급해줄 때였습니다. 모든 학생이 저를 응원해줬어요. 저는 그 순간을 제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때로 추억합니다.”

‘제가 유일한 가장입니다’

[출처: BBC] 북동부 누리스탄 지방에서 소녀가 가족과 함께 나무를 자르고 있다
[출처: BBC] 북동부 누리스탄 지방에서 소녀가 가족과 함께 나무를 자르고 있다

“신이 나를 위해 더 좋은 것을 지니고 계실지도 모르기에 돈에 대해선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제가 왜 걱정하는지 모릅니다. 우리 가족은 10명이고 저는 유일한 가장입니다. 지난 공화국 때도 벌이가 좋지 않았으며, 현 정권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여성들의 직업과 일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일부 여성 의사, 간호사, 교사, 경찰들은 여전히 산업 현장에 남아 대부분 여성 및 소녀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또한 여전히 사업을 이어 나가는 여성 사업가들도 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 정부 부처엔 여성을 위한 자리가 없다.

게다가 여자 고등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여성과 직업 간 연결이 단절되고 있다.

‘너는 강하다’

[출처: BBC] 칸다하르의 모습
[출처: BBC] 칸다하르의 모습

저는 ‘아니, 아니야! 나는 자살할 수 없어’라고 다짐했습니다. 저는 ‘살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자살은 다른 이의 삶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너는 강하고, 모든 것은 괜찮아질 것이고, 너는 해낼 수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며 저 자신을 다독였습니다.”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다짐이기도 하다. 특히 젊은 여성들의 자살 시도가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를 정확히 확인하기란 어렵다.

가족들이 비밀에 부치며, 공립 병원들 또한 관련 증거를 숨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UN 기구에 따르면 지방 여성들을 만날 때마다 여성들의 자살 문제가 거론된다고 한다. 그리고 학교에 갈 수 없는 어린 소녀들의 강제 결혼이 그 원인으로 꼽힌다.

‘언제쯤 끝날까요?’

[출처: BBC] 1970년대 아프가니스탄의 모습을 찍은 네거티브 필름을 들고 있는 파란다
[출처: BBC] 1970년대 아프가니스탄의 모습을 찍은 네거티브 필름을 들고 있는 파란다

“우린 언제 미치지 않고 정상이 될 수 있을까요? 얼마나 더 많은 고통을 참아내야 할까요? 마침내 제 심장은 조국이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상황임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언제쯤 이 고통이 끝날까요?”

전쟁에 시달리는 세대가 늘어나고 있다. 벌써 40여 년째다.

조국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분쟁에 휘청거리고 있지만, 아프간 국민들은 다음번은 이번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꿈을 계속 꾸고 있다.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이다.

‘희망의 불씨’

[출처: BBC] 카불의 어느 식당 옆을 지나가는 여성들
[출처: BBC] 카불의 어느 식당 옆을 지나가는 여성들

“저는 제 마음에 희망의 불씨를 뿌립니다 … 제 안에 불이 있습니다. 내 안에는 내게 맞서 싸우라고 말하는 영혼이 있습니다. 이 어두운 시기에 자연의 법칙이 어둠을 빛으로 바꿔내길 희망합니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종종 희망은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러나 탈레반이 재집권하기 최근 몇 년간 일상에서 폭력 사태가 잦아졌을 때 일부 시민들은 희망조차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토록 수많은 고통을 겪어온 아프간 사람들은 희망이 아직 살아있음을 굳게 믿는다.

알려지지 않은 자들의 일기(Untold’s diary) 프로젝트는 ‘바그리 재단’과 영국 의회의 지원을 받는 프로젝트로, 작가들의 단편집 ‘내 펜은 새의 날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새로운 소설’은 ‘맥리호스 출판사’에서 출판됐다.

사진: 난나 무우스 스테펜센

[출처: BBC]
[출처: BBC]

BBC 2022 올해의 여성 100인에 대한 더 자세한 소식은 BBC Korea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에서 BBC ‘올해의 여성 100인’을 팔로우하세요. 해시태그 #BBC100Women으로 대화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
0
+1
0
+1
0
+1
0
+1
0

랭킹 뉴스

실시간 급상승 뉴스 베스트 클릭

금주 BEST 인기글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