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Getty Images]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경향은 보통 부정적인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우유부단함이 오히려 더 좋은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한다.](https://ichef.bbci.co.uk/news/raw/cpsprodpb/b797/live/d59d2160-7c86-11ed-90a7-556e529f9f89.png)
넷플릭스 인기 시리즈 ‘굿플레이스’에 나온 치디 아나고녜는 전형적인 결정력 부족 캐릭터다. 오늘 뭘 먹어야 하는지부터 애정하는 사람에 대한 사랑고백을 하는 것까지, 그에겐 결정해야 하는 작고 큰 모든 것이 고통이다. 모든 것을 분석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 현생에서 죽은 치디는 후생에서 자신이 우물쭈물대다가 죽은 것을 알게 된다. 길가에서 친구를 어느 바에서 만나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위에서 에어컨 실외기가 그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는 그 자리에서 사망한다. 그는 한 에피소드에서 이렇게 말한다. “쓰레기 처리장에서 쇠 포크가 부서지는 소리있지? 내 머릿속에선 항상 그 소리가 들려.” 치디의 이런 결정력 부족 성격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 뿐만이 아니다. 그의 주변 사람들도 그의 이런 우유부단한 성격에 괴로워한다. 만약 이러한 치디의 성격이 당신의 성격과 비슷하게 느껴진다면,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사실 우유부단함은 많은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특징이다. 세상에는 결정을 빠르게 내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결정을 내리기까지 선택지를 두고두고 고민한다. 경우에 따라선 선택을 아예 회피해버리기도 한다. 치디의 경우처럼, 결정력 부족은 불안 장애로 연결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렇게 망설이는 성격에도 긍정적인 점이 있다.
즉 결정을 내리기만 한다면, 결론 내리기를 망설이는 사람들이 결론을 빨리 내리는 사람들보다 일반적으로 더 현명한 판단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 등 일반적인 인지 오류로부터 보다 자유롭기 때문이다. 핵심은 기다려야 할 때와 망설임을 뒤로하고 결정해야 할 때를 아는 것이다.
우유부단함=부정적?
심리학자들은 우유부단함을 측정할 수 있는 다양한 도구를 가지고 있다. 가장 널리 쓰이는 방법은 ‘프로스트 우유부단함 측정법(Frost Indecisiveness Scale)’이다. 이 설문에선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1(강한 부정)’에서 ‘5(강한 긍정)’로 답하게 한다.
이 설문조사를 분석한 결과, 심리학자들은 우유부단함이 많은 경우 완벽주의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완벽주의자들은 잘못된 결정을 할 경우 받게 될 망신이나 후회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자신이 정말로 옳은 결정을 한다고 확신할 때까지 결론 내리기를 미룬다. (그리고 때로 그 확신을 영원히 느끼지 못한다.)문제는 이러한 우유부단함이 행복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단는 것. 네덜란드 에라스무스 대학의 에릭 라씬 심리학 교수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이 설문조사에서 더 많은 점수를 기록할수록, 삶의 만족도를 측정하는 설문에서는 낮은 점수를 받는다. 이런 사람들은 “나는 내 삶의 조건이 최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다시 인생을 살 수 있다면, 거의 아마것도 바꾸고 싶지 않다”와 같은 문구에 동의하는 비율이 적다.
![[출처: Getty Images] 사람들은 보통 우유부단함을 부정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정을 내리는 데 시간을 들이는 것엔 놀라운 장점이 있을 수 있다](https://ichef.bbci.co.uk/news/raw/cpsprodpb/706a/live/8b9ec220-7c87-11ed-90a7-556e529f9f89.png)
성급한 결론 내리기
이러한 프로스트 측정법에 따르면, 우유부단함은 무조건 부정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최근 연구는 결론을 빨리 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에도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다고 제시한다. 우리가 흔히 범하는 인지적 오류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기 떄문이다.
독일 드레스덴 공과대학교의 이리스 슈나이더 사회심리학과 교수와 야나-마리아 혼스벤 박사학위 연구원이 최근 진행한 연구에서 우유부단함의 장점에 관한 근거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전통적인 측정법을 사용하는 대신, 사람들이 동일 대상에 대한 상반된 태도를 동시에 갖는 양가성을 측정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이 방식은 사람들이 판단을 하거나 결정을 내릴 때 (혹은 내리지 못할 때) 갖는 생각이나 느낌에 더 집중한다. 예를 들면 응답자들은 다음과 같은 문구에 답을 하게 된다.
혼스벤 연구원은 “만약 위의 문장들에 공감한다면, 높은 양가성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예상하다시피 높은 양가성을 가진 사람들은 결정을 하는 데도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하지만 두 연구원은 높은 양가성을 가진 사람들이 판단을 내릴 때 인지적 오류에 빠질 확률이 더 낮다는 점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연구원들은 실험 참여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를 주고 어떤 질문을 할 것인지 물었다.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났는데, 그 사람이 외향적인지 혹은 내향적인지 알고 싶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이 사람은 외향적이다. 그러면 다음 중 어떤 질문을 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두번째 질문을 고른다. 하지만 이건 확증 편향이 포함된 표현이다. 즉 당신의 가정에 들어맞는 정보를 찾으려고 할 뿐, 당신이 틀렸다는 정보를 찾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 연구원에 따르면, 양가성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만큼의 정보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자신의 가정을 시험한다. 다른 실험에서 참여자들은 자신의 고용계약을 갱신하려는 직원 뮬러 씨에 대한 정보를 읽었다.
일단 뮬러 씨를 계속 고용할지 말지에 대한 잠정적 결론을 내린 후, 이들은 업계 전문가들로부터 추가적인 정보를 받았다. 이 가운데 참여자들의 초기 판단과 일치하는 정보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정보도 있었다. 이후 참여자들은 이 전문가들의 의견에 대한 신뢰성과 중요성을 평가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혼스벤과 슈나이더는 높은 양가성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초기 판단과 다른 전문가 의견에 더 높은 신뢰도와 중요도 점수를 준 것으로 나타났다.
즉 더 편견이 없는 상태로 문장에 점수를 매긴 것이다. 반대로 낮은 양가성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과 다른 전문가들의 의견을 더 경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연구의 결과는 우리가 가장 흔히 범하는 인지적 오류를 시정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양가성은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생각하는 함정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뿐 아니라, 다른 삶의 영역에서도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슈나이더 교수의 다른 연구에 따르면, 높은 양가성을 가진 사람들은 ‘대응 편향(correspondence bias)’ 오류에 빠질 경향도 적다.
대응 편향은 타인의 행동에 대해 상황적 영향을 과소 추정하고, 행위의 원인을 행위자의 내적 속성으로 판단하는 경향을 말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길에서 넘어졌다고 하자. 그러면 대응 편향이 심한 사람은 저 사람이 원래 칠칠치 못해서 그렇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내적 속성).
하지만 대응 편향이 적은 사람은 바닥이 미끄러워서 넘어졌다고 생각할 경향이 크다(외적 속성). 대응 편향은 학업성적이 부진한 학생을 두고 집안 사정의 어려움 등 외적 변수를 고려하기보다는 단순히 학생 개인의 노력 부족이나 지식 부족을 탓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높은 양가성을 가진 사람들은 판단을 빨리 내리는 사람들보다 이러한 외적 변수의 가능성을 더 인지하는 경향이 있다.
![[출처: Getty Images] 전문가들은 우유부단함은 정도가 지나칠 때만 문제가 된다고 말한다](https://ichef.bbci.co.uk/news/raw/cpsprodpb/7f4b/live/f1cda9d0-7c87-11ed-90a7-556e529f9f89.png)
무위가 아닌 행동
만약 당신이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해서 괴로워했다면, 혼스벤의 이러한 연구 결과는 좋은 소식이다. 그는 “사람들이 흔히 겪는 우유부단함은 사회에서 용인될 필요가 있다”며 “망설임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쉼을 줄 수 있고, 세상의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이는 우리가 신중한 결론을 내리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고 말했다. 우유부단함이 문제가 되는 건 그 정도가 지나칠 때만이다. 혼스벤 연구원은 “다른 많은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유부단함에도 균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우유부단한 사람들이 왜 삶의 만족도 측정 실험에서 낮은 점수를 받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이들이 망설임에 압도당해버리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한 가지 방법은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할 때까지 스스로 시간 제약을 두는 것이다. 그러면 정작 새로운 통찰력을 얻지도 못하면서도 다른 선택지를 이리저리 재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어떤 문제이냐에 따라 그것을 일련의 작업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무작정 모든 시간을 투입하는 것보다 하루에 두 시간은 새로운 정보를 검색하는 데 할애하자는 식이다. 하지만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면 미국 시카고 대학의 경제학인 스티븐 레빗 교수의 연구에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2005년 ‘괴짜 경제학(Freakonomics)’의 공동저자로 유명한 레빗 교수는 사람들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렸을 때 느끼는 전반적인 행복감에 대해서 연구했다. 레빗 교수는 한 웹사이트를 열어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기 힘들어하는 온갖 문제에 대해 나눌 수 있게 했다. 문신 시술을 받을지 말지, 이사를 할지 말지, 직장을 때려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갈지 등 고민은 다양했다.
그는 참여자들에게 이후 동전을 던져 자기 인생의 최대 결정을 내리라고 했다. 몇달 뒤 레빗 교수는 참여자들에게 다시 연락을 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고민하던 문제를 행동으로 옮긴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전 던지기에서 행동을 실행하라고 나온 경우,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과거와 똑같은 상태를 지속해온 사람들(동전 던지기의 결과에 상관없이)보다 훨씬 더 높은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실험에 참여하기 전에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면밀히 검토를 했지만, 잘못된 선택을 할까봐 행동에 나서지 못했다고 추론할 수 있다.
동전 던지기는 단순히 우물쭈물대고 있는 자신을 실제 행동하게끔 만든 작은 기제에 불과했다. 이 연구의 교훈은 우리가 우리의 모든 행동을 동전 던지기로 결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자신을 주저하게 만드는 의심과 망설임으로부터 벗어날 때, 생각보다 훨씬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레빗 교수는 “결정을 할 때 일반적으로 좋은 규칙은, 어떤 것을 할지 말지 결정을 하지 못하겠을 때 현재상태를 지속하는 선택보다 변화를 상징하는 선택을 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굿플레이스’의 치디처럼 우리는 모든 결정의 장점과 단점을 비교 분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시간을 두고 선택지를 고민하는 것은 우리가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하지만 고민이 끝난 후에는, 어떤 선택이든 보통 아무 선택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좋다는 연구결과를 믿고, 그 고민을 한쪽으로 치워둬야 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 체감 영하 15도… ‘최강 한파’ 속 주의할 점
- 2022 월드컵 결승 문턱서 탈락한 모로코 팬들이 느끼는 절망과 자부심
- 우주군: 주한미군 ‘우주군’ 창설…의미와 역할은?
- ‘아바타: 물의 길’: 13년 만에 돌아온 영화에 대한 엇갈린 반응
- 근로시간: ‘주 단위’ 개념 바꾼다…노동시장 개편안 핵심과 우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