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Getty Images] 일부 ADHD 근로자들은 업무 착수를 어려워하는데, 이 때문에 자괴감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도 있다
[출처: Getty Images] 일부 ADHD 근로자들은 업무 착수를 어려워하는데, 이 때문에 자괴감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도 있다

‘안절부절못하는 아이들’? 그 이상

미 텍사스에서 신경다양성과 관련한 연구를 하며 ‘너드 코치’에서 임원 겸 리더십 코치를 맡고 있는 트레이시 윈터는 일부 고정관념과 달리 ADHD 환자들은 “안절부절못하는” 아이들, 혹은 쉽게 산만해지는 사람 그 이상이라고 지적했다.

윈터는 ADHD는 다양한 증상과 행동으로 나타나는, 복잡한 신경 발달 장애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ADHD가 있는 윈터는 ‘장애(disorder)’라는 단어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며, 개인적으로 ADHD를 “다른 종류의 뇌”로 바라보길 선호한다고 밝혔다)

ADHD를 지녔다고 해서 반드시 변덕이 심한 것은 아니며, 해부학 구조적으로 다르게 생겼고, 다르게 기능한다는 게 윈터의 설명이다.

한편 ‘ADHD UK’의 회장이자 공동 설립자인 헨리 셸포드는 ADHD의 영향은 사람마다 다르며, 개개인에게 어떤 식으로 나타날지 알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시간 엄수를 어려워하는 이들도 있고, 책상을 깨끗이 정돈하고 유지하기 어려워하는 이들도 있다. 아니면 시간 약속도 잘 지키고 책상도 언제나 깔끔하게 정리하지만, 다른 이의 대화에 끼어드는 행동을 멈추기 힘들어하는 이들도 있다.

또한 윈터는 “뇌에 불을 밝혀주는 일” 즉,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분야에서만 행동에 나서는 이들도 있다면서, 그렇기에 다른 중요한 우선순위를 놓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러한 요소는 행동과 업무 프로세스에 관한 일정 규범이 있는 직장에선 특히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상사들이 ADHD 근로자들을 게으르고, 열의가 없거나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단정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셸포드는 “ADHD 특성은 (타인에게) 매우 잘못 해석될 수 있다”면서 “시간 엄수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면, 다른 이들의 눈엔 일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그리고 무엇을 잘 잊어버린다면 그냥 아둔한 사람으로 여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게다가 상사들의 편견과 인식뿐만 아니라, 직장에서 이러한 어려움을 겪으며 ADHD 근로자들이 자기 자신을 판단하면서 감정적으로 해로운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일례로 TV 프로그램 작가이자 수필가인 레베카 필립스 엡스타인(37)은 최근 ADHD 진단을 받았다면서, 사회 초년생일 당시 마감일을 맞춰 원고를 넘기거나, 회의 시간에 맞춰 참석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시간이 지나 업계에서 이름이 알려졌지만 이러한 문제들은 오히려 더욱 악화할 뿐이었다. 보통은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해결해나가곤 했지만, 계속 문제에 휘말리는 자신을 보며 엡스타인은 끔찍한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은 커져갔다”는 엡스타인은 “나는 더욱 실수하고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남들은 다 할 수 있는 일을 나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느꼈으며, 결국 기대한 만큼 해낼 수 없다는 느낌과 완벽주의 간 균형을 맞추기 위해 자신을 “고문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한편 크리스티안 또한 자신이 ‘뉴로다이버전트(타인과 다른 방식으로 뇌가 작동하는 사람)’임을 알면서도 자기 자신을 비하해왔다. “수치심, 죄책감 등 모든 감정을 느꼈다”는 것이다.

“[제 행동이] 모든 기회의 문을 닫아버린다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그런 문들은 아예 열리지 않게 되는 거죠 … 제가 마지막 순간까지 꾸물거리거나, 무언가를 잊어버렸을 때 ‘왜 나는 이걸 해내지 못했지?’, ‘왜 나는 충분하지 못할까?’, ‘왜 이 사람은 해내는 일을 나는 못 할까’ 등의 감정 소용돌이에 휘말립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이러한 판단과 감정은 ADHD를 지닌 사람들을 더욱 부정적인 감정으로 몰아넣는 연쇄적인 효과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에 대해 윈터는 “이렇게 되면 ‘어차피 난 제대로 하지 못할 텐데 왜 귀찮게 노력하겠어’, ‘어차피 부정적인 반응만 얻을 텐데’ 등의 생각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감정이 이어지면 ‘거부 민감성 불쾌감’이라는 반응이 흔하게 촉발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즉 “비판받는, 거부의 상황에서 훨씬 더 깊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신감을 잃고 감정적으로 지나치게 동요할 수 있다.

물론 이렇듯 거부에 민감한 반응이 ADHD를 지닌 사람들에게만 찾아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ADHD와 만나면 그 정도가 더 악화할 수 있다.

‘가면 쓰기’의 문제

ADHD를 지닌 사람들은 결국 ADHD 진단 사실을 알리게 되는 것이기에 주변에 도움을 청하지 않을 때가 있다.

실제로 사회에서 ADHD에는 아직 오명이 따라붙는다. 아이들이나 앓는 것, 혹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윈터는 “ADHD라는 진단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아직 많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는 어떤 이들의 뇌는 다른 이들과 다른 식으로 기능한다는 생각에 대한 회의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많은 ADHD 근로자들이 ‘가면 쓰기’를 선택한다. 이에 대해 윈터는 “그저 동료들과 섞여들기 위해 자연적인 충돌을 대부분 억누르고 “받아들여지려면 어떤 인물로 보여야 하나’만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가면은 단시간엔 효과적일 수 있으나, 거의 지속될 수 없으며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사회 규범에 맞추기 위해 자기 정체성을 억눌러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 불편하고 피곤하며, 너무 길게 이어질 경우 가면 뒤 진짜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출처: Getty Images] ADHD가 있는 일부 근로자들은 ADHD 진단 사실, 이에 따라 겪는 어려움 등을 밝히지 않기도 한다
[출처: Getty Images] ADHD가 있는 일부 근로자들은 ADHD 진단 사실, 이에 따라 겪는 어려움 등을 밝히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ADHD 진단 사실을 직접 공개적으로 밝히는 게 반드시 안전한 것만은 아니다.

미팅 횟수를 줄이거나, 근무 시간을 조정하는 식의 정당한 편의를 요구할 경우 ADHD를 지닌 근로자는 함께 일하기 까다로운 사람, 팀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 등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거 20대 초반 시절 영국 런던의 금융업계에서 일했던 김 토(28)는 바로 이러한 상황을 경험했다. 꿈에 그리던 직업이었으나, “매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울었다”고 한다.

가면을 쓰며 생활하는 건 너무 피곤했고, 결국엔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토는 상사에게 조금만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문법과 철자 수정을 위한 보조적인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고, 산만한 환경에서 벗어나 집에서 근무할 수 있게 허락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직장에선 이를 좋게 보지 않았다.

토는 자신만의 시스템을 만들고 다른 동료들이 사용하지 않는 스프레드시트 등을 사용해 문제를 극복해보려고 했으나, 사람들은 토가 다른 사람들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그저 변명거리를 만들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거나, 특별한 치료가 필요한 사람으로 취급했다.

결국 토는 더 이상 이러한 편의 요청을 하지 않고 다른 동료들처럼 행동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이조차 효과가 없었다.

“사람들은 저를 관찰하며 ‘오, 정말 저 사람은 이 업계에 적합하지 않아’라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토는 “사실 업무에 관한 게 아니었다. 나는 내 일을 정말 잘했고 내 일을 사랑했다. 왜냐하면 내가 끊임없이 순응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토는 견디다 못해 금융계를 떠났다.

그 후 5년간 여러 직업을 전전했던 토는 자신에게 맞는 곳은 없다고 느꼈다. 당시엔 ADHD 진단을 받기 이전이었으나, 진단받은 지금은 이제 어려움의 근본 원인이 ADHD였음을 안다.

한편 윈터는 ADHD를 지녔지만 성과가 좋은 근로자의 경우라면 상사들이 왜 편의 요구를 들어줘야 할지, 그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만약 [상사들이] 보기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이는 직원이라면 왜 별도로 조처해주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ADHD를 지녔지만 업무 성과가 좋은 직원은 가면을 쓰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결국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윈터의 주장이다.

개선 단계

포용적인 직장 환경이나, 요청하는 조정 사항을 들어주는 상사를 만난다고 할지라도 ADHD를 지닌 근로자들은 거의 항상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직장과 상사가 나서서 도와준다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상황이 나아질 수도 있다.

셸포드는 지난 10년간 ADHD 진단이 증가하면서, ADHD에 대해 아는 사람이 늘어났고, 결과적으로 더 많은 이들이 고용주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윈터 또한 관리자들이 ADHD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서 더 개방적인 태도를 지니게 됐을 수도 있으며, 자신의 가족 구성원 내에서 ADHD를 지닌 이는 없는지 생각해 보게 됐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뜻하지 않은 계기로 직장 환경 내 편의를 추구하려는 움직임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까지만 해도 유연 근무제는 거의 드물었고, 근로자들이 업무 성과를 높이기 위해 개인적으로 필요한 조정을 하기란 어려웠다.

그러나 오늘날 어떻게, 그리고 어디서 일할지에 대한 근로자들의 자유가 훨씬 커졌다.

또한 상사들 또한 근로자들이 비전통적이고 유연한 직장 문화에서 더 성과를 낼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 이는 ADHD를 지닌 근로자들에겐 특히 도움이 되는 부분이다.

물론 고용주를 대상으로 한 교육 및 더 포용적인 일터 조성 또한 중요하다.

금융업을 관둔 토는 이제 기업 및 직장인 대상 코치 및 연사가 됐다. ADHD를 지닌 사람들만의 강점 및 이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힘쓰고 있다. 이러한 훈련은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이롭다는 게 토의 생각이다.

토는 “사람들은 (ADHD 근로자들이 요구하는 편의 사항은) 돈이 많이 들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전혀 비용이 들지 않는 변화도 있다”고 덧붙였다.

화면을 조금 더 읽기 쉽게 조정하거나, 방해 요소가 최소화된 조용한 공간을 제공하거나, 예상치 못한 중단을 방지하기 위해 엄격한 일정 관리 및 회의 시간 준수하는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토는 고용주들이 더 이상 이러한 편의를 일부 근로자가 누리는 특혜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누군가에게 부당한 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택권을 주면 더 나은 결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한 단계씩 개선되는 와중에도 ADHD를 지닌 직원들은 남들보다 불리한 상황을 마주해야 할 수도 있으며, 지지해주려는 직장 환경이 아닌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한편 크리스티안은 새 직장을 구했다. 하지만 크리스티안은 이전 직장에서 겪었던 어려움이 이번 직장에서도 똑같이 존재하리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결국 남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을 기반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세상이지만, 뉴로다이버전트들은 같은 일을 하는 데 훨씬 어려움을 겪는다”는 크리스티안은 “제조업이든, 코딩이든, 판매업이든 이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업계와는 무관하다”고 덧붙였다.

신원 보호를 위해 크리스티안의 성은 생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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