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그디 압델하디는 “축구가 어떻게 모로코의 정체성 논쟁을 촉발시켰는지”를 다뤘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은 이전의 다른 대회와 다른 점이 있다. 유독 논란이 많았던 것.
논란은 인권이 열악한 카타르에게 개최권을 준 결정은 물론, 결승전 직후 우승팀이 트로피를 들어올릴 때 카타르 국왕이 리오넬 메시에게 아랍의 망토를 입히던 순간까지도 이어졌다.
그런데 북아프리카 외부에서는 거의 주목하지 않았던 또 다른 논란이 있다.
뛰어난 경기력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 같은 강팀을 잇따라 제압하며 세계를 놀라게한 모로코 팀 ‘아틀라스 라이온스’를 어떻게 묘사해야 할까? 모로코 팀은 4강에 진출한 첫 번째 아랍 팀일까? 아니면 아프리카팀일까?
문화적으로 많은 모로코인들은 스스로를 아프리카보다는 아랍권으로 보는 경향이 크다. 모로코 내 사하라 사막 이남의 일부 아프리카인들은 사회 내에 인종차별적 태도가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스페인전 승리 후 나온 모로코 측면 공격수 소피앙 부팔의 발언이 모로코의 대륙 정체성 논란에 불을 붙였다. 부팔은 “전 세계의 모든 모로코인들, 모든 아랍인들, 그리고 모든 무슬림들의 지지에 감사한다”며 “이 승리는 여러분들의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소셜 미디어에는 이에 대한 반발이 봇물터지듯 올라왔다. 그 배경엔 모로코가 “투지와 재주로 전 아프리카 대륙을 자랑스럽게 만들었다”고 한 무하마드 부하리 나이지리아 대통령의 앞선 발언도 영향을 미쳤다.

결국 부팔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아프리카 대륙의 모로코 지지를 언급하지 않은 것을 통해 사과했다. “저는 이 승리를 여러분께도 바칩니다. 우리는 대륙의 모든 형제들을 대표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투게더.”
부팔의 발언을 둘러싼 반발은 최근 아프리카의 다른 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려 했던 모로코 국왕의 노력과도 관련있다. 모로코는 서사하라 영토 분쟁때문에 30년간 ‘아프리카연합’에서 탈퇴했다가, 2017년 복귀했다.
당시 모하메드 6세 모로코 국왕은 “아프리카는 나의 고향이며,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이러한 화해의 손짓 이후 모로코는 서아프리카를 비롯한 아프리카 국가들과 산업 번영을 위한 교류의 물꼬를 텄다.
하지만 모로코는 아랍 연맹 회원국이기도 하다. 때문에 공식적으로 두 개의 문화권에 속한다.
지리적으론 모로코 앞에 “아프리카”라는 형용사를 붙이는 것이 맞다. “아랍권”이라는 형용사를 붙이면, 자신을 아랍권과 동일시 하지 않는 많은 모로코인들을 배제시키게 된다.
그런데 모로코인 중에는 자신을 ‘베르베르인’ 또는 ‘아마지그’로 표현하는 이들도 많다. 일부 추정에 따르면, 이러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약 3400만여 명 모로코 인구 중 40%에 달한다. 베르베르어 역시 현재 아랍어와 함께 공용어로 인정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카타르가 2022년 월드컵 개최권을 획득했다. 개최국이 발표되던 2010년 당시, 카타르 언론은 헤드라인을 통해 이를 “이슬람과 범아랍주의의 승리”로 묘사했다.
그리고 월드컵이 시작된 후 범아랍주의와 이슬람주의 표현들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음주 금지나 LGBTQ 지지 완장을 둘러싼 논쟁에서 이슬람주의 및 범아랍주의 지지자들은 “제국주의 서구”에 맞서 카타르와 이슬람의 전통적 가치에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 카타르 측 미디어가 월드컵을 “이슬람 또는 아랍의 정복”이라 묘사했을 때는 이것에 주목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이 중계방송에 일부 등장하자, 분노어린 반응이 터져나왔다.
이후 아틀라스 라이온스는 월드컵 준결승전에 진출한 최초의 아프리카 및 중동 남자 팀이라는 역사를 썼다. 그러자 여기에도 이슬람 및 아랍 국가들의 승리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튀니지와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 아랍권의 다른 팀들이 월드컵 조별 예선에서 탈락한 후, 이들의 축구팬들이 모로코를 응원한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일각에서는 모로코의 성공을 훨씬 더 크고 이념적이며 정치적인 것으로 포장하려 했다. 그 결과 모로코 팀은 어느 순간 이슬람 및 범아랍주의의 기수 역할을 맡게 됐다.
그리고 일부 모로코 선수가 승리를 축하하며 당당하게 팔레스타인 국기를 펼치자 이러한 목소리는 한층 더 커졌다.
하지만 이런 수식 어구는 북아프리카의 많은 사람들, 특히 이러한 이념 및 세계관에 동의하지 않는 모로코인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문화 전쟁’
이 와중에 1시간에 달하는 발언을 통해 월드컵을 정치화하고 세계적 문화 전쟁으로 바꾸려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한 반체제 모로코 유튜버가 등장했다.
‘브라더 라시드’라는 유튜버가 38만5000명의 구독자들 앞에서 모로코 팀 코치 등 팀의 절반이 유럽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유럽에서 축구를 배우고 프로 선수가 됐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모로코 팀의 DNA 분석해 본다면, 대부분이 아마지그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그들 중 대부분은 아랍어를 못하고, 만약 한다고 해도 대부분 서양에서 자랐기 때문에 ‘서툰 아랍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슬람의 역할과 언론의 자유는 왕실이 스스로를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손으로 여기는 모로코에서는 민감한 주제다.
모로코 국왕은 초기 이슬람 통치자들을 일컫는 용어인 “신실한 지도자”라는 칭호를 사용한다. 하지만 이번 발언으로 화제가 된 유튜버는 논란이 될 만한 사안들을 다루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모로코는 근본적으로 베르베르 사회이기에 중동과는 다릅니다. 아랍인들은 7세기에 들어온 이방인들입니다. 오늘날 모로코에는 아랍인과 베르베르인, 무슬림, 유대인, 무신론자, 비종교인, 바하이교도가 있고 시아파와 수니파가 있습니다.”
그는 모로코의 성공을 “아랍주의와 이슬람의 승리로 묘사하는 것는 모로코 사회 안에 있는 다양한 요소에 대한 공격”이라고 말했다.
모로코의 승리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이용하려는 범아랍주의자들이나 이슬람주의자들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이번 쾌거가 모로코의 승리라고 주장하는 게시물이 소셜 미디어를 타고 확산되기도 했다. 그중에는 아마지그 상징을 새긴 팀의 사진을 게시한 것들도 있었다.

다른 평론가들은 축구 경기를 종교 또는 민족 전쟁으로 치환하는 것 자체가 불합리하다고 주장한다. 프랑스와 브라질, 아르헨티나의 승리를 기독교의 승리로 묘사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이들에 따르면, 유럽의 몇몇 국가 축구팀의 인종과 종교 분포를 보면 특정 팀의 승리를 어떤 종교나 민족의 승리라고 말하는 게 불가능하다.
결국 ‘모로코 팀의 진정한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둘러싼 논란은 북아프리카와 중동 전역에서 수십 년간 치열하게 펼쳐져온 ‘문화전쟁’의 가장 최근 버전인 셈이다.
민족 정체성은 수십 년간 이 지역의 정치적 담론을 형성한 두 가지 이념인 이슬람주의와 범아랍주의의 중심이다.
이는 민족 해방을 위한 투쟁 과정에서 개인의 자유보다 사회적 결속을 우선시할 때는 나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세계화가 더욱 확산되고 있는 오늘날에는 낡고 타당성이 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축구 경기를 둘러싼 논쟁이 분명히 보여주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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