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침공했을 당시 우크라이나의 베로니카 아하포노바(15)는 폭발음을 덮기 위해 피아노를 연주했다.
BBC가 아하포노바를 처음 만난 건 올해 3월로 어머니 나탈리아와 함께 모든 것을 뒤로한 채 하르키우를 떠나온 상태였다.
당시 아하포노바 모녀는 러시아 폭격기로부터 안전하길 바라며 커튼을 꼼꼼하게 친 어느 모텔에서 살고 있었다. 빛이 잘 들어오지 않아 어두컴컴한 그 모텔엔 이들 모녀 말고도 많은 이들이 다 같이 지내고 있었다.
여느 우크라이나 청소년 수백만 명처럼 아하포노바의 삶 또한 이번 전쟁으로 영원히 바뀌었다.
‘니카’라고 불리고 싶다는 아하포노바는 가족들과 자신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며 매일 아침 일어난다고 말했다. 15세 소녀의 입에서 나온 충격적인 말이었다.
러시아 군의 공습을 경고하는 사이렌이 울릴 때마다 비좁고 추운 지하실로 허겁지겁 몸을 피했던 당시를 묘사하며 “매우 정신적 충격이 컸다”고 회상했다.
그로부터 10개월이 지난 지금 영국에 살고 있는 니카는 마침내 제대로 잠들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영국에서 만났을 때 니카는 “내가 안전한 곳에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니카는 영국인 가족의 집에서 지내며 명문 사립학교 차터하우스 스쿨을 무상으로 다니고 있다. 이제 니카는 폭발음을 덮기 위해서가 아니라 즐거워서 피아노를 친다.
“여기선 매시간 사이렌이 울리지 않는다”는 니카는 아직도 문이 쾅 닫히는 소리나 불꽃놀이 소리에 깜짝 놀라지만 “다음 폭탄은 근처에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끔찍한 기억은) 제 마음속에 여전히 있기에 영원히 남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언젠가 잊을 수 있길 바랍니다.”
니카의 고향인 하르키우는 우크라이나 북동부로 러시아 국경과 인접해 있으며 지난 9월 러시아군이 철수할 때까지 수개월 동안 집중적인 포격의 대상이 됐다.

현재 하르키우 내 살티브카 지역엔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폐허가 된 채 줄지어 늘어서 있지만, 지난 3월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 후 발견한 여러 잔해와 산산조각이 난 유리 조각들은 치워진 상태였다.
곳곳에 “하르키우가 일하고 있다!”는 식의 애국심 고취 선전문이 붙어 있으며, 한때 피난 온 시민들이 내부에서 웅크리며 잠을 청하던 지하철은 운행을 재개했다.
그러나 하르키우 주민들은 이제 또 다른 문제에 직면했다. 러시아가 한겨울에 에너지 시설을 공격한 탓에 전기도, 난방도, 물도 없을 때가 많다.
니카의 같은 반 친구 28명 중 하르키우에 남아있는 이는 8명뿐이며, 이들 또한 안전상의 이유로 학교가 아닌 원격 수업을 듣는다.
그러나 이들을 가르치는 교사 마리아는 단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다. 마리아는 전국 혹은 전 세계에 흩어진 학생들을 위해 온라인에서 수업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전기가 나가면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촛불로 실내를 밝힌 뒤 수업을 이어 나간다.
마리아는 “러시아는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모른다. 우리는 강하고, 이겨낼 것”이라면서도 학생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학생들을 그저 안아주고 싶다”고 했다.

니카는 함께 끔찍했던 나날들을 견딘 고국의 친구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도 그립다.
“이곳 [영국에선] 관심을 많이 받을 수 있으나, 그래도 혼자”라는 니카는 “왜냐하면 그 누구도 제가 경험한 것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영국 친구들이 저와 같은 경험을 절대 겪지 않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니카는 “가끔은 제 경험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제가 겪은 모든 것을 말하면 친구들이 불편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합니다.”
한편 어머니 나탈리아는 딸이 “놀라울 정도로” 잘 적응하고 있다면서 영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우크라이나에서 현재 벌어지는 전쟁과 파괴의 현장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탈리아는 여전히 휴대전화 속 공습 앱을 지우지 않고 있었다. 어머니가 여전히 하르키우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나탈리아는 아직도 우크라이나 뉴스를 끊임없이 확인한다.
니카의 외할머니 타마라는 하루 중 대부분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
타마라가 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으며 전기가 들어오는 시간에도 전기를 아끼기 위해 최소한의 전력을 사용하고자 노력한다.
다른 여러 노인들과 마찬가지로 타마라 또한 “집은 집”이기에 떠나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도, “화약통 위에서 살아가는 느낌”이라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로 신경이 곤두선다”는 타마라는 “하지만 곧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자신에게 말한다”고 말했다.
“제 딸들은 곧 제 곁으로 돌아올 겁니다. 저는 딸들이 지금 안전하게 지내고 있기에 기쁘지만, 딸들이 돌아오는 순간을 위해 살아갑니다.”

BBC가 찾아갔을 땐 니카가 할머니와 떨어진 첫해에 맞이한 16번째 생일날이었다.
수화기 너머 손녀딸에게 생일 축하 인사말을 건넨 타마라는 “니카가 너무 커버렸다!”며 미소 지었다. 그러더니 이내 눈물을 터뜨렸다.
타마라는 러시아인들을 지칭하며 “저들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했나. 그리고 무엇을 위해 이런 짓을 했나?”며 알고 싶어 했다.
한편 니카는 아직까진 미래에 관한 생각을 잠시 미뤘다.
“전쟁 이전의 삶과 집을 되찾고 싶지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는 니카는 가장 큰 소원으로 “여기서 삶을 꾸려나가고, 평범한 10대가 되기 위해선 아마도 안정과 평온일 것”이라고 대답했다.
“또한 저는 우크라이나에 평화와 평온이 찾아오기를, 사람들이 그만 죽기를 바랍니다.”
추가 보도: 토니 브라운, 매튜 고다드, 한나 초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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