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서류상으로는 고아지만 정말로 고아였는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어요.”
덴마크 입양인 한분영(48) 씨는 “해외 입양인이 한국에 돌아와 가족과 재결합하는 이야기는 종종 아름답고 예쁜 이야기로 언론에 그려지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말한다.
입양 기관으로부터 입양 관련 정보를 충분히 얻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서류상으로는 고아로 기록됐지만, 수소문 끝에 실제 부모님을 찾는 경우도 있다.
또 친부모를 찾았다고 생각했다가 친자 확인 검사에서 다른 결과를 받는 경우도 있다. 서류상 정보가 잘못된 경우다.
국제 입양으로 한국을 떠나야 했던 해외 입양인들은 한국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질까?
한 씨는 1974년 태어난 지 약 3개월 만에 덴마크로 입양 보내졌다 지난 2002년 한국으로 돌아와 정착했다.
그는 한국 사회가 해외 입양인들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이 있다고 말한다.
한국 사회에서 해외 입양인들은 자신을 ‘버린’ 모국에 대해 원망하거나, 입양을 간 곳에서 소위 ‘좋은 교육’을 받고 크게 성공한 모습 둘 중의 하나로만 묘사됐다는 것이다.
한 씨의 경우, 한국에 정착한 이후 많은 언론 인터뷰에서 후자의 모습을 요구받았다.
한 씨는 과거 언론 인터뷰 경험들에 대해 “입양인의 이야기를 듣는다기보다 입양인에게 ‘입양 가서 교육도 잘 받았으니 잘된 일’이라고 설득하는 것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씨가 입양인으로서 덴마크에서 자라온 과정, 성인이 되고 한국에 정착한 이후 지난 20년 동안 겪은 여러 감정들은 ‘성공한 입양인’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될 수 없다.
입양특례법 개정됐지만 여전히 ‘알권리’ 보장 안돼
한 씨는 BBC 코리아에 “많은 해외 입양인들이 한국에서 입양 관련 정보를 찾으려는 과정에서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에 정착하고 입양인 권리 관련 활동을 해오면서 입양인으로서 개인의 문제가 한국의 사회 복지 시스템의 개선 없이는 해결될 수 없음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한 씨는 애초 대학원에서 한국학을 공부했었지만 현재는 사회복지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BBC 코리아에 “복지 국가라 불리는 덴마크 출신 입양인의 시선으로 볼 때 한국의 복지 시스템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며 “사회복지학이라는 학문이 좋았다기 보다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에 대한 답답한 마음으로 공부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 씨가 “이해할 수 없다”고 느낀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입양인들이 본인의 개인 정보에 접근할 권리를 보장 받지 못하는 점이다.
한 씨를 포함한 많은 입양인들이 본인의 입양 과정과 관련된 정보를 열람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좌절을 겪었다. 그 과정은 많은 이들에게 트라우마를 남기기도 했다.
한 씨는 “가장 큰 문제는 정보를 제공 받는 데 있어 기준이 없다는 점”이라면서 “같은 기관에 방문하더라도 갈 때마다 기준이 달라 정보를 받을 수 있는지의 여부와 받는 내용이 그때 그때 다르다”고 말했다.
한 씨는 한국에서 그의 입양을 담당했던 한국사회봉사회와 고아원 등 여러 관련 기관을 수차례 방문했다.
그는 “입양인들이 어떤 기관을 방문할 때 이용할 수 있는 정보가 ‘여기부터 여기까지’ 라는 식으로 딱 정해진 것이 아니라 물어볼 때마다 그리고 물어보는 방식에 따라, 혹은 방문할 때 어떤 사람과 함께 가느냐에 따라 그 범위와 내용이 달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를 담당했던 고아원에서 십 년, 십오 년 전에 보여줬던 서류를 다시 보려고 얼마 전에 전화했을 때 이전과 달리 ‘보여줄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2012년 입양특례법이 개정되면서 해외입양인들이 입양에 관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가 법으로 명시됐지만, 여전히 많은 해외입양인들은 친부모에 대한 ‘알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고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애초 입양 서류 자체가 허위로 작성되거나 출생기록 등 주요 정보가 누락된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입양 당시 관련 정보 보관과 관리에 대한 규정이 없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다.
한 씨는 “2012년 관련 법 개정 이후 한국사회봉사회로부터 입양 절차를 좀 더 원활하게 할 수 있기 위해서 관련 개인 정보를 위조했다는 내용이 담긴 사과 편지를 받는 덴마크 입양인들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씨를 포함한 덴마크 입양인들은 주로 한국사회봉사회를 통해 입양되었다.
다만 한국사회봉사회는 해당 문제에 대한 BBC 코리아의 질의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답을 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 씨는 “현재 법에 따라 입양 관련 정보 공개를 요청할 수 있지만 거기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많은 입양인들이 부모가 없는 고아로서 고아 호적을 가지고 있는데 이 중 가족을 찾는 경우도 있고 많은 경우 서류에 기재된 문구가 그대로 복사해 붙인 것처럼 유사하다”고 말했다.
‘고아 호적’
과거 입양기관들은 아이들을 해외로 입양 보내기 위해 실제 가족 정보, 출생 정보와 다른 내용을 기재하기도 했다. 입양국의 규정에 맞춰 합법적 서류를 구비하기 위해 허위 정보를 기록해 아이들을 ‘법적 고아’로 만든 것이다.
한 씨는 한국에 돌아와 얻은 자신의 호적이 이런 불법적인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한 씨는 처음 자신의 호적을 얻었을 때 그 내용을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호적에 기재된 대로 덴마크에서의 이름도 ‘한분영’으로 개명했다.
한 씨는 이에 대해 “이 이름이 제 아이덴티티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믿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의심으로 바뀌었다.

입양인들 중 ‘고아 호적’을 갖고 있음에도 친부모를 찾게되는 사례가 종종 나왔다. 또 많은 입양인들이 서로의 호적에서 유사한 문구가 있다는 것이 한 씨의 지적이다.
한 씨는 한국에 정착한 후 다양한 입양 관련 일을 해오다 올해부터는 ‘덴마크 한국인 진상규명 그룹(Danish Korean Rights Group, 이하 DKRG)과 함께 활동하고 있다.
그는 “단체를 통해 고아 호적을 가지고 있는 입양인들의 사례가 수백 건 축적되면서 고아 호적에 사용된 문구들이 마치 복사해 붙여넣기 한 것처럼 유사한 패턴(pattern)을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이런 부분들이 규명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BBC 코리아는 DKRG를 통해 한국사회봉사회가 1970년대 출생 입양인들에 대해 작성한 수 건의 고아 호적을 확인했다. 호적들의 ‘기타 정보’ 란에는 아동이 ‘해외 입양을 위해 위탁되어 보내짐(referred and released for overseas adoption)’ 혹은 ‘부모에 대한 정보는 기록된 바 없음’ 등의 문구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계 3위 ‘고아 수출국’
한 씨가 이해할 수 없는 또다른 점은 한국이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룬 후에도 여전히 많은 아이를 국외로 입양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건복지부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1953년부터 2021년까지 64년 간 16만 9000여 명을 해외로 입양 보냈다.
한편 매년 국제입양의 통계를 공개하는 ISS(International Social Service)에 따르면, 한국은 2011년 입양특례법을 개정 한 후 2012년 797명이던 국제입양이 감소세를 보였다. 다만 코로나 기간 2019년 254명이던 한국의 해외입양은 이듬해인 2020년 266명으로 늘었다.
특히 ISS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한국의 해외입양 규모는 세계에서 콜롬비아(387명)와 우크라이나(277명)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한국의 해외 입양 역사
- 이승만 정권(1948~1960년) 때는 소위 ‘원 피플 원 블러드’ 정책으로 많은 혼혈아들이 해외로 입양 보내졌다. 중앙입양원에 따르면, 1955년부터 1961년까지 4185명의 혼혈아동이 해외입양 됐다. 이들 중 대다수는 미국으로 입양됐다.
- 1960-70년대 박정희 집권 시절 제도화된 해외 입양은 1980년대 전두환 정권에서 ‘이민확대 및 민간외교’라는 명분 하에 크게 급증했다.
- 한국 정부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따르면 1980년대 10년 기간 동안 6만 5000여 명이 해외로 입양되었고, 1948~1988년의 5년 동안은 한 해 태어난 총 출생아 중 1%가 넘는 아동이 해외로 입양됐다.
- 한국은 2011년 입양특례법을 개정 한 후 2012년 797명이던 국제입양이 감소세를 보였다. 다만 코로나 기간 2019년 254명이던 한국의 해외입양은 이듬해인 2020년 266명으로 늘었다.
- 자신의 출생 정보와 가족 관계 정보를 얻지 못하는 해외 입양인들의 문제 제기가 계속되면서 한국 정부는 최근 몇 년간 ‘출생통보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의료계의 반대로 관련 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한 씨는 “한국의 해외 입양 제도는 그 의미가 시기에 따라 달라졌을 뿐 아직까지 사회 문제로 남아 있다”면서 “처음 ‘깨끗한 대한민국을 만든다는 기치 하에 피부 색이 다른 사람을 버리는 것에서 시작해 그 다음은 장애가 있는 아이, 그 다음은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아이였다”고 말했다.
한 씨는 또 “해외 입양인이 입양 담당 기관으로부터 가장 자주 듣는 입양 사유는 친모가 친부와 결혼하지 않을 상황이라 입양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라면서 “아이가 태어나 건강한 가정에서 자랄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은 해외 입양이 아닌 국내 사회 복지 제도 안에서의 충분한 지원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한국 정부의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는 이달 초 1970~90년대 해외로 보내진 입양아들의 입양 과정에서 일어난 인권 침해와 불법 행위 의혹에 대해 조사를 개시한다고 발표했다.
앞서 올해 8월, 덴마크, 호주, 스웨덴, 미국 등으로 입양 보내졌던 3백여 명의 해외 입양인들이 낸 진정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DKRG에 따르면, 진실화해위 신청 기간이 마감된 12월 9일까지 총 334건의 사례가 진실화해위에 전달됐다.
한 씨도 우선 조사 대상으로 결정된 34건의 사례 중에 포함됐다.
앞서 진실화해위는 해외 입양인들의 진정에 대해 검토한 결과, 입양기관들이 친부모가 있는 영유아를 길거리에서 발견된 고아라고 허위 기재하거나 다른 아이 신원으로 조작해 입양 보낸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진실화해위는 당시 국가의 책임 부서를 포함해 해외 입양을 실시한 홀트아동복지회, 대한사회복지회, 동방사회복지회, 한국사회봉사회 등 입양 기관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조사는 약 1년 혹은 그 이상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한 씨는 이번 조사 결정에 대해 “정부가 해외 입양인들이 입양되는 과정에서 이들에 대한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공식 조사에 착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한다.
또 “한국 해외 입양의 역사 70년 동안 정부가 수차례 바뀌어 왔고 담당 실무자들도 바뀌어 온 만큼 특정 정부나 특정 기관이 모든 잘못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면서 “하지만 해외 입양인들은 입양 관련 정보에 대한 투명한 공개와 불법을 저지른 책임자를 규명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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