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야네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비만혐오'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이 때문에 차별 대우를 받은 피해자들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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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야네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비만혐오’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이 때문에 차별 대우를 받은 피해자들을 돕고 있다.

“이상한 일이죠. 집에서 이렇게 가까운데도 5년 전에야 처음 이 해변에 발을 디뎠습니다.”

라야네 소우자(32)는 브라질 남동부 이스피리투산투주의 주도 비토리아 섬 출신으로, 소우자의 부모님은 일대의 멋진 도시 전망을 자랑하는 일하 도 보이 지역에 집을 소유하고 있다.

BBC는 해변에서 소우자를 만나 ‘고르도포비아(gordofobia)’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포르투갈어로 ‘몸집이 큰 사람에 대한 차별’을 뜻하는 단어로, ‘비만혐오’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비만혐오’에 대한 인식 제고

소우자는 ‘법에서의 비만’이라는 단체의 창립자 중 하나다. 비만혐오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높이고 편견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아 이에 따른 법적 배상을 원하는 피해자들에게 변호사를 연결해주는 단체다.

우리가 흔히 브라질이라고 하면 “태닝한 피부에 해변에 나가기 좋은 몸”이라는 고정관념을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브라질은 사회 운동가들이 체형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공공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 제정을 요구하는 나라이자, 변호사들이 특히 비만으로 인한 직장 내 차별 건을 법정 싸움으로 이어가고, 여성들이 미인 대회에서 플러스 사이즈의 아름다움을 축하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소우자가 해변 공원 벤치에서 인터뷰하는 동안 소우자의 남자친구가 이 모습을 촬영했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것이라고 했다. 소우자는 팔로워가 1만8000명이 넘는 인플루언서로 언제나 자신의 일상을 공유한다.

https://www.instagram.com/p/CYr2ZyAPfu7/

그런 소우자에게선 과거 집 근처 해변엔 절대 발도 디디지 않은 채 11년을 살았던 어린 소녀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10대 시절 저는 친구들과 해변에 가는 것을 피하려고 생각해보지 않은 변명거리가 없었습니다. 생리한다고 말한 적도 있고 아프다고 말한 적도 있어요 … 그리고 이러한 변명이 통하지 않을 때면 저는 검은색 레깅스 위에 헐렁한 셔츠를 입고 해변에 앉아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을 겁니다.”

“저는 평생 비만이었습니다. 저는 뚱뚱한 아이였고, 뚱뚱한 십 대였죠. 저는 주변 사람들이 제 몸무게에 관해 얘기하는 게 익숙했습니다.”

하지만 소우자가 대학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무언가가 바뀌었다.

충격적인 경험

2012년 소우자의 동기 몇 명이 소우자의 몸에 대해 얘기하는 그룹 ‘왓츠앱’ 메시지방을 만들었다.

소우자의 개인 SNS에서 사진을 가져와 단체방에 올리곤 소우자의 외모에 대한 비열한 말을 늘어놓는 곳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대화방 멤버 중 한 명이 죄책감을 느끼고 소우자에게 이 사실을 솔직히 털어놨다.

그리고 이 충격적인 경험으로 오히려 소우자는 관점이 변하게 됐다고 한다.

우자와 올리베이라는 매달 약 70건의 편지를 받는다. 차별로 인한 보상을 받고 싶다며 도움을 청하는 이들도 있고, 그저 자신들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어 하는 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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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자와 올리베이라는 매달 약 70건의 편지를 받는다. 차별로 인한 보상을 받고 싶다며 도움을 청하는 이들도 있고, 그저 자신들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어 하는 이들도 있다.

충격적인 경험과 이로 인한 고통을 견디는 과정에서 소우자는 ‘신체 긍정 운동’을 처음 알게 됐다. 이는 지난 70년대 미국에서 생겨난 개념으로, “자신을 관리하고, 자신을 사랑하며, 자신을 수용하자”는 운동이다.

“비만혐오의 개념을 깨달았을 때, 지금껏 인생에서 당한 모든 일들이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결코 제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사회의 잘못이었던 거죠.”

그렇게 2019년, 소우자는 인권 변호사인 친구 마리아나 올리베이라에게 함께 단체를 설립하자고 말을 건넸다.

현재 소우자와 올리베이라는 매달 약 70건의 편지를 받는다. 차별로 인한 보상을 받고 싶다며 도움을 청하는 이들도 있고, 그저 자신들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어 하는 이들도 있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브라질에서 현재 재판 중인 노동 사건 중 ‘비만혐오’가 언급되는 사건만 1400건이 넘는다.

직장 내 차별

물론 브라질에서 비만혐오가 범죄는 아니지만, 타인의 명예를 훼손, 비방 또는 괴롭힐 경우 고소 등의 조처를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게 올리베이라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어느 고용주가 직원에게 체중 감량을 조건으로 보너스를 지급했던 사건을 언급했다.

당시 “그 고용주는 여성 직원에게 체중계에 올라가게 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법원은 직원의 손을 들어주며 약 1800달러(약 220만원)의 배상금을 책정했다. 이는 비만혐오 사건과 관련해 브라질에서 기록된 최고 금액이긴 하나, 브라질 사법 제도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여전히 적은 금액이긴 하다.

그 고용주는 법원에서 해당 직원을 “딸처럼 생각해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살을 빼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이러한 관계는 부녀관계와 전혀 닮은 점이 없다고 선을 긋는 한편 “이번 사건에서 밝혀진 여러 사실 관계들은 논쟁의 여지가 없지만, 마치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해당 사건처럼 소송까지 이어지는 사건이 증가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트라우마를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기에 배상을 요구하려 들지 않는다는 게 소우자와 올리베이라의 설명이다.

브라질 남동부 에스피리토 산토 지역에서 어떤 여성이 4시간가량 버스 내 회전식 입구에 몸이 끼는 바람에 소방관들에 의해 구출돼야 했던 사건이 바로 이러한 경우였다.

소우자는 “시민들이 이 여성의 모습을 촬영해 SNS에 올리면서 놀려댔다”고 말했다.

실제로 브라질의 비만 인구에게 버스 내 회전식 입구는 큰 문제이다. 소우자 또한 14살 때 비토리아 시내로 향하던 중 몸이 끼는 일을 경험한 이후로 버스를 타지 않는다고 했다.

“저는 다행히도 택시를 타거나, 직접 운전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브라질 시민들에게 이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변화의 움직임

브라질 교실에 체형이 큰 학생을 위해 준비된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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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교실에 체형이 큰 학생을 위해 준비된 의자

소우자는 체형에 상관없이 모든 이들이 공공 시설물을 더 자유롭고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법을 수정 및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버스와 관련해 소우자는 뒷문 탑승 허가야말로 쉬운 해결책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브라질에선 뒷문으로 탑승하기 위해선 운전사에게 따로 부탁해야 하는데, 때론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한편 비토리아에서 약 1500km 더 북쪽에 있는, 브라질 동북부 페르남부쿠주 헤시피 지역에선 관련 정책이 변하고 있다.

비만혐오 금지법 통과

헤시피 지역에선 작년 비만혐오 금지법 2건이 통과됐다. 하나는 시민 의식 제고를 목표로 하며, 다른 하나는 몸집이 큰 학생들을 위해 모든 학교 교실에 적어도 특별 책상 하나씩을 구비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법안을 발의한 시다 페드로사 의원은 “학창 시절 (비만으로) 수모를 겪었다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면서 “이 학생들은 성인용 의자를 가져오기 위해 매일 교장실에 들락날락해야 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페드로사 의원은 체형에 상관없이 수용적인 도시를 가꿔나가는 것은 비만 퇴치 및 건강한 식습관 촉진 운동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꼭 반드시 모든 게 하나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페드로사 의원은 “정부는 공립학교 학생들에게 건강한 음식을 제공하고, 시민들의 건강한 습관을 들일 수 있도록 장려할 의무가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뚱뚱한 사람은 병든 사람이라는 생각을 그냥 놔둘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사회 운동가 캐롤 스타틀러 또한 이러한 생각에 동의한다. 스타틀러는 페드로사 의원과 함께 힘을 합쳐 이번 법안 통과를 끌어낸 단체인 ‘아름다운 신체’ 출신이다.

스타틀러는 종종 몸집이 큰 사람들은 게으르다는 편견이 있다면서, 이에 따라 직장에서 문제가 생길 때도 많고, 자신의 상황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저임금 일자리에 묶인 사람들도 많고, 대도시로 장시간 통근해야 하는 사람도 많은 한편 과일이나 채소를 먹고 운동할 시간이 나는 건 특권이 됐다는 지적이다.

브라질의 플러스 사이즈 모델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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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플러스 사이즈 모델 대회

“이는 사회 구조적 (문제)입니다. 과체중 인구가 늘어나고 있고, 우리는 이에 대응해야 합니다.”

공식적인 수치에 따르면 브라질 인구 중 절반이 과체중이며, 비만으로 간주되는 비율이 4명 중 1명꼴이다.

체중 감량은 쉽지 않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우리는 인류의 진화를 탓해볼 수도 있다. 역사를 통틀어 인류는 풍요로웠던 시절보다 굶었던 시절이 대부분이었다.

이에 따라 체중이 줄어들면 이를 채우기 위해 식욕이 증가하게 돼 있다는 게 헤시피 지역에서 클리닉을 운영하는 루시아 코르데이로 내분비학 박사의 설명이다.

또한 심리적인 요소를 생각해볼 수 있다. 코르테이로 박사는 미국 비만 인구의 약 30%가 섭식 장애를 앓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만 치료에 정신 건강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또 다른 30%의 경우는 유전적 요인을 살펴볼 수 있다.

코르데이로 박사는 비만은 암에서 심부전, 수면무호흡증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질병과 관련된 염증성 질환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과체중 혹은 비만이어도 건강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반대 또한 마찬가지”라는 코르데이로 박사는 “날씬하다고 다 건강한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우리는 환자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평가합니다. 과체중이지만 고혈압, 당뇨, 지방장애가 없다면 건강한 사람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코르데이로 박사에게 비만 인구 증가는 해결책이 필요한 공중 보건 문제가 맞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비만 인구가 더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또 이들이 차별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사회를 변화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세상엔 이 두 가지 모두 필요하다는 게 코르데이로 박사의 설명이다.

“사람들에게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라고 말해야 하지만,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선 신중해야 합니다. 비만에 대한 편견, 비만혐오로 잘못 전달 될 수도 있으니까요.”

한편 비토리아의 소우자는 많은 비만 인구가 “의사를 찾아가기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BBC 또한 여러 사람들로부터 증상 혹은 의학적 조언을 구하게 된 이유에 상관없이 의사로부터 무조건 살을 빼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는 얘길 들었다. 건강 전문가로부터 공공연하게 비난받거나 혹은 수치스러운 말을 듣는 일이 드물지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소우자는 현재 자신의 건강한 식습관을 도와줄 “공감해주는” 의사를 찾고 있다. 소우자와 약혼자 티아고는 임신 계획이 있고, 가능한 한 순조롭게 임신할 수 있길 바라기 때문이다.

“저는 삶의 질을 높이고, 또 건강하게 먹고 싶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살이 빠진다면 그것도 좋지만, 그게 제 주된 목표는 아닙니다. 저는 뚱뚱한 몸과 건강한 임신이 동시에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한편 소우자는 비만혐오에 반대하는 운동가라고 하면 건강하지 않은 생활 방식을 옹호한다는 잘못된 편견에 시달린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건 체형에 상관없이 시민들이 자유롭게 공공 시설물을 이용할 수 있는 도시, 의사가 환자를 인격적으로 대하는 병원, 사람들이 공정하게 대우받는 직장 환경이라고 말했다.

“(비만혐오 반대 운동은) 건강하지 못한 생활 방식 옹호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저희는 사람들에게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현재의 체형에 오래 머무르도록 장려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사람들이 스스로 용기를 내 권리를 찾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결정할 권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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