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라 홀
셰프 라스무스 멍크와 그의 팀은 한때 극장용 세트 작업장이었던 곳을 식당으로 만들었다. 이곳에서 이들은 버려지는 재료를 활용해 미슐랭(미쉐린) 스타를 받은 요리와 토끼의 귀로 만든 음료, 그리고 음식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크고 무거운 청동 문을 열자, 후기 산업사회의 삭막한 거리 풍경에서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어두운 공간이 드러났다. 코펜하겐에 있는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 ‘알케미스트’. 이곳에 들어서자, 흡사 토끼굴로 떨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코스 요리 초반에 나오는 몇 가지 음식은 호화로운 라운지에서 제공됐다. 이곳에는 주방이자 연구실을 향해 난 창이 하나 있었는데, 창 너머 벽에는 각종 재료를 담은 병들이 배경 조명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이어 반구형 천장이 있는 곳으로 가니, 마치 “바다” 속을 헤엄치는 해파리처럼 비닐 장식물이 머리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믿기 힘들 정도로 독특한 40여 가지 음식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미각에 여운을 잔잔하게 남기는 버터 바른 로브스터(바닷가재) 집게발. 덴마크 동화작가 안데르센 얼굴로 배열돼 수프를 부어 녹여 먹는 허브. 깨물면 잘 익은 토마토 맛이 나는 스노우볼. 핥으면 구스베리와 호박씨 맛이 나는 혀 모양의 실리콘 스푼. 푸아그라(거위나 오리의 간)를 혼합해 비단 같은 질감을 낸 페로 성게 등.
해파리의 생물발광(생물체가 스스로 빛을 만들어 내는 현상) 물질이 들어간 음료가 나올 때는, 실내가 어두워져 음료에서 나오는 빛이 부각됐다.
이곳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이들은 소수의 특권층(메뉴는 음료를 제외하고 1인당 538파운드인데, 3개월 전 발매된 식사권이 몇 초 만에 매진됐다)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셰프 라스무스 멍크는 손님들에게 초현실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것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세계 50대 레스토랑’으로 꼽힌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을 만드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그는 “(내 목표는) 미식이 플랫폼이 되고, 미식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하는 일을 통해 사람들에게 더 많은 영향을 미치고 싶어요. 그래서 우리는 스토리텔링과 프레젠테이션에 정말 많이 신경을 쓰죠.”
알케미스트의 요리 중에는 “헝거(굶주림)”라는 게 있다.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생산된 토끼 고기를 은으로 된 얇은 갈빗대 위에 얹은 요리다. 이 음식을 먹는 부유한 이들은 기아를 떠올리며 당혹감을 느낀다. 금속 돔형 천장에 양계장 영상이 비칠 땐, 닭발이 양계장과 똑같은 비율로 만들어진 닭장에 담겨 나온다. 또한 핏방울 모양의 아이스크림은 장기기증으로 연결되는 QR코드와 함께 제공된다.
지속 가능성과 생물학적 다양성을 다룬 요리들도 있다. 외래 침입종인 페로 성게는 수중 식물에 해를 끼치기 때문에, 이를 먹는 게 환경 보호가 된다. 뿔나비 요리는 단백질이 풍부한 곤충을 어떻게 하면 양식할 수 있을지를 모색한 결과다. 이러한 시도가 그저 하나의 요리로 끝난 건 아니다. 2020년 이후 이곳을 방문한 이들 중 약 1만3000여 명이 장기 기증 QR 코드를 사용했다 (방문자가 최종적으로 사이트에 접속해야만, 식당은 실제로 몇 명이 등록했는지를 집계할 수 있다).
하얀 식탁보와 웨이터, 식사하는 사람, 셰프라는 고급 식당의 고전적 조합을 훌쩍 뛰어넘는 아이디어는 라스무스가 유틀란드에서 셰프로 일하던 시절에 싹텄다. 그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요리 경력을 쌓고 있었지만, 자원봉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가 나름의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언젠가 한 번은 불우한 어린이들을 위해 크리스마스 저녁 식사를 만들었는데, 그걸로 큰 즐거움을 느꼈다”라고 했다. “이후 음식은 맛있게 만드는 게 다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2015년 그는 코펜하겐의 다른 장소에 첫 번째 알케미스트를 열었다. 그곳에서 그는 폐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먹을 수 있는 재떨이 요리’ 등을 선보이며, 독창적인 셰프라는 명성을 쌓아갔다. 그 당시 지역에 있는 다른 셰프들은 당대 주류로 자리잡은 ‘뉴 노르딕’ 양식을 따를 때였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전체론적 요리”라는 이름으로 예술과 과학, 사회를 아우르고자 했다. 그는 이 관점을 직원과 재료 공급처를 대하는 방법부터 레스토랑을 디자인하는 방식까지 모든 것에 투영했다.
그의 식당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매주 평일 4일씩 근무를 하고 주말에는 쉰다. 주당 48시간을 일하는 것. 고급 식당에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또한 연금과 의료 보험도 제공된다. 이곳에는 셰프만 있는 게 아니다. 작곡가와 공연 예술가, 3D 애니메이터도 있다. 요리에 대한 전체론적 접근을 즐긴 손님들은 원형 공연장을 통과해, 배우와 댄서들의 환송을 받으며 돌아간다.
이러한 라스무스의 창의적 생각은 억만장자 금융업자 라스 시어 크리스텐센의 관심을 끌었다. 덕분에 그는 2019년, 덴마크 왕립 극장에 있는 극장용 세트 작업장에 현재의 레스토랑을 열 수 있었다. 그리고 개점 7개월 만에 미슐랭 2스타를 받았다. 스페인의 전설적인 셰프 페란 아드리아는 이곳을 방문한 뒤, 지난 10년 동안 먹어본 식사 중 기억에 남을 식사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이곳이 추구하는 생각은 열린 마음과 신중한 초점을 통해 힘을 얻는다. 이 레스토랑에는 24명의 셰프가 닭발을 다듬고 속을 꽉 채운 미니 바오번을 만들고 저녁 손님을 대접할 준비를 하는 주방만 있는 게 아니다. 디에고 프라도가 이끄는 연구팀이 훗날 사용될 새로운 재료와 실험 음식을 개발한다.
디에고는 “우리는 ‘테스트 주방’이 흥미롭고 새로운 요리를 만들 수 있도록 새로운 요리 구성 요소를 개발한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재료와 새로운 기술을 찾으면, 테스트 주방에서 이 모든 것을 시도해보는 것이죠.”
최근에는 고치용 단백질을 만드는 누에의 실크를 정제해 머랭으로 만들었다. 양잠업자들을 설득해 누에 가루를 모아 차를 만들기도 했고, 개미로 요거트도 만들었다. 이와 함께 계절에 따라 맛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나비를 연구 중이다.
디에고뿐만이 아니다. 나빌라 로드리게스 발레론 박사도 일본 ‘고쿠미(깊고 풍부한 맛을 뜻하는 일본어)’에서 영감을 받아 채소에서 쓴맛을 없애는 연구를 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색다른 제품과 음식을 개발하는 일은 매우 흥미롭다”라고 했다. “사람들이 더 건강한 식생활을 할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해요. 특히 어린이들에게 효과가 있을 겁니다. 삶은 브로콜리를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덴마크 공과 대학 연구원들과도 협업하고 있다. 해초와 곰팡이에서 지속 가능한 음식을 개발하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여러 재료를 분해해 새로운 것을 만드는 시도를 하고 있다.
디에고는 “우리는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의 경계를 넓혀왔다”며 “이런 게 결국 하나의 요리로 끝날 수도 있지만, 우리의 목표는 그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는 식당과 직접 관련이 없는 프로젝트를 더 많이 하고 있어요.”
그중 하나가 ‘MIT 미디어 랩’ 연구원과 하고 있는 우주 음식 공동 연구다. 연구팀은 달의 토양을 실험하고, 된장을 우주로 보내 발효법이 미래 우주 거주자를 위해서도 활용될 수 있을지를 연구했다.
디에고는 식재료 공급업자나 농부들과도 의견을 나눈다. 생산물 중 기존에는 사용하지 않았고 팔지도 않던 것들을 활용해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토끼 귀가 들어간 “퍼(털) 마티니” 칵테일 등 많은 요리가 만들어졌다.
어쩌면 주방에서 벌어지는 가장 신나는 일은 접시 위에 놓인 음식이 아닐지도 모른다. 음식에 대한 지식과 전체론적 접근을 사회를 이롭게 하는 데 사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팬데믹 동안 라스무스는 자신이 운영하는 비영리단체 ‘정크 푸드’와 알케미스트의 주방을 활용해 코펜하겐의 홈리스들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또 알케미스트는 암 투병 아이들을 돕기 위해 지역에 있는 덴마크 국립의료원 소아 병동과도 협력 중이다.
이를 위해 아이들이 음식을 고를 수 있는 앱을 만들었다. 병원 주방에는 새로운 음식 기술을 제공했으며, 암에서 회복 중인 아이들을 위해 단백질이 풍부한 아이스크림도 만들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알케미스트는 현재 ‘매리 엘리자베스 병원’의 미래 경험 프로젝트에도 특별고문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후원을 받아 세계적 수준의 병원 음식을 만드는 게 목표다.
메리 엘리자베스 병원 ‘사용자 경험 팀’의 인류학자이자 프로젝트 매니저인 에밀리 바그너는 음식에 대한 라스무스의 독특한 전체론적 접근법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우리는 그와 함께 일하고 싶었습니다. 그의 접근법은 맛과 음식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에 관한 것이기도 하죠. 병원에는 식욕이 없는 아이들이 있어요. 그들이 먹을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가 가진 전체론적 접근법은 이를 이해하고 있어요.”
라스무스는 “이 프로젝트가 모든 것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아주 많은 연쇄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약도 줄었고, 병동에 입원해 있는 시간도 줄었어요. 물론 더 많은 행복을 얻었죠. 아마 5년 후면 우리는 이 프로젝트의 성과를 발표할 수 있을 겁니다. 잘 된다면 덴마크의 더 많은 병원에, 어쩌면 전 세계에 그것을 전파할 수 있을 겁니다.”
“요리의 파급력을 접시 너머로 확대하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는 (사회에) 진정한 영향을 미치기 위해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는 그런 일을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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