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장시간 노동 국가’로 꼽히는 한국에서 주 15시간 미만 일하는 ‘초단시간’ 노동자 비율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특히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여성이라는 통계가 나왔다.

4주 동안을 평균해 1주 동안의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경우, 초단시간 노동자로 분류된다. 15시간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서 누릴 수 있는 여러 권리를 누릴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따라서 초단시간 노동자는 주휴수당뿐 아니라 퇴직금이나 연차휴가, 4대보험과 같은 고용상의 권리나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문제는 초단시간 노동자들 대부분이 초단시간 근무를 원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경제적 필요에 의해 일을 해야 하지만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 대부분은 초단시간 근무 형태다.

실제 채용사이트 등에 검색하면 판매직, 사무보조, 간호조무사, 학원 강사 등 하루 4시간씩 주3일 일할 사람을 찾는 공고가 쉽게 눈에 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주 14.5시간이나 14시간 55분 등을 일 하거나 초단시간 일자리 여러 개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비율 증가세 가속

전문가들은 한국의 초단시간노동자 규모와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는 가운데 특히 남성의 증가보다 여성의 증가가 빠르다는 데 주목한다.

전체 초단시간노동자 규모와 비중은 지난 2000년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래 점차 증가해 지난해 최대치를 기록했다.

통계청이 국가통계포털(KOSIS)에 11일 공개한 ‘2022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주당 근로시간이 1~14시간인 취업자는 157만7000명으로 전체 취업자(약 2808만9000명)의 약 5.6%를 차지했다. 이는 직전 해 대비 6만5000명 증가한 것이다.

주 15시간 미만 취업자는 2000년에는 43만6000명(2.1%)에 불과했지만, 2010년 77만9000명(3.2%), 2015년 86만6000명(3.3%)으로 점차 늘었다.

최근 몇 년간에는 증가세가 더 가팔라 2018년에는 109만5000명(4.1%)으로 직전해 대비 13만5000명 늘어 100만명을 넘어섰다. 2019년에는 다시 전년 대비 20만7000명이 급증해 130만2000명(4.8%)를 기록했다.

특히 초단시간 노동자 중 여성의 규모와 비중 증가세가 가파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기호운 상임활동가는 지난 12월 9일 국회에서 열린 ‘초단시간 노동자 증언대회 및 제도개선 토론회’에 참석해 이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기 활동가는 “초단시간 취업자 현황을 성별에 따라 보면 남성의 증가보다 여성의 증가가 더 빠른 것으로 나타난다”며 “2000년부터 2021년에 이르기까지 남성은 38만6000명(210.2%)가 증가했고 여성이 71만9000명(284.6%)이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같은 시기 성별 전체 취업자 수 중 초단시간 비율은 남성이 1.5%에서 3.7%로 2.5배 증가했고, 여성이 2.9%에서 8.3%로 2.9배 증가했다”고 덧붙였다.

즉, 2000년부터 2021년까지 초단시간 노동자의 증가 규모 면에서 여성 노동자 증가가 남성 노동자 증가에 비해 1.8배 더 많았다는 것이다. 또 2021년 기준 남성 전체 노동자 중 초단시간 노동자는 3.7%, 여성 전체 노동자 중 초단시간 노동자는 8.3%로 비율 면에서는 2배가 넘게 차이가 난다.

한편 사단법인 유니온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초단시간 노동자 71%가 여성이다.

‘한국만의 문제 아니지만… 초단시간 노동자 법적 보호망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초단시간 노동자 중 여성 비중이 높은 것은 세계적으로 관찰되는 추세라면서도 한국이 초단기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중앙대 사회학과 이병훈 교수는 “초단기 노동자 가운데 청년과 여성의 비중이 높은 것은 학업이나 출산, 육아 등 사회적 상황에 따라 청년이나 여성이 파트타임 노동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며 “여타의 유럽 국가 등 세계적으로 관찰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한국의 경우, 사용자가 근로기준법 상에 따른 행정적인 의무를 피하고자 소위 ‘쪼개기’ 방식으로 초단시간 근무 일자리를 제공하는 문제에 대해 노동자를 보호할 사회적 보호망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이 교수는 특히 “초단기 노동을 선택하는 여성 상당수는 비자발적인 경우인 것이 문제”라며 “정규직이나 장시간 노동 일자리를 원하더라도 일자리를 제공하는 쪽에서 그런 자리가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자료에 따르면 초단시간 여성 노동자 중 ‘생활비 등 당장 수입이 필요해서’ 혹은 ‘원하는 분야의 일자리가 없어서’ 초단시간 노동을 선택했다고 응답한 비율이 상당했다.

특히 2015년 결혼 상태별 여성 초단시간 노동자의 주된 취업 사유를 보면, 사별이나 이혼을 겪은 여성 초단시간 노동자 중 58.6%는 생생활비 등 당장의 수입을 취업 사유로 꼽았다.

배우자가 있는 여성의 경우도 ‘근로조건(근로시간, 임금 등)에 만족했기 때문’이라는 비율(19.6%)보다 ‘당장의 수입이나 생활비를 위해서’라는 비율(30.0%)이 큰 격차로 높았고, ‘육아나 가사를 병행하기 위해서(29.7%)’와 ‘원하는 일자리가 없어서(5.8%)’가 그 뒤를 이었다.

한편 이 교수는 “초단시간 노동자 문제는 크게 보면 한국의 비정규직 문제와도 연결이 된다”며 “최저임금이나 퇴직금, 법정휴가 등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의 권리는 정규직의 경우 90퍼센트 이상 높은 비율로 보장이 되지만 비정규직의 경우 많게는 60퍼센트, 적게는 40퍼센트 비율의 인원만 보장 받는다는 것이 통계청 조사로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그러면서 “초단시간 노동자는 비정규직 중에서도 더 열악한 조건에 처한 경우”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초단시간 노동자 증가 추세는 역대 정부의 노동정책 시행의 결과”라면서 “윤석열 정부에서 친기업적 노동시장 유연화 기조를 가지고 있어 앞으로도 이러한 추세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앞으로 한국 사회가 “일하는 시간과 관계 없이 노동자로서 누려야할 건강권 등 기본 권리를 보장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전제로 하되, 일하는 시간에 따라 그 보상에 비례적 차등을 두는 ‘프롤레타 룰’을 전제로 제도적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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