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주영(29)씨의 침실은 지난해 10월 29일 밤 이후 모습 그대로다.
아버지 이정민 씨는 주영씨가 “카리스마 넘치는 여성”이었다며 미소 지었다.
“주영이는 확실히 리더 유형이었어요. 자기 사업도 운영할 정도였죠. 저와 제 아내, 오빠도 주영이 앞에서 꼼짝 못 했어요.”
서울에 살던 주영씨는 올해 9월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약혼자와 밤에 외출해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던 참사 당일 직전 웨딩드레스도 막 구입해둔 상태였다.
그날 밤 이태원의 어느 골목에서 일어난 압사 사건으로 159명이 목숨을 잃었다. 주영씨의 약혼자는 살아남았으나, 주영씨는 그러지 못했다.
아버지 이씨를 포함해 남은 유가족은 이제 정의 실현을 원한다. 이씨는 지난해 말 출범한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에서 부대표를 맡아 활동해왔다.
하지만 유가족이 원하는 것과 주어진 현실은 사뭇 다르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경찰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당일 압사 사고는 피할 수 있던 사고였다.
당국의 허술한 계획, 군중 통제 부재, 부실한 비상 대응 등을 종합해 보면 “인재”였다는 것이다.
그 결과 공무원 23명이 “업무상과실치사상”으로 기소돼 징역형을 앞두고 있다. 또한 지난해 11월에는 핼러윈 축제 기간 안전사고 우려를 언급한 내부 보고서의 삭제를 지시한 혐의로 경찰관 2명이 구속됐다.
그러나 이렇게 기소된 인물은 모두 참사 지역 내 경찰 및 의원들이다.
즉 한국 당국의 고위급 인사들은 책임을 면했다. 이에 대해 유가족 협의회는 “도마뱀 머리는 두고 꼬리만 자르는 격”이라고 비난했다.
이종철 유가족 협의회 대표는 “우리는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이번 참사를 제대로 수사하리라 신뢰한 적 없다”면서 “끼리끼리인데 어떻게 서로 제대로 조사하겠냐”고 언급했다.
“예를 들어 행안부에선 그 누구도 조사받지 않았습니다. 서울시장이나 경찰청장도 빠졌죠. 우리(유가족)는 이들 또한 그날 일어난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와 그 여파에서 중점이 되는 ‘책임’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예를 들어 일각에선 어느 토요일 밤 서울의 어느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에 행안부 장관이 형사적으로 책임이 있음을 증명하기란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법적 책임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게 유가족의 주장이다.
이씨는 “지난 3개월간 정부는 성의도 없고 무관심하게 유가족을 대했다”고 설명했다.
“형사상 책임을 묻는 게 어려운 줄은 알지만, 윤리적 책임 같은 것도 있잖아요.”
지난 10주간 정부의 공식 사과와 관련한 문제가 지속해서 제기됐다. 용산경찰서장부터 대통령까지 모두가 “죄송하다”고 했지만, 이는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를 두고 의미론적인 논쟁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유가족들은 책임자들의 이런 사과는 가족의 죽음에, 타인의 행동에, 상황의 비극성에 대한 것으로 느낀다. 즉 직접적인 책임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또한 당국을 만날 때마다 매번 받은 냉담하고 무신경하다는 느낌도 지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한편 당일 절친한 친구와 연인을 잃은 십 대 생존자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다시 한번 세간의 이목이 쏠렸다.
해당 피해자에 대해 한덕수 국무총리는 “안타깝다”면서도 생각이 조금 더 굳건했으면 좋지 않았을까”라고 덧붙였다.
여론의 비난이 거세지자 결국 당국은 이 청소년 또한 공식적인 참사 희생자로 인정했다.
이에 더해 참사 발생 수사기관이 유가족에게 희생자 부검을 통해 마약 투약 여부를 검사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폭로도 있었으며, 숨진 자녀를 제대로 어루만지거나 제대로 된 작별 인사조차 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부모들도 있었다.
또한 경찰이 입원한 미성년자 생존자들을 보호자 동석 없이 조사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런 상황에서 유가족과 나라 전체는 참사 발생 후 거의 3개월이 지난 지금도 제대로 된 끝맺음을 맺지 못하고 분노를 표하고 있다.

지난 11월부터 이태원 참사 관련 심리 지원 및 상담을 제공하는 국립정신건강센터를 통해 5600여 명이 지원받았다.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은 “이태원 참사는 여러 측면에서 국가적인 재난”이라고 설명했다.
“시민들은 공황 발작, 외상 후 스트레스, 불안증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사고 현장에 있지 않았으며 TV와 SNS를 통해 접했는데도 이러한 증세를 호소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제 경험상 아무리 철저한 조사가 이뤄지더라도 피해자들의 마음을 완벽히 달래줄 명백한 답 같은 건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유가족들이 철저한 사고 규명 조사와 심리 지원을 받을 권리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러한 요소는 회복에 매우 중요합니다.”
한편 3개월 가까이 진상 규명 운동을 벌이다 지쳤다는 이 씨는 힘이 필요할 때면 딸 주영씨의 방에 들어간다.
“저는 딸이 안심하고 눈감을 수 있도록 권력자들로부터 사과를 받아내기로 다짐했습니다. 저는 주영이에게 ‘아빠가 최선을 다할게’라고 약속했습니다.”
이태원 참사 관련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이번 주 정치적 분열 끝에 혼란스럽게 끝났다. 국정 조사를 주도했던 야당은 행안부 장관과 경찰청장을 위증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참사 발생에 대한 형사적 책임을 어디까지 물을 것인지는 검찰이 결정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검찰의 결정을 수용할지는 유가족이 결정할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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