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필리핀에서 양파 1kg의 가격은 약 11달러(약 13000원)에 달한 반면 닭 한 마리는 약 4달러였다

ROLEX DELA PENA/EPA-EFE/REX/Shutterstock
지난주 필리핀에서 양파 1kg의 가격은 약 11달러(약 13000원)에 달한 반면 닭 한 마리는 약 4달러였다

전 세계 많은 국가에서 양파는 기본적인 식자재이고 고기는 사치품에 가깝다. 그러나 필리핀에선 현재 양파 가격이 닭고기나 소고기 가격을 웃돌고 있다.

마늘과 양파를 볶아 먹는 필리핀의 식습관은 1521~1898년까지 지속된 스페인 식민지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는 필리핀의 식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지난 한 달간 필리핀에서 양파는 사치품이 되고 말았다. 가격이 급등하면서 고기보다 비싸진 것이다.

이번 주 붉은 양파와 흰 양파 1kg의 가격은 약 11달러(약 13000원)에 달한 반면 닭 한 마리는 약 4달러였다.

양파 가격이 필리핀의 하루 최저임금인 약 9달러를 웃도는 것이다.

이렇듯 양팟값이 급등하면서 양파를 밀수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이번 달 초 의류로 표기된 중국산 양파 31만달러어치가 밀반입 과정에서 당국에 적발됐다.

한편 SNS에선 정부를 비난하는 필리핀 시민들의 웃지 못할 게시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현 상황에 대해 정부가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목소리가 크다.

미국에 산다는 어느 필리핀인은 트위터에 “초콜릿아 잘 가렴, 양파야 어서 와. 이젠 양파가 최고의 빠살루봉(집에 들고 가는 기념품 및 선물)이 될 수도”라고 적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여행 기념품으로 초콜릿 대신 양파를 가져올 것”이라고 한 이도 있었다.

https://twitter.com/_jvvillar/status/1610991013186740224

미국 여행 중이라는 어떤 누리꾼은 양파 가루가 든 병 사진을 공유하며 “필리핀에서 양파는 마치 금과 같기에 이 양파 가루를 필리핀에 들고 가 선물로 나눠주고 싶었다. 그런데 슈퍼마켓 5곳을 돌아다녀 봐도 재고가 없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필리핀 관광객들이 모두 다 사갔다’고 하더라”고 언급했다.

https://twitter.com/LADLADofficial/status/1613359427016335360

한편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 거주하는 니콜라스 마파 ING 은행 수석연구원은 일부 식당에선 양파가 들어간 메뉴 판매를 중단했다고 언급했다. 예를 들어 일부 메뉴에선 보통 버거와 함께 나오는 양파튀김이 사라졌다.

마파는 BBC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식당들은 (양파가 들어간) 메뉴에 가격을 제대로 책정할 수 없거나, 혹은 단순히 양파를 구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기업들은 대안 찾기에 나섰다.

‘필리핀 요리 유산 보존 운동’을 설립한 요리사 잼 멜초어는 양파의 대체품을 찾고 있다. 원래 멜초어는 ‘라소나’라고 불리는, 그 맛도 독특하고 포도알 정도로 크기가 작은 토종 양파 품종을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식당과 일반 대중 모두 현 상황에 고통받고 있다”는 멜초어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양팟값이 너무 높아 대안으로 무엇을 활용할 수 있을지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양파는 이 지역 요리에서 매우 중요하다. 양파가 들어가지 않는 요리가 거의 없을 정도다. (또한) 모든 필리핀 요리에서 중요한 식자재”라고 덧붙였다.

https://www.instagram.com/p/CmwDMFsp0e2/

필리핀에선 왜 양파 가격이 급등했나?

가격 상승과 관련해 마파는 적어도 2가지 요인이 있다고 설명했다.

우선 지난해 8월 필리핀 농업부는 이미 국내 양파 생산량이 수요를 미치지 못 하리라 예측한 바 있다. 그러나 실제 생산량은 이보다 더 저조했다. 8~9월 사이 슈퍼 태풍이 필리핀을 강타한 것이다.

“불행히도 가격이 급등한 뒤에야 뒤늦게 양파 수입이 시작됐다. 그리고 양파 수확철인 2월에 매우 가깝게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필리핀 세부의 노점상

Getty Images
마늘과 양파를 볶아 먹는 필리핀의 식습관은 1521~1898년까지 지속된 스페인 식민지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번 달 첫째 주 필리핀 당국은 공급 정상화 및 가격 안정을 위해 양파 약 2200만 톤 수입을 승인했다.

그러나 전직 농업부 고문인 페르민 아드리아노와 같은 일부 전문가는 이는 현 행정부의 심각한 실수라고 지적했다.

아드리아노 전 고문은 정부가 국내 양파 생산량이 저조하다는 점을 미리 알았기에, 예상 수요에 걸맞게 미리 충분한 양을 수입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농업부 장관 ‘봉봉’

한편 일부 필리핀 국민은 농업 분야의 무질서한 정부 정책을 지난해 논란 속 당선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과 연관 짓기도 한다. ‘봉봉’이라는 별칭으로도 알려진 마르코스 대통령은 농업 분야의 경험이 없음에도 자신이 농업부 장관직까지 겸하겠다고 밝혔다.

마르코스 현 대통령은 1970~80년대 필리핀을 철권 통치했던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아들이다. 아버지 마르코스는 1986년 대규모 민중 시위가 일어나 결국 축출돼 가족들을 데리고 해외로 도피했다.

그리고 아들 ‘봉봉’은 1991년 필리핀으로 귀국해 정계에 입문했으며, 주지사, 하원의원, 상원의원 등을 거쳐 결국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마르코스 현 대통령은 선거 활동 당시 지난 독재 정권이 “황금시대”였다는 메시지를 팔고자 애썼다. 그리고 이제 SNS에선 많은 이들이 마르코스가 말했던 “황금”이 사실 양파 가격이었다며 아이러니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필리핀 마닐라 시장에서 상인이 양파를 저울에 올리고 있다

ROLEX DELA PENA/EPA-EFE/REX/Shutterstock
마늘과 함께 양파는 필리핀 음식에 빠질 수 없는 재료다

‘세계에서 3번째로 많이 생산되는 채소’

라보뱅크에서 과일 및 채소를 분석하는 신디 반 리즈윅은 전통적으로 필리핀은 양파 수입국이라면서 생산량보다 소비량이 더 많은 국가라고 설명했다.

국내 생산량이 부족해 필요한 양은 2011년 기준 500만kg에서 2016년 1억3200만kg까지 그 변동폭이 크다는 게 리즈윅의 설명이다.

또한 리즈윅은 “필리핀은 보통 가격과 시장 상황에 따라 인도, 중국, 네덜란드에서 양파를 들여온다”고 덧붙였다.

필리핀 국내 양파는 기후 조건 등으로 인해 대부분 유통기한이 짧은 품종이 대부분이기에 이렇듯 수입에 의존하는 측면이 있다.

즉 양파를 최대 1년까지 저장할 수 있는 북유럽 및 북미 지역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게 리즈윅의 설명이다.

“전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양파는 가장 많이 소비하는 채소 상위 3등 안에 들어갑니다. 부피 면에서 양파가 세계에서 3번째로 많이 생산되는 채소인 이유이기도 하죠. 양파보다 많이 생산되는 채소로는 토마토나 오이 정도가 있습니다.”

지난해 필리핀을 강타한 태풍은 양파 생산량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ROLEX DELA PENA/EPA-EFE/REX/Shutterstock
지난해 필리핀을 강타한 태풍은 양파 생산량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한편 다른 국가에서도 양파 가격 상승이 문제이긴 마찬가지다. 일례로 공식 자료에 따르면 브라질의 2022년 기준 누적 가격 상승률은 130.14%로 가장 높았다.

그 원인으로는 국제 환율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경작지 감소 및 비료와 농약 수급 타격에 따른 생산비 상승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
0
+1
0
+1
0
+1
0
+1
0

랭킹 뉴스

실시간 급상승 뉴스 베스트 클릭

금주 BEST 인기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