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근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채택한 데 대해 한국 정부는 “사회 전반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의도”라고 평가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19일 “최고인민회의 발표문의 내용을 볼 때 사회 전반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은가 추측한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식 말투 등 한류가 북한 내부에 침투하는 현상을 법적으로 통제하려는 의도가 포함됐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는 “법률 내용이 알려지지 않아 현재로서는 평가할 사안이 없다”고 말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 17~18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8차 회의에서 남한말을 비롯한 외국식 말투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겠다며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채택했다.

문화어는 북한에서 쓰이는 ‘조선말’의 표준 규범이다.

북한의 표준어 제정 작업은 지난 1948년 시작해 최종적으로 1966년 독자적인 표준 규범을 확립했다. 그리고 김일성 주석의 교시에 따라 ‘문화어’로 명명됐다.

‘남한말∙영어 쓰지마’

조선중앙통신의 19일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평양문화어를 보호하며 적극 살려나가는 것은 사회주의 민족문화 발전의 합법칙적 요구”라며 “언어생활에서 주체를 철저히 세우는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표준어인 평양말 외에 남한말 등 외래어를 사용하지 말라는 경고인 셈인데, 만약 이를 어길 경우 강력한 단속과 처벌을 담은 것으로 보이는 법령을 제정하고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공식 채택한 것이다.

실제 최근 북한 내 남한 드라마와 영화 등 한류 콘텐츠가 확산되면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암암리에 서울 말씨와 영어식 표현이 널리 사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북한이 이런 법령을 채택한 것은 단순히 언어적인 측면을 넘어 외부 사상에 대한 당국의 경계심이 반영되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BBC에 “북한이 2020년 3중고 이후 전체적으로 반사회주의, 사회주의 체제 이완 등에 대처하기 위해 단속 강도를 높여왔다”고 밝혔다.

그에 따라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청년교양법 등 이례적인 법들이 많이 제정됐는데 이번 법 제정 역시 그의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평양문화어 자체가 사회주의 형태를 살리기 위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데다, 북한 내 외부 문화가 심하게 확산되는 상황”이라며 “기본은 체제 통제 차원”이라고 지적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체제 위기가 심해지면서 사상 단속을 강하게 하는 것”이라며 “한류 콘텐츠 유포 시 사형이라는 극약처방까지 내리는 이유”라고 말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해 9월 노동신문을 통해 사회주의 생활양식을 강조하며 “언어 생활에서 주체를 세우고 가장 우수하고 순수한 평양 문화어를 살려 쓰며 우리 식이 아닌 말투와 외래어가 절대로 끼어들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우리 문화가 제일이고 우리의 생활 양식과 도덕이 제일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며 “노래를 하나 불러도 우리의 것을 즐겨 부르고 춤을 추어도 우리 장단에 맞추어 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류가 북한 체제에 미치는 영향

북한이 이 같은 법령을 채택한 것은 그만큼 북한 사회에 남한식 말투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을 의미한다. 한류의 영향이다.

최경희 샌드연구소 대표는 “문화는 그 체제의 결과물이자 속성이고, 또 언어는 그 체제의 코드”라며 “북한 체제가 약하다 보니 한국 문화와 서울말을 쭉쭉 흡수하는 것인데 북한 입장에서는 제일 싫어하는 한국 사회의 언어가 들어와 사용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북한 주민 10명 중 9명 이상이 한국 드라마 또는 영화를 시청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인권단체 ‘국민통일방송’과 ‘데일리NK’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북한 주민의 외부정보 이용과 미디어 환경에 대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북한 주민 50명 중 49명(98%)이 ‘한국을 포함한 외국 콘텐츠를 시청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현재 북한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 50명을 전화 인터뷰 한 결과다.

이들이 시청하는 해외 영상으로는 한국 드라마·영화를 비롯해 중국 드라마·영화, 한국 공연, 한국 다큐멘터리, 미국 등 서방 드라마·영화 등인 것으로 조사됐다.

얼마나 자주 보냐는 질문에는 ‘매주 1번 이상’이 28%, ‘매달 1번 이상’은 46%였다. 1명은 ‘거의 매일’ 본다고 답했다. 4명 중 3명꼴로 월 1회 이상 해외 영상을 본다는 얘기다.

특히 ‘한국이나 다른 해외 영상 콘텐츠를 본 뒤 달라진 점’으로는 응답자의 79.2%가 ‘한국 사회에 호기심이 생겼다’고 답했으며 56.3%는 ‘한국식 화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39.6%는 ‘한국 옷 스타일을 따라 했다’고 밝혔다.

김정은 정권은 해외 콘텐츠를 체제 위협 요인으로 판단해 경계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최경희 대표는 “한류가 이미 북한의 의식적 변화에 많은 영향을 줬다”며 “북한에서는 유일사상체계, 유일적 의식 하나만 인정되는데 한류의 확산으로 다양성이 생겨나면 기존의 사상이 와해될 수 있다고 경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인태 연구위원 역시 “북한의 반사회주의 투쟁 자체가 외부 문화 차단”이라며 “청소년 세대가 미래어(한국말)를 따라 하는 것 자체가 북한에서는 체제 위반 현상”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북한 내 한국 문화 확산이 최근의 현상만은 아니라며 “이미 1990년대 말 ‘고난의 행군’ 당시부터 꾸준히 확산돼 왔고 2020년 이후 통제를 강화하면서 더욱 확대하는 모양새”라고 강조했다.

지난 2021년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북한은 젊은층을 대상으로 ‘남친'(남자친구), ‘쪽팔린다'(창피하다)를 비롯해 남편을 ‘오빠야’, 남자친구를 ‘자기야’로 부르는 행위 등 남한식 말투와 호칭을 강하게 단속하고 있다.

앞서 2020년 12월에는 한류 콘텐츠를 유포할 경우 사형, 시청만 해도 최대 징역 15년에 처한다는 내용의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하는 등 외부 문물 유입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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