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방문한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이 북한 내 여성과 여아의 인권 상황을 우선 살피겠다고 밝혔다. 또 관련 문제에 대해 북한과 협력할 의지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살몬 특별보고관은 30~31일 이틀간 서울에서 열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 여성 및 여아의 인권 상황에 관한 국제회의’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고 서울 유엔인권사무소는 전했다.
살몬 보고관은 특히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성 기반 접근과 피해자 중심 접근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북한 경제활동에 있어 여성과 여아의 사회적 역할을 재조명했다.
또한 구금 시설 내 여성, 국경을 건너는 여성 및 여아, 성∙재생산 보건 권리, 가정 폭력, 장마당 내 여성 권리, 강제 노동에 취약한 여성 문제 등도 다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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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 참석한 이신화 외교부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는 환영사에서 북한 여성과 여아들에 대한 만연한 차별과 성폭력, 탈북 여성의 인신매매 위험 등이 심각하다며 인권에 대한 북한 정권의 인식 변화를 위해서는 국제사회가 북한을 압박하고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은 오는 3월 유엔 인권이사회 회기에 제출할 특별보고관 보고서에 반영될 예정이다.
지난달 29일 한국에 온 살몬 보고관은 닷새 안팎의 방한 기간 북한 인권 관련 회의 참석, 관련 시민단체 면담 등을 소화할 예정으로, 특히 북한 억류자 가족들과 만나 송환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눌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내 여성 인권 ‘최악’
김석향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BBC에 북한 여성들의 인권 상황을 ‘최악’이라고 평가했다.
일각에서 여성들이 장마당을 통해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인권 상황이 훨씬 좋아졌다는 평가가 나오기는 하지만, 보편적인 상황 자체가 좋아졌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것.
김 교수는 “기본적으로 북한은 남녀 차별이 심해 여성이 아버지나 남편의 권력 및 보호 없이 경제력을 유지하기는 어려운 체제”라고 지적했다.
또 “평양이 아닌 지방 출신을 비롯해 북송 재일교포 등 성분이 나쁜 여성들의 위치는 훨씬 더 열악하다”며 “이러한 집단별 차별에도 불구하고 한 두 가지 현상만으로 북한 내 여성 인권이 개선됐다고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박선영 물망초 이사장 역시 “북한의 인권 상황은 30년 전이나,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이후 여성들이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북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태생적인 여성 차별과 억압, 착취 등이 여전하다는 얘기다.
박 이사장은 “북한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지위 자체가 낮은 데다 임금 착취, 노동 착취, 성 착취까지 여성에 대한 다양한 인권 침해가 여전히 심각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북한 당국이 법적으로 남녀 평등을 주장하고는 있지만 이는 보여주기 위한 법일 뿐이라며, 이것이 공산국가의 기본적인 출발점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국제사회의 이러한 지적이 북한 여성들의 인권 향상에는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석향 교수는 “북한은 체면을 중시하는 사회”라며 “처음부터 거대담론이나 최종 목표를 던지기 보다는 구체적으로 동일한 내용을 꾸준히 다양한 방식으로 조언을 하다 보면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면서 “살몬 보고관이 세밀한 현상 파악 및 문제를 집어내는 능력이 뛰어난 분이더라”며 “그런 점에서 북한 인권 개선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부연했다
한정된 ‘성 역할’이 인권 문제 유발
한편 권은경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는 북한 내 여성인권 문제를 유발하는 요인 중 하나로 성 정체성 또는 성 역할을 꼽았다.
북한 당국이 요구하는 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미덕이 자녀 양육과 어머니의 역할에 규정돼 있다는 것이다.
실제 북한 가족법 제 6조 ‘어린이와 어머니의 보호원칙’ 조항을 보면 “국가는 어머니가 어린이를 건전하게 양육하고 교양할 수 있는 조건을 보장하는데 선차적인 관심을 돌린다”고 규정해 놓았다.
여성의 역할을 자녀 양육에 국한한다는 것으로 인식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또한 여성동맹 대회와 국제부녀절 행사 등에서 발표하는 북한 당국의 문건이나 노동신문 관련 기사들을 보면 “어머니로서의 사명과 책임감을 깊이 자각하고 자녀교양에 품을 들이고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표현들도 흔히 볼 수 있다.
권은경 대표는 “이는 북한 당국이 요구하는 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미덕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것”이라며 “북한이 이런 식으로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인 인식을 더 공고화, 정당화한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모멸적이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는 북한 여성들의 인권 문제는 범여성에 대한 존중의 문제로, 좌우이념이나 정치적 견해를 뛰어넘는 차원”이라며 따라서 “한국 내 관련 단체와 여성활동가들의 전문성을 살려서 북한 여성의 인권을 위한 한 단계 발전된 전략을 함께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앞서 살몬 보고관도 이번 한국 방문을 계기로 북한 내 여성 권리에 대한 가시성을 높이고 시민사회단체와 유엔, 회원국, 학계, 탈북 여성 간 협력이 강화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회의는 북한 내 여성과 여아의 권리를 신장할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한국 외교부와 서울 유엔인권사무소가 공동 주최했다.
한국 외교부는 “이번 회의가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국내외적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된다”며 “한국 정부는 올해에도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유엔 등 국제사회의 관심을 제고하고 북한의 심각한 인권 상황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18년 연속 채택
유엔은 지난해 11월 16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회의를 열고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한국 정부도 4년 만에 공동 제안국으로 참여했다.
이 결의안은 북한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중대한 인권침해를 강력 규탄하는 동시에 이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또 여성과 아동∙장애인 인권 침해를 비롯해 고문·자의적 구금·성폭력, 정치범 수용소, 강제실종, 이동의 자유 제한, 송환된 탈북자 처우, 사상·종교·표현·집회의 자유 제약 등에 대해서도 열거했다.
이에 김성 주유엔 북한 대사는 당시 “인권 보호 및 증진과는 아무 관련 없는 정치적 문서”라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서방이 인권 문제로 내정에 간섭하고 다른 나라의 체제를 전복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남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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