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습지는 물을 저장하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며 우리 식탁에 오르는 많은 식량의 공급원이기도 하다.
지상의 그 어느 생태 환경보다 인류에게 많은 것을 내주는 습지이지만, ‘람사르 협약’에 따르면 지난 50년간 전 세계 습지의 3분의 1이 사라졌다고 한다.
심지어 지금도 매년 숲보다 3배나 더 큰 규모의 습지가 사라지고 있다.
습지 손실의 주요 원인은 농업 및 도시 확장, 기후 변화로 인한 가뭄과 고온 등을 들 수 있다.
이렇게 황량하게 변해가는 상황에서 습지를 되살리고 보호하는 놀라운 힘을 지닌 영웅이 있으니, 바로 비버이다.
복슬복슬한 털과 날카로운 이빨을 지닌 설치류 비버는 물길에 댐을 만들어 연못을 만들고, 그 안에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오두막’을 짓는다.
이들은 쓰러질 때까지 씹은 나무줄기와 나뭇가지를 댐의 건축자재로 이용하며, 돌로 토대를 다진 뒤 진흙과 식물을 이용해 댐 상류 벽을 밀봉한다.
비버가 만든 댐은 주변 유속을 감소시킨다.

이에 대해 미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의 생태수문학자 에밀리 페어팩스 박사는 “단순 하천을 각종 생물이 번성하는 습지 생태계로 변화시킨다”고 설명했다.
“비버가 만든 습지에선 먹을 것과 물이 풍부하기에 여러 생물종의 이상적인 서식지가 됩니다. 비버가 핵심 생물종인 이유죠.”
지난 50년간 캐나다와 미국 일부 주에선 비버를 다시 들여오고 있다. 처음엔 19세기 털과 고기를 노린 사냥꾼들의 손에 거의 멸종 직전까지 갔던 비버 개체수를 회복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습지 생태계가 복원되면서 개구리, 물고기, 무척추동물 등이 돌아오면서 엄청난 생물 다양성 혜택이 뒤따랐다.
핀란드 연구진이 2018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비버가 만든 연못 근처엔 다른 연못보다 서식하는 포유류 종류가 거의 2배 더 많았다. 족제비, 수달뿐만 아니라 심지어 무스(북미산 큰 사슴)도 더 많았다.
이에 대해 영국 스털링 대학의 담수를 연구하는 나이젤 윌비 교수는 “비버의 습지는 무척 독특하다”고 설명했다.
“누구나 연못을 만들 수 있지만 비버는 놀라울 정도로 훌륭한 생물다양성을 자랑하는, 좋은 연못을 만듭니다. 왜냐하면 비버가 만드는 연못은 그 깊이가 우선 얕고, 죽은 나무가 널려 있습니다. 그리고 식물을 먹고 수로를 파고 댐을 수리하고 오두막을 짓는 비버의 손길이 계속 미칩니다.”
“즉 비버는 우리가 결코 따라올 수 없는 복잡한 습지 서식지를 만드는 데 탁월합니다.”
부지런한 비버
- 비버가 건설하는 댐은 높이가 5m에 이를 수 있으며, 지금껏 기록된 가장 큰 댐은 캐나다 앨버타에서 발견된 것으로, 길이 850m를 자랑한다
- 비버가 나무를 베면서 생긴 나무그루터기엔 종종 새로운 싹이 트기도 한다. 즉 비버가 카피싱(새로운 나무를 땅에 바로 심지 않고 오래된 나무나 죽은 나무그루터기에 심는 방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 1970년대 북아메리카 비버와 유라시아 비버는 별개의 종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전문가들은 건강한 습지 생태계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며, 마치 스펀지처럼 빗물을 빨아들여 홍수 등 기후 변화의 영향을 완화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습지는 우기엔 물을 저장하고 가뭄이 들면 물을 천천히 방출한다.
페어팩스 박사는 “가뭄이 찾아와도 범람원에 서식하는 식물들은 초록빛을 유지한다. 토양에 저장된 물에 의존하기 때문”이라면서 “접근할 수 있는 물의 양이 줄어들면 시들거나 마르기 시작한다”고 덧붙였다.
페어팩스 박사의 연구진은 미국 5개 주에서 2000년~2021년 발생한 산불 10건을 조사한 결과 엄청난 불길이 주변 지역을 뒤덮었을 때도 비버와 이들이 구축한 생태계가 안정적으로 습지 서식지를 만들고 보존했음을 발견했다.
“비버가 구축한 습지에는 저장된 물이 많기에 그 안에 사는 식물들은 산불에 영향을 받지 않고 초록빛을 유지하며 번성했습니다. 그리고 산불이 지나가는 길목에 있을 때도 이 식물들은 타지 않았으며, 물 흡수 상태도 좋았습니다.”
전 세계 주요 습지

맹그로브, 산호초 같은 연안 생태계 혹은 호수, 강, 습지, 이탄지(나뭇가지, 잎 등의 식물 잔해가 침수 상태에서 잘 분해되지 못하고 수천 년에 걸쳐 퇴적되면서 형성된 유기물 토지)처럼 습지 또한 생태계이다.
전 세계 주요 보호 습지 5곳은 다음과 같다:
- 아마존강의 주요 지류 중 하나인 브라질의 ‘리오 네그로’ 습지
- 콩고민주공화국 내 텀바호수 근처 드넓은 ‘응기리 툼바-멘돔브’ 습지
- 캐나다 북부 누나부트의 ‘퀸 모드’ 만 지역
- 콩고강 주변으로 넓게 형성된 습지대
- 나일강의 상류 지류인 백나일강이 만들어낸 남수단의 ‘수드’ 늪지대
한편 전문가들은 비버만으로는 습지를 제대로 복원하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윌비 교수는 호수와 강둑을 따라 숲을 조성하거나 이탄지나 염습지 복원 사업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비버는 북아메리카와 유라시아에서만 자연적으로 서식한다.
자연적인 서식지가 아닌 곳에 비버를 들였다간 자칫 역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지난 1940년대 아르헨티나와 칠레에 비버가 들어왔으나, 당시 포식자가 없는 상황에서 기하급수적으로 증식하는 바람에 심각한 산림 손실을 초래했다.
한편 ‘람사르 협약’ 사무국이 지난해 발간한 ‘세계 습지 전망’에 따르면 현재 아프리카와 중남미에서의 습지 손실이 가장 심각하다.
일례로 아프리카 중앙에 있는 내륙 호수이자 차드, 니제르, 나이지리아, 카메룬 등 4개국에 걸친 ‘차드 호수’의 면적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급격한 인구 증가로 인한 물 수요 증가, 계획 없이 진행된 관개 사업, 현재 기후 변화로 인한 가뭄 등으로 차드 호수의 수량은 1960년대 이후로 90%가 사라졌다.

나이지리아의 습지 보호 활동가인 아데니케 올라도수는 “차드 호수에 그나마 남아있는 물을 두고 농부들과 목축업자들 간 갈등이 이미 예전부터 있었다. 그런데 이젠 가뭄까지 덮치면서 호수가 더욱 말라붙고 있으며, 이에 물을 둘러싼 갈등이 더욱 악화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유엔(UN) 유엔 사막화 방지 협약’의 수석 과학자 배런 조지프 오르 또한 습지는 보통 회복력을 발휘하지만, 장기간 지속되는 가뭄이 점점 더 큰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후 변화로 인해 가뭄이 심각해지고 있고 이에 따라 습지 복원력이 저하되고 생태계가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가뭄은 습지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지만 비버는 습지 보호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다.
그리고 북미와 북유럽에선 100건 이상의 비버 재도입 프로젝트가 성공한 이후 몇몇 습지가 놀라운 회복력을 발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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