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코로나19가 이탈리아를 강타하자, 페코리노 치즈 업계가 위태로워졌다. 하지만 일부 생산자들의 독창적 시도 덕에, 페코리노 치즈의 상황은 코로나 전보다 더 나아졌다.
로레토 파치티는 모든 게 당황스러웠다. 이탈리아의 유명 치즈 중 하나인 페코리노를 팔 방법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는 파치티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치즈를 만드는 이들은 모두 마찬가지였다. 코로나19로 식당과 시장이 폐쇄돼 판로가 막히고, 생산비는 오른 반면 대중의 소비가 얼어붙었던 것이다.
공장을 나가지 못하고 썩어가는 치즈를 걱정하던 파치티는 수백년 전 조상들이 사용했던 방법을 시도했다. 치즈를 동굴에 묻은 것이다.
파치티는 이탈리아 라치오 피치니스코 마을에서 ‘라 카시오스테리아 디 카사 로렌스’라는 수제 치즈 공장을 운영한다. 그는 “코로나 봉쇄 때 거의 모든 것을 잃었다가, (치즈를 묻는) 이 방법 덕에 모두 되찾았다”고 말했다.
페코리노는 양의 젖으로 만든 치즈다. 단단한데, 맛은 짭짤하다. 샐러드에 주로 사용되는 가벼운 ‘프레스코’, 60일간 숙성해 빵이나 과일에 곁들어 먹는 ‘세미-스타지오나토’, 톡 쏘는 맛과 잘 부서지는 식감을 가진 36개월 숙성의 ‘스타지오나토’ 등 여러 종류가 있다. 로마 외곽 브라치아노 인근에 있는 수제 치즈 공장 ‘젠나르젠투 디 핏잘리스 브루노’에서는 무려 26종의 페코리노를 만든다.
로마에서 식당 ‘네치 달 1924’를 운영 중인 마시모 인노첸트는 “페코리노는 궁극의 음식”이라고 말했다. “저는 무인도에서 페코리노만 있으면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인노첸트는 페코리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의 식당 밑에는 로마 시대부터 2000년간 보존된 동굴이 있는데, 그는 이 곳에 페코리노를 저장한다. 그리고 자신의 식당에서 페코리노가 들어간 다양한 음식을 팔고 있다.
페코리노 중 ‘페코리노 로마노(Pecorino Romano)’는 로마 근처 라치오 지역이 원산지다. 그래서 이름에 “로마노”가 붙었다. 로마노는 다른 종류의 페코리노보다 가볍고, 건조하고, 소금기가 많다. ‘카초 에 페페(치즈와 후추로만 맛을 낸 파스타)’, ‘카르보나라’, ‘아마트리치아나(파스타와 돼지 목살, 토마토 등으로 만든 전형적 로마 요리’ 등 많은 이탈리아 요리에 들어가다 보니 이탈리아 주방의 표식으로 통하기도 한다. 꿀 한 방울과 와인 한 잔을 곁들이면 특히 맛이 좋다.
페코리노 로마노는 2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졌다. 처음에는 로마 공화정(기원전 508년~27년) 당시 양치기들이 남은 양젖을 활용하기 위해 만든 치즈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로마 제국의 작가인 루치오 모데라토 콜루멜라가 서기 50년에 쓴 ‘농업론(De Re Rustica)’에 페코리노 로마노로 보이는 기록이 등장하기도 한다. 로마 군대에겐 페코리노 로마노가 이상적인 식량이었다고 한다. 치즈가 군인들보다 더 오래 보존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세에 이르러 사람들은 페코리노 로마노에 소금을 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치즈 보존 기간이 늘어났다. 늘어난 보존 기간 덕에 페코리노 로마노는 이탈리아 반도 너머로 퍼져나갈 수 있었다.
이렇게 페코리노 로마노는 로마 제국의 멸망과 지진, 파시즘에서도 명맥을 이어왔다.
로마에서 활동하는 음식 작가 레이첼 앨리스 로디는 “페코리노 로마노는 로마의 군인과 같다”고 말했다. “군인처럼 끊임 없이 영역을 확장한 거죠.”
페코리노 로마노는 가정에서도 많이 쓰다 보니,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제품은 이탈리아 전역에 있는 슈퍼마켓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대량 생산품은 가격이 싸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에 타격을 입기는 커녕 오히려 매출이 늘었다. 봉쇄 속에서, 가정마다 이 치즈를 비축했던 것이다. 실제로 2019년 2만6940톤이던 판매량은 작년 3만4280톤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소규모 수제 페코리노는 달랐다. 식당과 시장이 문을 닫다 보니, 장인들의 소규모 공장은 판로를 찾지 못했다. 생산자들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치즈를 팔거나, 양의 사료비를 위해 직접 옥수수를 재배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황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일부 장인들은 치즈가 썩지 않게 보관하려고 동굴에 치즈를 묻기 시작했다.
파치티는 “방문 판매도 해봤고 온라인 매장도 열었지만 효과가 없었다”며 “그래서 생산 계획을 바꿨다”고 했다.
2020년 7월, 그는 기존에 만들 던 것보다 부피가 더 큰 치즈를 만들었다. 한 번에 보존하는 양을 늘리기 위해서였다. 그는 치즈를 에밀리아-로마냐로 가져가, 4m 깊이의 응회암 동굴 속에 묻었다.
수백년 전 이탈리아에선 ‘포사’라고 알려진 동굴에 음식을 숨기곤 했다. 파치티는 “치즈도 그렇게 숨겼다가, 이 방법을 쓰면 치즈의 유통기한이 길어지고 맛은 더 좋아진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인노첸트는 “유럽에서 지하 구덩이에 치즈를 넣어 숙성하는 것은 중세 시대 침입자들의 습격으로부터 음식을 지키기 위해 사용하던 관행”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포사를 이용하는 생산자들이 드물어졌고, 결국 그 계보도 끊어진 것이다.
동굴을 치즈로 채운 파치티는 이 상태로 치즈를 석 달간 봉인했다. 치즈가 산소를 흡수하며 숙성하고, 풍미를 내게 하려는 조치였다. 그의 치즈 중 인기 제품인 ‘페코리노 피치니스코’도 이 과정을 통해, 매콤하면서도 입 안에서 부서질 때 포르치노 버섯과 밤 향이 나는 치즈가 됐다. 이 과정은 치즈의 수명을 5~6개월에서 18~24개월로 늘려주기도 한다.
그의 아내 로미나는 “포사에 있는 페코리노를 먹으면 그 강렬한 맛에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세테프라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마리아 피아와 안토니오 남매는 9대째 양을 기르고 있다. 매년 6월이면 이들은 양을 17km 거리에 있는 1000m 고지대로 데려간다. 이렇게 키운 양은 그들 가족의 수제 치즈 공장 ‘아그리콜라 산 마우리치오’의 페코리노 원천이 된다.
그런데 이곳도 코로나로 타격을 입었다. 사료비와 공장 전기 요금, 트랙터 가스 등 생산 비용이 3배나 늘었다. 마리아는 “동물들은 먹을 줄만 알지, 코로나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이들 형제는 생산비를 줄이기 위해 옥수수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연간 1만2000kg의 옥수수를 생산중인데, 옥수수 100kg당 20유로의 생산비 절감 효과가 나온다.
페코리노는 이들 가족의 생명선이다. 마리아는 “페코리노는 내 가족이 먹어온 음식”이라고 말다. “매일 우리가 하는 일을 다른 식으로 시도해 봐요. 소규모 농부의 특징과 우리의 정체성, 전통을 페코리노에 담아내려는 거죠.”
또 다른 소규모 치즈 생산 업체 ‘젠나르젠투 디 핏잘리스 브루노’의 마케팅 이사인 실바노 세키도 코로나 당시의 고통을 회상했다.
그는 “좋은 품질에 기꺼이 돈을 쓰는 사람을 찾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코로나로) 사람들의 주머니가 빠듯해지다 보니, 질 좋은 치즈에 돈을 쓸 수 없었습니다. 1kg에 40유로 짜리 페코리노를 파는 건 굉장히 어려웠죠.”
코로나 속에서 연료비는 리터당 0.5유로에서 1.3유로로 올랐다. 전체 비용도 60% 증가했다. 결국 그들은 가격을 10% 올렸고, 매출은 25% 하락했다.
세키는 “우리는 기존과 다른 시도를 했다”며 “그것마저 안했더라면 매출은 80% 떨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키는 회사 대표인 브루노 핏잘리스와 함게 온라인 판매를 시작하고, 가정으로 치즈를 배송했다. 다른 치즈를 만들고 남은 남은 양젖을 재가공한 리코타 치즈를 무료로 제공해 손님을 끌기도 했다. 지역 농업 개발 협회인 ‘아르시알’은 그들이 웹사이트를 만들 수 있게 1만 유로를 지원했다.
이들의 회복에 큰 보탬이 된 것은 오랜 고객이자 식당 ‘네치 달 1924’의 주인인 마시모 인노첸트다.
인노첸트가 ‘네치 달 1924’ 식당을 매입한 것은 지난 2006년. 1924년부터 로마 남동부 피그네토 한 켠을 지키던 식당이었다. 한동안 그는 식당 바닥 밑에 빈 공간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2020년 7월에 와인 저장고를 만들려던 중 이 공간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우리가 땅을 판 게 아니다”라고 했다. “타일 몇 개를 들춘 거죠. 10cm만 내려가니까, 콘크리트와 철근이 있었어요. 무덤처럼 닫혀 있었던 겁니다.”
그들이 찾아낸 것은 로마 제국 때 사용되던 동굴이었다. 고대 로마인들은 이곳에 시멘트 용 화산 모래 ‘포졸라나’를 저장했다. 인노첸티는 8개월간 이 동굴을 치즈 저장소로 만들었고, 그 곳에서 다양한 페코리노를 만들고 저장했다. 이 페코리노들은 그의 식당에서 파는 요리에 활용됐다.
2010년 이 식당에 합류한 셰프인 샤힌 가치는 “나는 페코리노 애호가”라고 말했다. “(페코리노는) 날카롭고 공격적인 재료와 조합하는 것이 좋습니다. 로마 요리는 날카로운 맛과 공격적인 맛의 본고장이기 때문에 로마 요리에는 페코리노가 제격이죠.”
이 식당엔 아티초크(지중해 부근이 원산지인 국화과 식물)를 페코리노 로마노 크림과 파프리카 크루통(수프나 샐러드에 넣는, 바삭하게 튀긴 작은 빵 조각)에 넣은 메뉴가 있다. 이곳에선 아티초크를 진한 페코리노 소스를 입힌 뒤 튀겨낸다. 페코리노가 아티초크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유혹할 수 있는 맛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가치는 “아티초크는 어울리는 짝을 찾기 어려운 식재료”라고 말했다. “(아티초크는) 모든 재료와 끝없이 싸워대죠. 그런데 페코리노도 맞서 싸웁니다. 둘 다 강력하다 보니 정말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되는 겁니다.”
이 식당에선 ‘피치 디 그라노 사라세노(페코리노 로마노 소스에 호박, 돼지 목상, 밤을 넣은 메밀 파스타)’도 인기다. 가치는 “이 파스타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가 매우 강하고 공격적인 맛을 가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호박의 단맛과 구안치알레(돼지의 목과 볼 부위 살)의 짠 맛을 살려내죠.”
어쩌면 메뉴의 정점은 파와 생강, 발사믹 식초를 넣고 졸인 페코리노 로마노 위에 구운 새우를 올린 샐러드일 것이다. 발사믹 식초로 코팅된 새우를 먹은 후, 페코리노 받침을 과자처럼 먹는 메뉴다.
인노첸티의 아내인 아가테 자부르는 “모든 페코리노는 저마다 다른 맛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페코리노는 미각을 다양하게 자극해요. 달콤할 수도 있고, 매울 수도 있어요. 와인하고 함께 먹으면 아주 재미있어요. 맛이 또 달라지거든요.”
하지만 2000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는 게 있을 것이다. 코로나19도 끊지 못했던 페코리노의 명맥이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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