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해양을 가로질러 전력과 데이터를 전달하는 해저 케이블이 해양 생물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바다 깊은 곳에 길이가 수만 마일에 달하는 케이블이 묻혀 있다. 대륙과 대륙 사이에 데이터를 전달하거나, 바다에 설치된 재생 가능 에너지 발전소에서 만든 전력을 육지로 전달하는 케이블이다.
이 인공 구조물은 다양한 해양 생물의 피난처가 되기도 한다. 케이블 근처에서 말미잘과 해면동물, 산호, 불가사리, 성게, 벌레류, 쌍각류 조개, 게와 같은 무척추 동물들이 서식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해양 과학자들은 해저 전력 케이블이 만드는 전자기장이 이러한 생물들에게 미칠 영향을 규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많은 해저 생물이 먹이 사냥에 자기장을 사용하거나, 내재된 북쪽 감지 감각 기관을 통해 이동하기 때문이다.
해양 재생 에너지가 확대되면서, 해저 케이블 역시 늘어날 전망이다. 그렇다면 인류의 손이 거의 닿지 않은 곳에 살던 이 생명체들은 어떤 위협을 받게 될까?
해저 케이블은 크게 통신 케이블과 고압 전력 케이블로 나뉜다. 통신 케이블은 심해 바닥에 놓인다. 반면 해안가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전력 케이블은 보통 퇴적물 아래에 묻는다.
현재 전 세계에는 약 380개의 해저 통신 케이블이 있고, 그 길이만 해도 120만 킬로미터가 넘는다. 해저 케이블 지도에는 살구, 협주곡, 토파즈, 폴라 익스프레스, 멜팅팟 등 기발한 이름을 가진 해저 광섬유 통신 케이블이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 국가간 데이터 이동량에서 95% 이상을 담당하는 게 해저 통신 케이블이다. 해상에 있는 풍력 및 수력 발전 역시 해저 케이블을 사용한다.
재생 가능 에너지 프로젝트는 지난 수십 년간 확대됐다. 이에 따라 이런 시설이 사용하는 해저 케이블의 환경적 영향에 대한 연구도 나오고 있다.
해저 통신 케이블은 정원에서 볼 수 있는 호스 정도의 굵기다. 그 안에 디지털 데이터를 전달하는 필라멘트가 있는데, 필라멘트 직경은 사람의 머리카락과 비슷하거나 더 얇다.
전력 케이블은 일반적으로 더 굵은 편(7~30cm)이다. 보호를 위해 몇 겹의 금속 피복을 하기 때문이다. 해저 케이블은 지진과 수중 산사태 등의 손상 위험을 피해 조심스레 매설된다.
수심이 얕은 곳에선 우발적인 손상(예를 들어 낚시와 바다 트롤링, 닻 고정 같은 인간 활동으로 인한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바다 밑바닥을 파고 케이블을 묻어야 한다.
베르겐에 있는 ‘노르웨이 해양 연구소’ 연구원, 바스티엔 타오르미나는 “해저 매설을 담당하는 기업들은 전력 케이블을 보호하기 위해 퇴적물 아래 케이블을 매설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 방식이 주변 서식지에 더 큰 영향을 줍니다.”
타오르미나는 인공 구조물이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국제학술지 ‘환경관리저널’에 발표했다. 그의 연구팀은 5년에 걸쳐 조력 에너지 용 전력 케이블 및 그 부속물 주변에 서식지를 만든 생물 종을 연구 관찰했다.
케이블이 놓이면 주변 해저 생태계가 방해를 받는다. 타오르미나는 다소 역설적이게도 이것이 초기에는 더 큰 생물 다양성을 만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기회를 얻은 생물종은 살아남지만 이게 좋은 생태계라는 뜻은 아니에요. 비록 종이 다양해져도, 그 상태가 유지되지 않거든요.”
바로 ‘생태적 천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산호초처럼 특정 공동체들이 “정점을 이루거나” (전기가 통하는 해저 케이블에서 발생하는) 화재 등의 사태가 있을 때까지 생물 공동체가 서로를 대체하는 과정이다.
현재 전 세계 거의 모든 인터넷 및 은행 거래는 해저 케이블을 통해 이뤄진다. 때문에 그 취약성에 대한 우려가 계속 커지고 있다.
해저 전력 케이블로 인해 또 다른 잠재적 영향은 전자기장(EMF)이다. EMF의 강도는 케이블을 통과하는 전류와 케이블이 매설된 깊이, 케이블 사이의 거리(여러 케이블이 근접하게 작동하는 경우)의 직접적인 함수다.
특히 EMF는 해양 생물이 케이블에서 10m 이내 거리에 있는 경우 물속 이동에 필요한 자연 지구 자기장을 왜곡시킬 수 있다.
국립해양센터 해양 지질 시스템 부문장인 마이클 클레어는 “전자기장에 민감한 종들을 더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EMF가 어느 수준이 되면 바다 생물에게 문제가 생길까요?”
아직까지는 대부분의 연구 기관은 물론 클레어를 포함한 과학자들이 해저 케이블과 해양 생물의 행동 사이의 인과 관계를 분명히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클레어는 “가오리나 바닷가재 같은 생물이 EMF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 있는데, 그게 전력 케이블 EMF의 영향인지는 여전히 불분명하고 아직도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미국 내무부는 몇 가지 연구를 거친 후 “해저 케이블 근처에서 잠깐의 (특이) 활동이 관찰됐지만, 어류의 전반적인 이동 능력이 손상됐다는 주장의 근거로 삼기에는 불충분한 데이터”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진행된 학계의 상호 검토 연구도 이와 같은 입장이다.
수족관에서 진행된 연구에서도 자기장에 민감한 해양 생물은 EMF에 행동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 연구에서 EMF에 노출 수준은 전력 케이블보다 훨씬 큰 수준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상어와 가오리, 은상어류 등은 ‘로렌치니 기관’이라 불리는 전기장에 극도로 민감한 기관을 진화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기관은 연골 어류 피부에 점액으로 채워진 여러 개의 구멍인데, 먹이를 잘 탐지하기 위해 1마이크로볼트 미만의 전류에도 반응한다.
클레어 “향후 해양 연구원과 케이블 운영자, 소유자 간의 연구 협업이 있으면 더 많은 것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타오르미나의 연구는 대륙붕을 따라 이동하는 동물들이 케이블 전자기장에 영향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지만, 그 또한 EMF에 대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심해 연구는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이 많이 걸리며, 자원이 많이 들어간다. 하지만 정보 격차를 메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약 20년 전, ‘몬터레이 베이 국립 해양 보호구역’ 연구원들은 ‘국립 해양 대기청’과 협력해 중부 캘리포니아 심해에 있는 해면 온도 측정 케이블을 연구했다.
당시 이 연구는 해저 케이블의 생물학적 영향을 조사한 유일한 연구였다. 원격조종장비(ROV)가 ‘하프 문 베이’ 심해로 전자케이블 추적 시스템을 운반했고, 연구자들은 퇴적물 아래에 묻혔던 케이블 일부를 찾아냈다. (이 케이블은 1995년 심해 음파 속도를 관찰해 해수 온도 변화를 감지하는 실험의 일환으로 설치됐다.)
그리고 ROV가 케이블 중 약 95킬로미터 정도를 따라가는 동안, 과학자들은 퇴적물 표본과 케이블 위나 근처에 사는 동물들의 영상과 사진을 찍었다.
연구원들은 이 연구를 통해 케이블 자체에서 자라는 말미잘 군집을 발견했다. 말미잘이 진흙이나 퇴적물에 묻힌 케이블에 바로 붙어있었던 것이다.
연구원들은 이 말미잘은 해저 케이블이 없었다면 부드러운 바닥 지역에 서식지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라 결론지었다. 해저 케이블이 이 생물을 위해 단단한 발판이 됐던 것. 따라서 케이블을 제거하면, 케이블을 서식지로 삼은 해양 생물의 생태계에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국지적인 서식지 손상 또는 손실 외에도 해저 전력 케이블이나 통신 케이블은 열과 (케이블 매설 과정의) 수질 혼탁 초래, 얽힘 위험, 인공 물질 도입 등으로 해양 환경에 일시 또는 영구적 영향을 줄 수 있다.
반면 생물학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낼 수도 있다. 케이블이 지나는 지역은 보호 구역으로 지정돼, 닻과 바닥 저인망, 심지어 낚시까지도 제한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뉴질랜드 ‘쿡 해협 케이블 보호 구역(CPZ)’은 보호구역을 만들어 케이블 근처 어업을 제한했고, 해당 지역의 어족 자원이 풍부해지고 있다.
해저 케이블은 오염도 일으키지 않는다. 안정적인 비활성 구조물이며, 수명(평균적으로 20-40년)을 다한 후 회수 및 재활용이 가능하다.
니콜 스타로실스키 NYU 교수는 “대부분의 인터넷 인프라에 비해 (해저 케이블의) 탄소 발자국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말했다. 그녀는 저서 ‘해저 네트워크’를 통해 해양을 가로지르는 케이블 시스템을 문화적 차원과 환경적 차원에서 조명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녀는 해저 케이블 논쟁에 의미있는 사회과학적 관점을 더했다.
“우리는 화석 연료 소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재생 가능 전력 시절과 대규모 육상 데이터 센터를 더 많은 케이블로 연결하자는 입장입니다.”
실제로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 소규모 개발도상국들은 이러한 정교한 케이블 시스템 의존 비중이 결정적으로 크다. 이 시스템 없이는 녹색 에너지와 통신, 원격 작업 기술, 전자 의료 및 기타 디지털 서비스를 누리기 어렵다.
해양 생물, 해양 생물과 인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은 알려지지 않은 것들로 가득하다. 환경 보존을 우려하는 생태학자들에게도 해저 케이블들은 아직도 많은 물음표인 것이다.
그래서 클레어는 “이에 대한 연구가 가치 있다”고 말했다. “산업 지도자와 정책 입안자, 케이블 회사, 다양한 해양 경제 참여 주체들이 지속 가능한 해저 개발을 해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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