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외교∙국방 분야 고위급 회담을 잇따라 개최한 한국과 미국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메시지가 있다. 바로 ‘빈틈없는 공조’와 ‘확장 억제 강화 의지’다.

‘확장 억제’ 단어만 놓고 보면 다소 난해할 수 있다. 하지만 핵심은 명확하다. 한국 방어에 대한 미국의 신뢰성을 높여 끓어오르는 한국 내 자체 핵 보유 여론을 달래겠다는 것이다.

지난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계속되는 북한의 핵 위협∙탄도미사일 발사 등으로 현재 한국 내 핵 보유론, 전술핵 재배치론 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안보 위협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서 ‘북한이 핵으로 위협하면 한국도 핵으로 맞서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상황.

미국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 아산정책연구원, 샌드연구소 등 지난 1년여 간 발표된 연구기관들의 조사를 보면 자체 핵 보유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찬성 의견은 70% 이상으로 나타났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최종현학술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6.6%가 한국의 독자 핵개발을 지지했다. 72.4%는 한국의 핵 개발 능력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또 응답자의 77.6%는 북한 비핵화가 불가능하다고 답했으며 78.6%는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감행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이 한반도 유사시 핵 억지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답한 비율 51.3%, ‘그렇지 않다’고 답한 비율이 48.7%였다.

이는 북한이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반도 유사시 미국이 적극 나서주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내포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단순히 ‘북한이 핵을 가졌으니 우리도 가져야 한다’ 식의 대응은 지양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Reuters
북한 조선중앙통신(KCNA)은 2022년 11월 19일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보도했다

먼저 한국의 핵 보유가 초당적으로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선 한국은 NPT(핵확산금지조약) 가입국으로, 탈퇴한 뒤 미국의 동의 없이 핵을 개발할 경우 국제사회의 제재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나 러시아처럼 경제 제재를 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럴 경우 그 후과를 누가 감당하게 될까? 한미동맹은 또 어떻게 될까?

윤석열 대통령이 앞서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이 열린 지난달 20일 현지에서 진행된 한 미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현재로서는 우리가 NPT 체제를 존중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밝힌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저와 대한민국 국민들은 북핵 위협에 대한 미국의 확장 억제에 대해서 상당한 신뢰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핵 보유론’을 어떻게 평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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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핵 보유, 국제사회 파장 감당 어려워

전 청와대 고위 관계자(익명 요구)

“현재와 같이 공고한 한미동맹 하에서 한국의 독자적인 핵 개발은 필요 없다, 이게 제 답입니다. 그리고 지금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 자체가 강력한 억제력을 발휘하겠다고 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독자적인 핵무장을 하겠다는 것은 미국에 대한 불신으로밖에 비춰지지 않잖아요. 그래서 불필요하다는 거예요.

또 지금까지 기존의 우리 정부의 정책은 한반도 비핵화잖아요. 물론 북한이 핵무장을 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한반도 비핵화라는 일관된 정책을 바꿀 만한 상황이냐 라는 측면에서는 점검을 해봐야죠. 이제 저의 공식적인 답변입니다.

비공식적으로 말씀 드리면 (핵무장) 하면 안 된다고 봐요. 이게 단순하게 핵 문제만이 아니거든요. 미국과의 어떤 협약을 통해서 핵 보유를 할 수는 있어요. 선례가 없는 것도 아니고 할 수는 있는데 그렇게 하면 우리 경제적인 문제, 국제사회에 대한 신뢰 문제, 그 다음에 또 일본과 대만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요. 그럼 중국도 얽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북한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어떤 독자적인 핵무기를 갖겠다고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어떤 위협들이 온다는 거죠. 그걸 우리가 감당하기가 어려워요. 또 한미동맹 차원에서도 동맹이 깨지면 안 되잖아요. 그런 차원에서 핵 보유가 정말 필요한지를 잘 보고 판단해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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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미국도 한국 정서 고려… 동맹에 영향 없어

김형석 전 통일부 차관

“당장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는데 그거 우리도 가져야 되는 거 아니냐, 그래야 기본적으로 군사적 힘의 균형이 확보가 된다 이런 논리잖아요. 이러한 한국 내 정서를 감안해서 미국도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보는 거죠.

미국도 더 적극적으로 확장된 억지력을 통해서 한국의 안보 우려를 해소해 주겠다는 거니까 더 군사 협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한미동맹을 위태롭게 한다든지 그건 아니라는 거죠.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은 사실상 좀 어려운 상황이죠. 아무래도 중국이나 러시아도 고려해야 하고 복잡하죠. 현실적으로는 핵을 가지려면 NPT 체제에서 벗어나야 되고 여러 복잡한 문제가 있고 우리만의 문제도 아니고 또 국제사회가 한국이 핵을 보유함으로 인해서 연쇄적인 효과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핵에 준하는 확정된 억지력을 가지고 하겠다는 게 현실적인 거예요.

이제 문제는 북한이 핵과 ICBM을 가지고 미국 본토를 공격했을 때 그러면 과연 미국의 확장 억지력이 어디까지 작동을 하겠냐는 거죠. 그에 대해 미국은 확고하다는 입장이고 또 그게 아니라고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는 계속 여지를 남겨두면서 확장 억지력 강화 쪽으로 가지 않나 싶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

Reuters
린다 토마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가 2023년 2월 6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의 평화와 안보 유지에 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공개토론회’ 필요

전 외교부 고위 관료(익명 요구)

“한국사람으로서 얘기하자면, 북한의 위협은 점점 더 커졌죠. 또 그거에 대항해서 대화도 해봤고 제재도 해봤지만 북한 비핵화를 막는 데는 한마디로 실패했죠.

그러면은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죠, 똑같은 걸로 안 됐으니까. 그러면 한국이 핵무장으로 가는 발걸음을 내딛는 것도 해결책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을 해요.

지금 당장 된다 안 된다, 한미동맹에 맞느냐 안 맞느냐, 이런 것을 떠나서 어떤 장기적 시각에서 본다면 이런 이슈를 논의하는 게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나는 도움이 된다고 생각을 해요.

요새 또 여론조사 하면 거의 70%가 찬성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런 여론을 기반으로 해서, 물론 그런다고 당장 뭐가 되겠어요? 그게 얼마나 장애가 많겠어요. 그리고 또 한국이 북한도 아니고 뭐 비밀리에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오늘, 내일의 가능성으로 얘기하는 것은 아니고 그런 논의를 하고 한국 내 그런 의견을 기반으로 어떤 퍼블릭 디베이트(공개토론회)를 하는 것은 굉장히 건설적인 일이라는 거죠. 영국도 브렉시트 문제를 놓고 퍼블릭 디베이트 했잖아요. 민주 국가라면 퍼블릭 디베이트 해야죠.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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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더 큰 그림 ‘통합 억제’… 미국의 적극적 노력 필요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확장 억제, 핵무장만 놓고 본다면 한국과 미국의 입장이 분명히 충돌하는 지점이 있다고 봐요. 한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계속 핵을 고도화하고, 비핵화 협상이나 북미대화도 전혀 안 되고 있고 따라서 당연히 안보에 대해 우선적 고려를 할 수밖에 없죠. 더군다나 여론이 이렇게 움직이는 상황에서 국민들은 당연히 핵무장, 전술핵 배치 그런 눈에 보이는 조치들을 요구하는 거죠.

반면 미국에서는 ‘무슨 소리냐,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있고 2만8500명의 주한미군이 있고 매년 SCM(한미 안보협의회의)이나 주요 회담에서 한국에 대한 방어 공약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한국이 미국을 믿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입장이거든요. 양측 간의 입장은 분명히 차이가 있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한미가 계속 확장 억제 강화만을 얘기한다면 한미 간에 접점 없이 오히려 관계에 좀 어려움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게 제 판단입니다. 그래서 저는 확장 억제 말고 미국이 강조하는 통합 억제, 그게 북한 핵을 억제하는 데는 훨씬 더 효과적이기 때문에 더 큰 그림에서 북한 핵의 효용성을 낮추고 억제할 수 있는 통합 억제를 논의하는 게 첫 번째 필요하다고 보고요.

또 하나는 논란의 근본 원인이 북한의 핵 개발 때문이잖아요. 그러면 뭔가 이걸 멈추기 위한 외교적인 노력도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돼요. 예를 들어, 어떻게든 미북 간 다시 협상이 진행된다면 확장 억제에 대한 요구는 좀 줄어들 가능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런 국면도 계속 고민해야 되는데 미국이 북한 핵 문제에 대한 해결의 의지라든지 정책상 우선순위가 높지 않다는 게 한국 여론을 계속 들끓게 하는 이유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더 적극적으로 이 국면을 돌파하려는 미국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거죠.

한국의 핵 개발이요? 미국의 동의 없이는 못하죠. 거기다가 결정적으로 바이든 대통령의 신념이 ‘핵 없는 세상’이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핵무장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 핵무장이 가능한 조건은 트럼프가 다시 등장해서 NPT 체제를 완전히 부정해 버리면 이제 그때 가능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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