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일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덮친 대지진으로 현재까지 3만5000여 명이 사망한 가운데 전문가들이 참사 모금 활동을 위장한 사기 피해에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진 이후 난방시설이나 물도 없이 고통받는 생존자들을 위해 기부해달라고 접근한 뒤, 기부금을 도움이 필요한 생존자들을 위해 쓰는 대신 자신의 페이팔 계정 혹은 암호화폐 지갑으로 빼돌리는 방식이다.
BBC는 이러한 사기 범죄의 주요 수법 및 기부 전 유의 사항을 살펴봤다.
먼저 SNS 플랫폼 ‘틱톡’에선 라이브 방송 중에 콘텐츠 제작자가 디지털 선물 등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는데, 현재 여러 틱톡 계정에서 지진 피해 사진, 구조 작업 영상 등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며 모금 활동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게시물엔 ‘튀르키예를 도웁시다’, ‘튀르키예를 위해 기도합시다’, ‘지진 피해자를 위해 기부합시다’ 등의 문구도 함께 적혀있다.
일례로 3시간 이상 라이브 방송을 진행한 어느 계정에선 무너진 건물을 담은 저화질의 항공 사진을 폭발음과 함께 게시했다.
카메라 밖에선 중국어로 말하고 웃는 어느 남성의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다. 해당 게시물에선 “튀르키예를 도웁시다. 기부”라는 문구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자욱한 연기를 배경으로 아이가 울며 뛰어가는 사진을 담은 영상을 올린 계정도 있다.
해당 라이브 방송 진행자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고 적었다. 틱톡 내 디지털 선물이 목적임을 분명히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해당 사진은 주 발생한 지진 참사 현장이 아니다. 조사 결과 지난 2018년 어느 트위터 게시물에서 동일한 사진을 찾을 수 있었다.
해당 게시물엔 ‘아프린의 학살을 막아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지난 2018년 튀르키예군과 시리아 반군이 쿠르드 민병대를 축출했던 시리아의 북서부 도시 아프린에서의 참사를 가리킨다.

틱톡에서 기부 시 또 다른 주의점도 있다. BBC 조사 결과 틱톡에서 디지털 선물을 구입할 경우 틱톡 측이 수익금 최대 약 70%까지 가져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틱톡 측은 이보다 낮은 비율이라고 주장한다.
틱톡 측 대변인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당사 또한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발생한 파괴적인 지진 피해에 깊은 슬픔을 느끼고 있으며, 지진 구호 활동에 기여하고 있다”면서 “또한 사기 행각을 막고 도움을 주고자 하는 시민들이 피해 보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트위터에선 감성적인 이미지와 함께 기부를 독려하며 암호화폐 지갑으로 연결되는 링크를 걸어둔 게시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어느 트위터 계정은 무너진 건물 속에서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소방관의 사진과 함께 12시간 동안 같은 내용의 호소문을 8번 반복 게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당 사진은 실제가 아니다. 그리스 언론 ‘OEMA”는 파나요티스 코트리디스 소방대 소장이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미드저니’를 이용해 생성한 사진이라고 보도했다.
AI가 생성한 이미지엔 종종 오류가 생기기도 하는데, 트위터 사용자들은 해당 사진 속 소방관의 오른손 손가락이 6개임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더욱 확실한 검증을 위해 BBC 기술 연구 허브인 ‘블루 룸’ 직원들에게 동일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유사한 이미지를 생성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따라 해당 소프트웨어에 ‘지진 후 어린아이를 구조하고 있는, 그리스 국기가 그려진 헬멧을 쓴 소방대원의 이미지’를 요청하자 다음과 같은 이미지가 생성됐다.

게다가 이러한 트위터 게시물에 올라온 암호화폐 지갑 주소 중엔 2018년부터 각종 사기 및 스팸 관련 트위터 게시물에 사용된 것도 있었으며, 러시아 SNS 플랫폼 ‘VK’에서의 음란물 관련 콘텐츠에 사용된 주소도 있었다.
한편 이러한 게시물 작성자에게 연락하자 사기가 아니라며 부인했다. 그러면서 인터넷 연결 상태가 좋지 않다며 구글 번역기를 사용해 BBC의 질문에 답해왔다.
“우리의 목표는 만약 기부금을 모을 수 있다면 지진 피해자들을 돕는 것”이라면서 “현재 사람들이 추운 재난 피해 지역에서 고통받고 있으며 특히 어린 아이들은 먹을 음식이 없다. 영수증으로 (기부금 전달) 과정을 증명할 수 있다”는 답변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영수증이나 신분증 등을 전달받지 못했다.
한편 결제서비스인 페이팔 링크를 게시하며 거짓 모금 활동을 펼치고 있는 트위터 게시물도 찾아볼 수 있다.
글로벌 보안 업체 ‘소나타입’의 사이버 보안 전문가 액스 샤르마는 이러한 사기 계정은 보통 뉴스 기사를 리트윗하거나, 유명 인사 및 기업의 트윗에 응답하는 식으로 사람들의 눈에 띄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샤르마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합법적인 단체 혹은 뉴스 매체인 듯한 거짓 재난 구호 계정을 만든 후 자신들의 페이팔 주소로 기부금을 빼돌린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지난달 트위터에 가입했으며 팔로워가 31명에 불과한 ‘터키 재난 구호’ 계정은 페이팔을 통해 기부를 호소하고 있다. 해당 페이팔 계정엔 현재 기부금 900달러(약 110만원)가 모였다. 하지만 이중 500달러는 해당 게시물 작성자가 낸 금액이다
이에 대해 샤르마는 “진정성 있는 모금처럼 보이기 위한 수법”이라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최근 페이팔에선 지진 피해자들을 돕자며 100개 이상의 모금 페이지가 생성됐으며, 이 중 일부는 사기이다.
이에 대해 샤르마는 페이팔은 2016년 이후 튀르키예에서 서비스를 중단한 상태이기에 자신이 튀르키예에 있다고 말하는 계정에 대해선 특히 더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튀르키예 외 지역에서 페이팔을 사용하는 실제 자선 단체도 있지만, 만약 모금자가 튀르키예에 있다고 말한다면 주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밖에도 현재까지 소액이 모였다며 호소하는 익명의 게시물도 주의해야 한다. 샤르마에 따르면 실제 자선 단체는 “상당한 자금”을 모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페이팔에 생성된 모금 페이지 중 대부분이 100파운드(약 15만원) 미만이다.
한편 페이팔 측은 해당 사기 계좌를 정지시켰다. 페이팔 대변인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페이팔을 통해 모금하는 대부분 사용자가 좋은 의도이지만, 불가피하게 타인의 자비와 선의를 이용하려는 이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당사는 특히 튀르키예-시리아 지진과 같은 사건이 발생 후 조성된 기부금이 의도한 목적대로 사용될 수 있도록 관련 계정을 꼼꼼히 조사하고, (사기) 계정은 금지하고자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한편 트위터 또한 ‘터키 재난 구호’ 계정을 정지시켰으나, 이에 관한 질문엔 답하지 않았다.
안전하게 기부하는 방법
- 영국 정부의 자선 단체 등록 웹사이트나 미 국세청 등에서 자선 단체를 검색해볼 수 있다.
- 사기가 의심되면 영국의 사기 범죄 전담 수사 기관(액션 프로드) 또는 해당 SNS 플랫폼에 신고할 수 있다.
- 감정에 호소하는 문구, 사진 혹은 영상에 주의해야 한다.
- 실제 자선 단체나 정부 기관과 관련 있다고 주장하는 가짜 단체도 있기에 그러한 자선 단체나 정부 기관에 기부하고 싶을 경우엔 해당 웹사이트를 찾아 직접 기부하는 게 좋다.
반복되는 속임수
지진이나 전쟁 등 큰 사건이 발생하면 동일한 암호화 주소 및 웹사이트를 반복적으로 사용해 타인의 돈을 갈취하는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BBC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발생한 비슷한 사기 수법을 심층적으로 분석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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