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외교 당국이 강제징용 배상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에 임하고 있는 가운데 미쓰비시중공업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94) 할머니와 그의 법률 대리인이 “한국 정부는 제3자”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16일 서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진행된 ‘강제동원 피해자 및 시민단체 관계자’ 기자 간담회에는 미쓰비시중공업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와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법률대리인 임재성 변호사를 비롯한 시민단체 대표들이 참석해 최근 한국 외교 당국이 제시한 ‘강제징용 해법’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임 변호사는 “(한국) 외교부가 한일간의 강제징용 해법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정확하게는 강제 동원 피해자들의 판결 채권을 어떻게 소멸시킬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며 “일본 정부가 가장 원하는 것은 일본 기업 자산이 매각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피해자들이 판결로 얻은 채권을 없애고 싶어하는데 한국 정부가 바로 그것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에서는 (한국) 정부가 아예 제 3자임에도 일본 기업의 자산 매각을 막기 위해 개인들을 설득해 포기 각서에 서명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일 외교당국은 13일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일 삼자 차관회담을 계기로 한일 양자 외교 차단 회담을 열고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비롯한 주요 현안을 논의한 바 있다.
또 18일에는 뮌헨안보회의를 계기로 양국 외교장단 회담이 열릴 수 있어 양국이 강제동원 관련 협의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양국은 강제동원 관련 협의에 있어 아직까지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13일 조현동 한국 외교1차관과 모리 다케오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의 회담은 당초 예정된 1시간 30분을 넘겨 2시간 30분 가량 진행됐다. 하지만 조 차관은 이에 대해 “회의가 길어진 건 나쁜 건 아닌데, 논의가 길어졌다는 것은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된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의 직접적인 사과 없는 안 수용 어려워’
한일 양국이 논의를 통해 접점을 찾는다고 해도 강제징용과 관련된 논란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강제징용 피해자들 중 정부안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쪽도 있지만 양금덕 할머니처럼 ‘일본 정부의 직접적 사과와 배상 없이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의 피해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에 소송을 제기한 이춘식(99) 할아버지, 미쓰비시중공업에 소송을 제기한 양금덕 할머니 등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한 피해자들의 소송전은 1990년대 일본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이춘식 할아버지를 포함한 4명의 소송은 2003년, 양금덕 할머니의 소송은 2008년 각각 일본 최고재판소 기각을 끝으로 최종 패소했다. 이들은 이후 다시 한국 사법부에 소송을 제기했고 한국 대법원은 이춘식 할아버지와 양금덕 할머니 사건에 대해 각각 2018년 10월과 11월에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후 약 4년 3개월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해당 일본 기업들의 한국내 자산 매각에 대한 한국 법원의 매각명령과 해당 기업들의 항고 등 법적 공방이 결론을 맺지 못하고 계속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한일 관계 개선을 모색하기 위한 일본과의 협상에 속력을 내기 위해 피해자들과 해당 문제를 논의 중에 있다.
하지만 지난해 말 국가인권위원회의 양금덕 할머니 국민훈장 모란장 서훈 결정이 외교부 반대로 국무회의에 상정되지 못하고 무산되는 등 일본 정부와 ‘외교적 해결’을 강조하는 윤석열 행정부와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는 피해자 측의 의견 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못하고 있다.
양금덕 할머니는 16일 간담회에서 “내가 사죄만 한 번 받고 죽고 싶다는 그 마음 하나로 지금까지 버티고 살고 있다”며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하는 방안들은 일본의 사죄가 아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또 ‘우리 정부가 미쓰비시나 일본 정부 대신 우리 기업들한테 돈을 걷어서 할머니와 피해자들에 배상하는 방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한 질문에 “잘못한 사람이 따로 있는데 (한국의) 여러분들한테 동냥해서 받기는 싫다”고 말했다.
한편 양금덕 할머니와 이춘식 할아버지 등 2018년 10월 선고된 피고 일본제철 판결과 2018년 11월 선고된 피고 미쓰비시중공업 판결에 대해 원고들의 소송대리인을 맡고 있는 임재성 변호사는 한국 정부가 최근 원고들이 일본 기업들에 갖는 채권을 소멸시키기 위해 두 가지 방안을 준비 중이라고 주장했다.
임 변호사에 따르면 첫 번째는 ‘원고들의 합의를 얻어 채권 포기 각서에 서명하게 만드는 것’이고 두 번째는 ‘채권 포기에 동의하지 않는 피해자들에게 한국 정부 주도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채결 채권에 해당하는 금원을 공탁해 원고들이 진행하는 사건에 대해 채권 소멸을 주장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 때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을 받아낸다는 조건도 제시했다.
하지만 임 변호사는 이에 대해 “양국 정부가 김대중-오부치 선언(1998)을 계승하는 것을 일본의 사과라고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강제 동원 문제에 대한 사과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정한 사과가 되려면 과거의 담화를 재확인하는 수준은 당연히 넘어서야 하고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했던 사실 인정, 유감의 표시, 역사적 인식이 담기는 등 명시적인 책임 인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 외교부 당국자들은 지난 13일 이춘식 할아버지의 자택을 방문하는 등 피해자들과 접촉과 면담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이에 대해 법률 대리인 측은 ‘외교부가 사전에 공지하지 않거나 면담에 지나치게 임박해 공지하는 등 법률 대리인 없이 피해자들과 접촉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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