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의 파업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대통령실은 해당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시사했다.
지난 21일 노란봉투법, 정식 명칭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에 대한 개정안은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주도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를 통과했다. 야권 연대의 법안 강행 처리에 반발한 여당 국민의힘은 표결 직전 퇴장했다.
노란봉투법은 환노위 전체회의 통과로 이제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서 논의된다. 다만 현재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 소속 김도읍 의원이 맞고 있어 논의가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야권 연대는 해당 개정안을 본회의에 직접 회부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상임위원회를 통과해 법사위로 넘어간 개정안이 60일 넘게 처리되지 않을 경우, 소관 상임위원회(이 경우 환노위)가 표결로 본회의에 직회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국민의힘 측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즉 거부권 행사를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재임 이후 노동조합에 대해 강경한 기조를 보여온 윤 대통령 측이 거부권 행사를 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실은 다수의 언론 인터뷰에서 ‘현재로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거부권을 행사한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국 뇌관 된 노란봉투법.. ‘노동권 보장’ vs ‘노조는 치외 법권 아냐’
노란봉투법은 과거 19대 국회 당시인 2015년 처음 발의된 이후 여러 차례 국회에서 논의됐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그러다 21개 국회에서 진보 정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관련 개정안들이 새롭게 발의되고 다수 의석을 확보한 더불어민주당에서 해당안을 당론으로 채택하면서 ‘진보 야권 연대’ vs ‘보수 여권’의 대결 구도가 형성됐다.
노란봉투법은 기업의 손배소와 가압류가 노동자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노동쟁의 과정에서 일어난 폭력이나 파괴로 인한 손해를 제외한 노동자들의 쟁의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이나 가압류를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여기에 사용자와 직접적인 계약을 맺지 않은 하도급이나 간접고용노동자 등도 교섭에 나설 수 있도록 ‘사용자성 인정 강화’에 중점을 뒀다.
하지만 경영계와 보수 여권은 노란봉투법이 헌법상 기본권인 사용자의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뿐 아니라 정당한 쟁의행위가 아닌 불법 행위까지 면책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21일 노란봉투법의 환노위 통과에 대해 “이법이 통과된다면 위헌일 뿐 아니라 우리 경제에 심대한 폐단을 가져오는 법이기 때문에 거부권 행사를 적극 건의할 예정”이라는 메시지를냈다. 대통령실도 언론 보도를 통해 해당 법안이 ‘위헌적’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 사실상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기정사실화되는 모양새다.
특히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곧 ‘노동조합의 불법 행위’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해 왔다.
더군다나 노란봉투법 통과와 함께 최근에는 양대 거대 노동조합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에 대한 정부의 회계 감사를 둘러싼 논란도 불거지는 등 노동계와 보수 여권의 갈등이 심화되는 모양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와 주례회동에서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 논의문제를 논의한데 이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관련 보고를 받았다. 윤 대통령은 이날 관계 부처에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을 강조하며 회계 자료 미제출 노동조합에 대한 재정 지원 중단 등 ‘단호한 조치’를 주문했다. 이를 두고 윤 대통령이 노란봉투법이 상정된 환노위를 하루 앞둔 상황에서 노란봉투법에 대한 간접적 압박을 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윤 대통령은 다음날인 21일 국무회에서도 ‘강성 노동조합의 불법행위’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냈다. 윤 대통령은 “폭력과 불법을 보고서도 방치한다면 국가라고 할 수 없다”며 “아직도 건설 현장에서는 강성 기득권 노조가 금품 요구, 채용 강요, 공사 방해와 같은 불법행위를 공공연하게 자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건설 현장의 갈취, 폭력 등 조직적 불법행위에 대해 검찰, 경찰,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가 협력해 강력하게 단속하라”고 주문했다.
야권에서는 윤 대통령의 최근 발언들이 일부 불법적인 노동조합 사례만 부각해 노동조합 전체를 악마화한다고 비판했다.
정의당 이은주 원내대표는 22일 MBC의 한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노조 전체를 악마화하고 일부 사례만 부각해 청년과 갈라치기하는 건 매우 심각하다”며 ‘기득권 강성 노조의 폐해를 종식시키지 않고서는 청년들의 미래가 없다’는 윤 대통령의 전날 메시지를 비판했다.
이 대표는 그러면서 “사측 부당노동 행위가 대단히 심각한데 그건 눈감고 노조 불법행위만 문제 삼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시사와 관련해 “대통령의 재의권(거부권)은 헌법에 나와 있는 조항 맞지만 17대 이후에 대통령이 실제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는 2건에 불과하다”며 “행정부가 마음에 들지 않는 법안에 대해서 이렇게 마구잡이로 행사하라고 있는 권한이 아니다. 만약 거부권을 행사하면 아마 커다란 사회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남은 절차는
한편 노란봉투법은관련 절차와 물리적인 시일 등을 고려하면 오는 5월 국회 본회의에 부의될 가능성이 있다. 국민의힘이 위원장을 맡은 법사위를 우회해 본회의에 바로 넘기는 법안 처리 방식이 적용되더라도 본회의 부의 시점으로부터 30일 숙려기간을 거쳐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은 지난해 말 야권 주도로 통과된 양곡관리법에 적용된 바 있다. 지난해 10월 법사위에 회부된 양곡관리법은 석달 뒤인 지난 1월 본회의에 직회부 됐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국회에서 재의결 과정을 거칠 수 있다. 재적의원 과반 출석, 출석의원 2/3 이상이 찬성해야 통과될 수 있어 재적의원 300명의 1/3 이상을 확보한 115석의 국민의힘이 최종적으로 법안을 부결시키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관련 절차와 물리적인 시일 등을 고려하면 ‘노란봉투법’은 이르면 오는 5월 국회 본회의에 부의될 수 있다. 본회의에 부의된 뒤 30일 숙려 기간이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위원장을 맡은 법사위를 우회해 본회의에 바로 넘기는 법안 처리 방식이 적용된 것은 지난해 말 통과된 양곡관리법이 처음이었다. 지난해 10월 법사위에 회부된 양곡관리법은 석달 뒤인 지난 1월 본회의에 직회부 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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