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중부 우한시에서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검출된 지 3년이 지난 현재, 코로나19의 기원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그러던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크리스토퍼 레이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바이러스가 “중국 정부가 통제하는 연구소”에서 유출됐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언급했다.
한때 비주류 음모설로 치부됐던 중국 실험실 유출설이 다시 한번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이번 레이 국장의 발언은 코로나19 바이러스 기원과 관련한 FBI의 판단을 공개 석상에서 처음 확인한 사례다.
이에 대해 중국은 미국의 “정치적 조작”이라며 비난했다.
그렇다면 코로나19 기원설엔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기원을 둘러싼 논쟁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우한 실험실 유출설이란?
‘우한 실험실 유출설’이란 첫 감염자가 확인된 지역인 우한시의 어느 실험실에서 바이러스가 우연이든 아니든 간에 빠져나갔다는 의혹이다.
해당 가설을 지지하는 이들은 우한에 주요 생물학 연구소가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WIV)’는 지난 10년간 박쥐의 코로나바이러스를 연구한 곳으로, 첫 집단 감염이 기록된 ‘화난 수산물 도매 시장’에서 차로 40분 정도 떨어진 거리다.

해당 가설의 신봉자들은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유출된 바이러스가 수산물 시장으로 퍼진 것으로 추측한다.
또한 바이러스 자체에 대해선 인공적으로 조작됐다기보단 자연에서 발견된 변형되지 않은 바이러스였을 것이라는 의견이 대다수다.
한편 우한 실험실 유출설은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처음 등장해 전 세계에서 논란을 일으켰으며,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 대통령 또한 이 가설을 언급하며 논란을 부추긴 바 있다.
심지어 생물무기로 제조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당시 언론과 정치권에선 음모론으로 치부하는 목소리가 높았으나, 그 가능성에 대해 좀 더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여러 전문가들이 해당 가설을 뒷받침할만한 증거가 없다고 지적했으나, 이 가설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21년 미국 언론에선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온 도시를 덮치기 이전인 2019년 11월 우한 바이러스학 연구소의 연구원 3명이 어느 병원에서 치료받았다는 내용의 미 기밀 보고서가 떠돌기도 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트럼프 행정부 시절 착수해 우한의 연구소에서 코로나19가 기원했다는 의혹을 들여다보던 국무부의 관련 조사를 중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코로나19의 기원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의학 분야 수석보좌관인 앤서니 파우치 박사는 지난 2021년 5월 상원 청문회에서 “(실험실 유출설의) 가능성도 확실히 존재하며, 이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 착수에 전적으로 찬성한다”고 언급했다.
바이든 대통령 또한 2020년 취임 후 코로나19의 기원에 대해 “감염된 동물과의 인간 접촉에서 발생한 것인지, 실험실 사고였는지 등을 조사해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이후 2021년 5월엔 정보기관에 기원 규명을 위한 노력을 “배가”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과학자들의 생각은?
과학자들 또한 코로나19 기원을 두고 아직 열띤 논쟁을 벌이는 중이다.
한편 세계보건기구(WHO)의 진상 조사가 의혹 해소에 일조해야 했으나, 해답보단 의문을 더 많이 남긴 조사였다는 게 많은 전문가의 의견이다.
WHO는 코로나19의 기원에 대해 알아보고자 연구팀을 꾸려 지난 2021년 초 우한으로 보냈다. 우한 바이러스학 연구소 등을 방문한 이들 연구팀은 12일 뒤 실험실 유출설에 대해 “극도로 가능성이 작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이들의 조사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의문을 제기했다.
일례로 어느 유명 연구진은 WHO의 보고서가 실험실 유출설을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 중 단 몇 페이지에 걸친 설명만으로 일축했다는 것이다.
해당 연구진은 ‘사이언스 매거진’을 통해 “충분한 데이터가 확보되기 전까진 자연 발생설 및 실험실 유출설 등의 가설을 모두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실험실 유출설에 대해 좀 더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은 이들 뿐만이 아니다.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조차 “모든 가설은 여전히 열려있으며,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며 새로운 조사를 촉구한 바 있다.
그리고 파우치 박사 또한 처음엔 동물에서 인간으로 전염됐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언급했으나, 이로부터 1년 뒤인 2021년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자연 발생설에 “확신하지 않는다”며 의견을 바꿨다.
중국의 입장은?
중국은 바이러스의 실험실 유출설은 자국에 대한 비방이라며 강하게 반발한다. 관영 매체들은 미 정부와 서방 언론이 코로나19의 발원에 대해 거짓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고 지속해서 비난한다.
이번 레이 국장의 발언에 대해서도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 정보기관들이 바이러스의 기원에 대한 조사를 정치화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마오닝 대변인은 지난 1일 언론 브리핑에서 “미 정보 당국은 ‘사기와 기만’과 관련된 ‘악행’의 역사를 지녔다”면서 그렇기에 코로나19 기원을 둘러싼 이들의 결론은 신빙성이 없다고 일갈했다.
한편 중국은 바이러스가 중국 다른 지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들여온 냉동육 수송 과정에서 우한에 들어왔을 수 있다는 또 다른 가설을 밀어붙이고 있다.
또한 중국 정부는 자국의 저명한 바이러스학자가 외딴 폐광산에 서식하는 박쥐로부터 샘플을 채취해 진행한 연구를 주목했다.
우한 바이러스학 연구소 소속으로 “중국의 배트우먼”으로도 불리는 쉬정리 교수는 중국의 광산에서 2015년 찾아낸 박쥐에서 코로나바이러스 변이 아종 8개를 발겼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지난 2021년 발표했다. 해당 보고서는 박쥐에서 발견한 바이러스보다 천산갑에서 발견한 코로나바이러스가 인간에게 더 즉각적으로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중국 선전가들이 오랫동안 주장해온, 근거 없는 음모론도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미 워싱턴 DC에서 북쪽으로 약 80km 떨어진 메릴랜드주 ‘포트 데트릭’ 기지에서 개발돼 유출됐다는 주장이다.
마오 대변인 또한 이번 언론 브리핑에서 해당 음모론을 언급했다.
한때 미 생물무기 개발의 중심이었던 ‘포트 데트릭’은 현재 에볼라와 천연두 등의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생의학 실험실을 운영하고 있다.
또 다른 가설도 있나?
코로나19를 둘러싼 또 다른 기원설로는 “자연발생설”이 있다.
즉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어떤 과학자 혹은 실험실의 개입 없이 동물에서 인간으로 자연적으로 퍼졌다는 주장이다.
해당 가설의 지지자들은 박쥐에서 출발한 바이러스가 ‘중간 숙주’인 다른 동물을 통해 결국 인간에게 퍼졌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자연발생설에 대해 WHO 또한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간 숙주를 통해 인간에게 왔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보고서를 발표하며 힘을 실어준 바 있다.
자연발생설은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널리 받아들여졌으나, 시간이 지나도 과학자들이 박쥐나 다른 동물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유전자 구성이 일치하는 바이러스를 찾지 못하면서 의혹이 제기됐다.
한편 레이 국장의 발언 이후로도 코로나바이러스 전문가들은 실험실 유출설을 뒷받침할 새로운 과학적 증거는 없다고 강조했다.
영국 글래스고 대학의 바이러스 유전체학 및 생물정보학과장인 데이비드 로버트슨 교수는 “자연발생설은 여전히 가능성이 큰 이론”이라고 설명했다.
“(바이러스 생물학, 박쥐의 바이러스와 초기 감염 환자 발생 지역에서 유행한 변이와의 관련성 등) 확보한 증거들은 우한의 수산 시장을 중심으로 한 자연발생설을 가리키고 있다”는 설명이다.
앨리스 휴즈 홍콩대 교수 또한 이에 동의했다. 휴즈 교수는 우한의 실험실에서 유출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미 에너지부의 결론은 “새로 발견된 증거에 기초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바이러스의 기원을 둘러싼 주요 두 가설 중 그 근거가 더 약한 쪽”이라고 지적했다.
기원 규명이 중요한 이유는?
이번 팬데믹 관련 기록된 사망자만 전 세계에서 약 690만 명에 이르는 등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팬데믹 재발을 막기 위해선 바이러스가 어떻게 어디서 기원했는지 이해해야 한다는 게 대다수 과학자의 의견이다.

‘인수감염’설이 사실로 증명된다면 이는 농업 및 야생동물 관련 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례로 덴마크에선 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덴마크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우려해 밍크 수백만 마리를 살처분했다.
그러나 만약 실험실 유출설 혹은 냉동육 유통 중 전파설이 사실로 증명된다면 이는 과학 연구와 국제 무역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또한 실험실 유출설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미 팬데믹 초기 주요 정보를 은폐해 비난받은 중국에 대한 국제 사회의 시선은 또 한 번 달라질 될 것이며, 이는 미-중 관계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
실험실 유출설 조사를 추진해온 제이미 메츨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 소속 연구원은 지난 2021년 BBC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팬데믹) 초기부터 대대적인 은폐 작업에 나섰다”고 주장했다.
“팬데믹의 기원을 둘러싼 모든 가설에 대한 전면적 조사에 나서야 합니다.”
그러나 너무 섣불리 중국을 비난하지 말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이들도 있다.
싱가포르 국립대학병원의 데일 피셔 교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인내심도 필요하지만, 외교적인 태도를 지녀야 한다. 중국의 지원 없이는 (기원 규명을) 할 수 없다”면서 “그 누구도 서로 비난하지 않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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