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일(현지시간) 미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셸 여(양자경, 60세)가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아시아 배우 최초로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작품상, 각본상, 감독상도 차지했다.
여는 수상 소감을 통해 “나와 닮은 소년 소녀들에게 오늘 밤 (내 수상은) 희망과 가능성의 등불”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여성들이여, 다른 이들이 여러분들에게 전성기는 지났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세요.”
이번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의 주인공으론 원래 영화 ‘TAR 타르’의 케이트 블란쳇이 거론됐으나, 막판에 여의 수상 가능성이 유력해진 바 있다.
여는 “(나의 수상은) 꿈은 실현된다는 증거”라면서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에게 이 상을 바친다. 어머니들은 모두 슈퍼히어로이며, 이들이 없었다면 우리 중 그 누구도 오늘 밤 이곳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02년 영화 ‘몬스터 볼’에 출연한 배우 할리 베리가 유색인종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이후 유색인종 여성으로선 2번째 여우주연상 수상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세탁소를 운영하며 힘들게 미국에서 살아가던 이민자 에블린(미셸 여 분)이 멀티버스 속 다양한 자신을 탐험한다는 내용의 SF 영화다.

한편 남우주연상은 영화 ‘더 웨일’을 통해 복귀에 성공한 배우 브랜든 프레이저(54)에게 돌아갔다.
수년간 할리우드에서 잊혔으나 이번에 남우주연상의 주인공이 된 프레이저는 ‘더 웨일’의 감독 대런 애러노프스키가 “창의적인 생명줄을 던져줬다. 감사하다”고 전했다.
“영화계에 발을 들인지 30년입니다. 여기까지 오는 데 쉽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저를 인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레이저는 함께 후보로 오른 배우들에게 “여러분은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고래처럼 큰 심장을 지녔다. 여러분들과 함께 후보로 오를 수 있어 영광”이라고 말했다.
영화 ‘조지 오브 정글(1998)’과 ‘미이라(1999)’ 등에서 주연을 맡으며 90년대 말 스타로 떠오른 프레이저는 이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종종 단역에 출연하며 배우 생활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애러노프스키 감독의 ‘더 웨일’에 출연해 딸과 화해하고자 하는 과체중 교수 찰리 역을 맡아 다시 한번 주목받게 됐다.
프레이저가 외형 변화를 선보이기도 한 ‘더 웨일’은 이번에 분장상도 수상했다.
키 호이 콴의 감동적인 수상 소감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 출연한 배우 키 호이 콴(51)과 제이미 리 커티스는 각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프레이저와 마찬가지로 이번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한번 주목 받은 콴은 청중을 향해 “꿈은 여러분이 믿어야 하는 것”이라면서 “난 내 꿈을 거의 포기할 뻔했다”고 말했다.
콴은 영화 ‘구니스(1985)’, ‘인디아나 존스: 미궁의 사원(1984)’과 같은 영화에서 아역 스타로 이름을 알렸으나, 이후 오랜 공백기를 겪었다.
베트남계 중국인 난민 출신인 콴은 무대에 올라와 울먹이며 “사람들은 이러한 이야기는 영화 속에나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고 있다는 걸 믿을 수 없다. 진정한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말했다.
“저의 인생 여정은 (난민) 보트에서 시작했습니다. 이후 1년간 난민 캠프에 있다가 어떻게 이렇게 세월이 흘러 할리우드에서 가장 큰 무대에 서게 됐습니다. 절 다시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한편 배우 커티스는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45년의 연기 인생에서 처음으로 아카데미 수상자가 됐다.
커티스는 수상 소감에서 “이 무대엔 혼자 올라왔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곧 수백 명을 대표한다”면서 제작진들에게 영광을 돌렸다.
“영화 제작에 참여한 모든 예술가들이 방금 수상한 셈입니다.”
아카데미 편집상, 각본상, 감독상마저 휩쓴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콴은 에블린의 남편을 연기했으며, 커티스는 에블린을 뒤쫒는 국세청 조사관인 디어드리 보베어드라 역을 맡았다.
한편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음악상, 미술상, 촬영상뿐만 아니라 국제영화상도 수상했다.
배우 브렌던 프레이저의 복귀작인 ‘더 웨일’은 분장상을 수상했으며,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피노키오’는 장편 애니메이션상의 주인공이 됐다.
멕시코 출신의 영화감독인 델토로는 “애니메이션도 영화다. 애니메이션은 장르가 아니며,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가 됐다”는 수상소감을 밝혔다.
한편 영화 201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블랙 팬서’로 의상상을 수상한 영화 의상 디자이너 루스 E 카터는 이번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로 또 한번 의상상을 받았다.
카터는 지난주 10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게 상을 바친다고 밝혔다.

영국 작품도 좋은 소식을 알려왔다. 작가 찰리 맥커시의 동명 책을 각색해 BBC One에서 크리스마스에 방영됐던 영화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았다.
한편 장편 다큐멘터리상 수상작으론 2020년 독살 시도 등 러시아의 대표적 반체제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를 둘러싼 여러 사건을 다룬 ‘나발니’가 호명됐다.
‘나발니’의 다니엘 로허 감독은 연설에서 “나발니, 세상은 당신이 전한 중요한 메시지를 잊지 않았다”면서 수상의 영광을 나발니와 전 세계 정치범들에게 돌렸다.
나발니의 아내 율리아 나발나야는 “나발니, 당신이 자유로워지는, 우리 나라가 자유로워지는 날을 꿈꾼다. 내 사랑, 강하게 있기를”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2022년 최고 흥행작이었던 영화 ‘탑건:매버릭’은 음향효과상을, 인도 영화 ‘RRR: 라이즈 로어 리볼트’의 삽입곡인 ‘나아뚜 나아뚜’는 주제가상을 수상했다.
아카데미를 빛낸 지미 키멜의 유머

이번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영화계의 지난 12개월을 되돌아보는 지미 키멜의 독백으로 막이 올랐다.
“사람들은 할리우드가 아이디어가 부족하다고들 한다”며 운을 뗀 키멜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영화 ‘파벨만스’를 가리키듯 “스티븐 스필버그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야 했다”고 농담했다. ‘파벨만스’는 올해 작품상 후보로도 올랐다.
또한 “존은 지난달 91세가 됐는데도 여전히 폼이 좋다”며 아카데미 역사상 최고령 후보인 작곡가 존 윌리엄스에게 경의를 표했다.
할리우드의 다사다난했던 지난해를 되돌아보며 키멜은 “(전면 폐기된 영화) ‘배트걸’은 회계팀에 패배한 최초의 슈퍼히어로가 됐다”고 꼬집었다.
또한 ‘아바타: 물의 길’을 언급하며 “배우 케이트 윈슬렛을 물에 빠뜨리는 것 외에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영화에서 할 기회”였다고 농담했다. 케이트 윈슬렛은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에 출연했다.
키멜은 “다양성과 포용성 측면에서 중요한 한 해”였다며 “아일랜드 출신 배우들이 대거 지명됐다”고 농담했다. 아일랜드의 외딴 섬마을 이니셰린을 배경으로 한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에 출연한 콜린 패렐, 케리 콘던 등이 수상 후보에 올랐다.
“오늘 밤 아일랜드 출신 배우 5명이 후보에 올랐습니다. 이는 아카데미 무대에서 또 다른 싸움이 벌어질 가능성이 훨씬 커졌다는 거죠.”

키멜은 작년 아카데미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윌 스미스의 크리스 록 폭행 사건을 언급하며 “여러분들도 폭력적인 행동을 하면 남우주연상을 받고, 19분간 연설도 할 수 있다”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인 키멜은 2018년에 이어 이번에 아카데미 MC로 3번째 발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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