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최고 인기 스포츠 프로그램 진행자 게리 리네커(62)와 BBC 간 대화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리네커의 출연 정지로 BBC의 각종 스포츠 프로그램이 방영 차질을 겪은 지 2일 만의 일이다.
리네커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하이라이트 중계 프로그램인 ‘매치 오브 더 데이’의 진행자로, 최근 트위터를 통해 영국 정부의 난민 정책을 비판하면서 출연 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러한 방송 차질에 대해 팀 데이비 BBC 사장은 수신료를 내는 시청자들에게 사과했다.
리네커와 연대하고자 BBC 내 다른 스포츠 프로그램 진행자 및 전문가들 또한 방송 출연 거부를 선언하기도 하는 등 리네커와 BBC 간의 대치가 계속되면서 지난 12일(현지시간) 내내 BBC의 각종 TV와 라디오 방송은 파행으로 치달았다.
앞서 11일에도 BBC 스포츠 방송 역사상 전례 없는 혼란이 빚어졌다. BBC 소속 다른 유명 방송인들 일부가 출연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BBC Two에서 일요일 오후마다 방영하는 ‘FA 여자 슈퍼리그’ 프로그램은 스튜디오 내 전문가의 분석 없이 월드 피드 해설에만 의존해 방영됐으며, BBC 라디오5 채널의 생방송 또한 이틀 연속 사전 녹화 프로그램으로 공백을 메꿨다.
‘매치 오브 더 데이’와 마찬가지로 토요일에 방영되는 ‘매치 오브 더 데이2’ 또한 기존 보다 크게 단축돼 15분 정도 방영됐으며, 진행자 마크 채프먼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매치 오브 더 데이2’에선 방송 시작 전 전문가 해설 없이 방영하는 점에 대한 사과한 이후 일반적으로 함께 삽입되는 테마 음악이나 크레딧 없이 ‘프리미어 리그 하이라이트’라는 자막만으로 이뤄진 오프닝이 시작됐다.
‘매치 오브 더 데이’ 또한 전문가의 해석 및 오프닝 테마 없이 20분간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됐으나, 시청자 수는 거의 50만 명 증가해 258만 명을 기록했다.
한편 라디오의 프리미어리그 경기 송출은 정상적으로 진행됐으나, 해당 프로그램 해설자인 앨리스테어 브루스-볼은 청취자들에게 “(방송 출연은)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풀럼FC 대 아스날FC의 경기를 앞두고 브루스-볼은 “개인적으로 매우 어려웠던 결정”이였다면서 “이번 사안을 결코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BBC의 직원이고, BBC 라디오 방송국의 해설자이며, 어제와 마찬가지로 여러분, 즉 시청자들에게 축구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이곳에 섰다”고 말했다.
폴 암스트롱 ‘매치 오브 더 데이’의 전 편집장은 스포츠 프로그램 관련자들에게 불편부당성(impartiality) 규칙이 어떻게 적용돼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나 …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해설가, 진행자 등의 이번 집단행동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면서 “왜 BBC 경영진은 이들이 한 팀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 팀의 주장(리네커)을 공격하면 다른 팀원들은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리시 수낙 영국 총리는 BBC와 리네커 간의 문제는 BBC가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미 샌디에이고에서의 미-영 정상 회담을 위해 비행기에 오른 수낙 총리는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데이비 사장을 신뢰하냐는 질문에 직접적인 대답을 피하는 한편, 리네커와 만날 가능성이 있냐는 질문엔 “이는 한 사람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고 답했다.
한편 BBC는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한 막후 노력에 대해선 추가로 언급하지 않았다.
리네커가 영국 정부의 이민자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출연 정지 처분을 받으면서, 이번 상황은 BBC의 불편부당성, 정부의 이민자 정책, 리처드 샤프 BBC 회장의 상황 등에 대한 논란으로 커지는 모습이다.
2004~2012년 BBC 사장이었던 마크 톰슨은 “BBC가 21세기로 접어들었다”고 언급하며 비(非) 뉴스 프로그램의 출연진에 대해 불편부당성 규칙을 적용하기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톰슨 전 사장은 로라 쿤스버그 전 BBC News 정치부 편집장이 일요일마다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BBC의 최신 불편부당성 규정을 언급하며, 모든 이들에게 우선 진정할 것을 촉구하는 한편 스포츠 프로그램 진행자와 관련해선 해당 규칙 적용에 “애매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리네커가 올린 정부 비판 트윗은 아마도 그 선을 넘은 게 아니냐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면서도 리네커가 곧 방송에 복귀하길 희망한다는 톰슨 전 사장은 데이비 사장 또한 이번 논란에서 살아남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톰슨 전 사장은 이번 사태는 “불행한 사고”라면서 “선의라는 걸 믿을 정도로” 리네커를 잘 안다며, BBC에 “서류(복잡한 규정)는 무시하라”고 촉구했다.

같은 방송에서 피터 새먼 BBC News 스포츠부 편집장은 BBC의 불편부당성 가이드라인이 “불투명하다”면서 경영진에 “이 점을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앞서 리네커의 트윗에 “매우”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한 제러미 헌트 재무부 장관은 “무엇보다도 독립성과 불편부당에 관한 BBC의 평판 유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헌트 장관은 리네커가 ‘매치 오브 더 데이’의 진행자로 계속 활동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는 말을 아꼈다.
한편 데이비 사장은 11일 BBC News에 출연해 “힘든 하루”였다며 비(非) 뉴스 프로그램 직원들에 대한 불편부당성 규정 개혁과 관련해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리네커에 대해 데이비 사장은 “세계 최고의 스포츠 방송인”이라며 리네커가 다시 방송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하는 등 리네커의 복귀 가능성을 열어뒀다.
한편 같은 날(11일) 수낙 총리는 이번 일은 BBC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으나, 리네커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몇몇 내각 인사도 있었다.
이번 주 수엘라 브라버먼 내무장관과 루시 프레이저 문화부 장관은 나치 독일과 영국 정부를 비교한 리네커의 발언은 적절치 않다며 비난했다.
한편 레이첼 리브스 영국 그림자(제1야당) 내각 재무장관은 BBC가 “보수당으로부터 리네커의 방송 출연을 중단하라는 엄청난 압박을 받은 게 분명하다”고 비난했다.
리브스 의원은 리네커의 상황이 샤프 회장과 대조된다고 지적했다. 샤프 회장은 임명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동안 자리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샤프 회장에 대한 폭로가 제기됐을 땐 보수당 의원들은 (현 리네커 상황에서처럼) 불편부당성을 울부짖지 않았습니다.”
현재 영국 당국은 샤프 회장이 보리스 존슨 당시 영국 총리의 80만파운드(약 12억2000만원) 규모의 대출 보증을 도운 것과 관련한 세부 사항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는지 조사 중이다.
샤프 회장은 존슨 전 총리의 대출에 그 어떠한 관여도 하지 않았다며 부인했다.
BBC 또한 자체 조사를 통해 샤프 회장이 BBC 회장으로서 현재 소임을 수행할 수 있을지 잠재적인 이해 충돌 지점 등을 점검 중이다.
샤프 회장은 사임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 샤프 회장은 존슨 전 영국 총리와의 유착 관계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길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미 잘못한 바가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
한편 리네커의 BBC 복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12일 아침 자택 밖에 몰린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리네커는 BBC로 복귀할지, 경쟁 방송사로부터 연락받았는지에 대한 질문에 “현재로선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고만 답했다.
그러나 리네커의 아들인 조지는 ‘선데이 미러’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매치 오브 더 데이’로 복귀하리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후 조지는 트위터를 통해 “아빠는 좋은 남자이자 인간이다. 자신이 한 말은 지키는 아빠가 자랑스럽다. 그리고 이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기에 아빠는 이번 프로그램에서 밀려났다. 그러나 아빠는 언제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일 것”이라고 적었다.
한편 이 논쟁은 리네커 해설자가 영불해협을 건너오는 불법 이민자들을 막겠다는 영국 정부의 소위 ‘보트 중단 법안’에 대해 “30년대 (나치) 독일의 언어와 그리 다르지 않은 언어로, 최고 취약 계층을 향한 무척 잔인한 정책”이라고 비난하면서 불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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