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의 장옌융

Getty Images
2003년 중국 당국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실태 은폐 사실을 폭로했던 의사 장옌융

지난 2003년 중국 당국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실태 은폐 사실을 폭로했던 전직 군의관 장옌융이 91세 나이로 11일(현지시간) 별세했다.

친지들의 말을 인용한 홍콩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장옌융은 베이징에서 폐렴으로 숨졌다.

장옌융은 SARS 사태 초기 당국이 위험성을 경시하고 있다는 폭로 서한을 쓰며 많은 생명을 구했다는 찬사를 들은 인물이다.

그러나 꾸준히 당국을 향한 거침없는 발언을 이어간 탓에 이후 가택연금을 당하기도 했다.

당시 베이징에서 주임 의사로 근무하던 장옌융은 2003년 4월 치명적인 신종 호흡기 질환 감염 사례는 소수에 불과하다는 중국 보건 당국의 발표에 충격받게 됐다.

이에 군병원에서만 최소 100여 명이 SARS로 치료받고 있다며 실태를 알리고자 애썼다.

그는 다수의 중국 국영 방송사에 당국의 설명은 거짓이라는 서한을 보냈으나, 번번이 무시당했다.

그러다 서한이 외국 언론에 흘러 들어가면서, 그의 폭로가 세상에 전부 공개됐다.

장옌융의 폭로로 중국 당국은 전염병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알렸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으며, 세계보건기구(WHO)도 행동에 나서게 됐다.

그 결과 하룻밤 사이 봉쇄 조치가 내려지는 등 바이러스의 추가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

또한 그의 폭로로 당시 중국 보건 장관과 베이징 시장이 해임되기도 했다.

장옌융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단지 중국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 세계를 구하고자 실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밝혀야 한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한편 이러한 폭로로 국가적 명성을 얻은 장옌융은 그 이듬해 또 한 번 당국에 도전하게 된다.

그는 중국 공산당 수뇌부에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 탄압이 잘못됐으며, 민간인 수백 명 혹은 수천 명이 살해당했다는 점을 인정하라는 서한을 보냈다.

그는 탱크들이 톈안먼 광장으로 밀려들고 군인들이 군중을 향해 발포하던 그날 밤 자신은 베이징 내 주요 군병원의 외과 주임 의사로 근무 중이었다고 밝혔다.

서한에서 장옌융은 피비린내 나는 그날 밤에 대한 세부 사항을 언급하며 톈안먼 시위의 재평가를 요구했다.

그러나 해당 서한이 공개된 지 얼마 안 돼 체포됐으며, 아내 화중웨이와 함께 구금됐다.

그러나 장옌융은 이후 수년간 물러서지 않았다. 2019년엔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서한을 보내 또 한 번 톈안문 시위 진압을 규탄했는데, 그후 사실상 가택 연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1931년 10월 4일 항저우시에서 부유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난 장옌융은 친지가 결핵으로 사망하자 의사의 길을 택했다.

2004년 ‘막사이사이’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등 평생 진실을 추구한 공적을 인정받아 여러 차례 수상하기도 했다.

막사이사이상 측은 “장옌융은 침묵하는 중국의 오랜 관습을 깨고 SARS 사태의 진실을 공개하도록 이끌었다”고 밝혔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
0
+1
0
+1
0
+1
0
+1
0

랭킹 뉴스

실시간 급상승 뉴스 베스트 클릭

금주 BEST 인기글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