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일 정상이 16일 도쿄의 일본 총리 관저에서 만났다. 한국 대통령의 일본 방문은 4년 만이지만 한일 단독 정상회담을 한국 정상이 일본을 찾은 것은 12년 만이다. 지난 2018년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이후 악화됐던 양국 관계가 풀릴 ‘획기적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다만 이날 한일 정상간의 공동선언문이나 합의문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한국 윤석열 대통령과 일본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이날 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어나가기 위해 양국간 정체, 경제, 문화적 교류를 적극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공동선언문 없이 만난 이유는
이날 정상회담 후 공동선언문이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 전문가들의 견해에는 온도 차가 있었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박철희 교수는 “정상회담에서 논의되는 내용을 공식적인 안으로 만들기까지 시간이 다소 짧았던 것 같다”며, “이번 정상회담은 향후 한일 간의 교류와 협력이라는 연쇄적인 프로세스의 일환으로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긍정적인 모멘텀을 마련했다고 보는 것이 맞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한국 대통령실 관계자도 공동선언문이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 “10여 년 동안 한일관계가 계속 경색되고 불편한 관계를 이어왔고, 특히 2018년 이후 그러한 불편한 관계가 더욱 증폭되고 여러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며 불신이 가중됐다”며 “그 이후 양국 정상이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그간 입장을 총정리하고 정제된 문구를 다듬기엔 시간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서울대 일본연구소 남기정 교수는 “공동선언문에 들어갈 내용들에 대해 양국이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 정부가 역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사과 입장을 담고자 했으나 일본 측에서 거부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특히 한일관계 악화의 원인이 된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일본 언론이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며 “이는 강제징용 문제를 한일 정상회담의 정식 의제로도 인정하지 않는 일본 내 분위기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셔틀외교’ 복원한다지만 ‘빈손외교’ 비판도
이번 한일 정상회담의 의제는 크게는 ‘양국관계 정상화’다. 구체적으로는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해제, ▲한일군사정보 보호협정 ‘지소미아'(GSOMIA) 정상화, ▲북한의 군사 위협 지속에 따른 안보 협력 강화, ▲한국정부의 강제동원 제3자 변제안에 대한 후속조치 등이 논의됐다.
이날 양국 정상회담에 앞서 산업통상자원부는 일본의 대한국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수출규제가 3년여 만에 해제된다고 발표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제9차 한일 수출관리 정책대화’ 결과 일본 측은 불화수소·불화폴리이미드·포토레지스트 3종과 관련한 수출규제 조치를 해제하기로 했으며, 한국 정부도 이와 동시에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한 WTO(세계무역기구) 제소를 취하하기로 했다.
양국 정상은 소인수회담에 이어 개최된 확대회담 모두발언에서 이날 오전 있었던 북한의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를 언급하며 한일간 안보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앞으로 양국을 자주 오가며 소통하는 ‘셔틀 외교’를 복원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다만 강제동원 피해배상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대화는 언급되지 않았다.
박 교수는 “과거 거의 십여년 간 짧게는 5년간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여러 문제로 얽혀 고착돼 있었다”며,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그 얽힌 실타래를 푸는 모멘텀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가장 핵심이 됐던 강제징용 문제 해법에 대해서는 한국이 강한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기 때문에 일본과는 그 문제에 함께 얽혀 있던 수출 규제 문제나 지소미아 문제 등 문제가 되고 있는 고리들을 풀어내는 계기를 마련했다라고 하는 것이 (이번 회담의) 큰 의미”라고 설명했다.
반면 남 교수는 “강제징용 문제가 정상회담 주요 의제로 다뤄지지 않는 등 한국이 많은 양보를 했음에도 그에 대해 일본측으로부터 반대급부를 얻은 것이 없다”며 “한국 입장에서는 얻은 것이 없는 회담”이라고 평가했다.
‘향후 일본의 호응이 중요’
전문가들은 최근 한국 정부가 내놓은 강제징용 ‘제3자 변제안’에 일본이 어떻게 화답할 것인가가 이번 정상회담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봤다.
박 교수는 “한국 정부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고 본다”며 “일본이 이에 대해 어떤 상응 조치를 할 것이냐는 일본의 의지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이 국내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강제징용 문제 해결안을 추진했듯 일본 정부도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와 책임감을 갖고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남 교수는 “일본 정권이 역사부정주의 세력들에 둘러쌓여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며 “일본 정권이 내부적으로 지지기반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사도광산 강제 노동 문제나 위안부 문제 등 역사 문제들에 대해 한국이 문제 삼고 있는 내용들을 자신들이 다 풀어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양국 재계는 이번 정상회담을 환영했다. 이날 오후 한국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는 도쿄 경단련회관에서 ‘한일 미래 파트너십 선언’을 발표하며 ‘한일·일한 미래파트너십 기금’을 창설하기로 합의했다. 다만 일제 강제징용 배상 소송 피고 일본 기업인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은 기금 참여 여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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