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만의 한일 정상회담이 종료됐다.
17일 윤석열 한국 대통령은 전날 한일 정상회담 이후 남은 일정을 마무리하고 귀국한다.
향후 양국 관계는 어떻게 형성될까? 윤석열 대통령의 말처럼 ‘새 시대’가 열릴 수 있을까?
새로운 한·일 관계
한국 정부는 이번 회담이 경색된 한일 관계를 풀어낼 첫 단추로 보고 있다.
지난 16일 윤 대통령은 일본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마친 뒤 한일 공동기자회견에서 “이번 회담은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정신을 발전적으로 계승하여 양국 간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한일 간 협력의 새 시대를 여는 첫걸음이 됐다”고 자평했다.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는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선언했다. 이후 일본 대중문화가 본격적으로 개방되는 등 한일 관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당시 선언문에는 오부치 총리가 일본이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이번 회담 이후에는 공동선언문이나 합의문 등이 나오지 않았다.
한국, 내준 만큼 받을 수 있을까?
이번 정상회담에서 당장 일본이 한국보다 얻은 게 많다는 데 이견이 많진 않다.
한일 정상회담 개최와 한일 관계 정상화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시각이 많다. 미·중 관계가 첨예해지고 북한의 도발 수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한일 간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12년 만의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또 셔틀외교가 재개되면서 앞으로 한일 간 협력 저변이 더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외에도 지소미아(GSOMIA·군사정보보호협정) 정상화와 한국 반도체 3개 부품(불화수소, 불화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수출 규제 해제 등의 구체적 성과도 있었다.
문제는 과거사다. 한국은 일본의 식민 지배 시절 강제 징용 문제에 대해 피해자 입장에서 크게 양보했다. 이번에 일본은 이에 상응하는 결단을 내놨다고 보기 어렵다. 기시다 총리가 “역대 일본 내각의 역사인식을 계승한다”는 언급을 했을 뿐, 구체적인 사죄나 반성은 없었다.
최 연구원은 “강제징용 문제 해법과 관련해 부족한 부분이 보완돼야 하는데 얘기가 거의 나오지 않아서 굉장히 유감으로 생각한다”며 “특히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위로의 말 정도는 충분히 전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본이 향후 좀 더 전향적인 태도와 자세를 취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앞서 6일 한국 외교부는 ‘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하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 배상안을 발표했다. 일본이 아닌 한국 정부 산하 재단이 돈을 마련해 2018년 대법원으로부터 배상 확정 판결을 받은 강제동원 피해자 총 15명에게 배상금을 지급한다는 결정이다.
대신 양국 대표 경제 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게이단렌(경단련)이 ‘한일·일한 미래 파트너십 기금'(미래기금)을 조성하는 우회적인 방식을 택한다. 아직 피고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의 참여 여부는 결정된 바 없다.
이에 피해자들은 제3자 변제안을 거부하고 법적 소송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여론의 평가는?
한일 정상회담을 둘러싼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한일 전문가들은 상황 반전을 위해서는 향후 일본이 무엇을 내놓을지, 그리고 한국이 무엇을 얻을지가 관건이라고 봤다.
한국갤럽이 지난 8, 9일 실시한 징용 배상 해법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59%가 ‘일본의 사과와 배상이 없어 반대한다’고 했다.
최 연구원은 “여론이 가장 기대하고 있는 부분은 일본 피고기업의 참여와 사죄일 것이고, 여론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해당 기업들이 반드시 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며 “(제3자 변제안은) 법적인 문제 해결에 물꼬를 터줬을 뿐이지, 어떤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피고기업이 배상금을 지급하는 정부 산하 재단의 기금 조성에 참여하긴 어렵더라도, 미래 파트너십 기금 마련에라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배 소장은 “제3자 변제에 격앙된 국민 여론이 단번에 바뀌기는 힘들 것”이라며 “새로운 한일 관계 정립에 대한 (여론의) 평가는 오는 8월까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다음 달 미국 국빈 방문과 5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기시다 총리 방한 등에서 어떤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느냐에 따라 여론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최 연구원도 “조금 멀리 보면 외교적 측면에서 전략적으로 나쁘지 않다”며 “한국은 할 수 있는 걸 다 한 상황에서, 일본은 반대 여론이 훨씬 높은 한국에 오면서 빈손으로 올 수 없기 때문에 더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다만 배 소장은 윤 대통령 지지율이 단기간에 회복되긴 어렵겠지만, 한일 정상회담으로 인한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봤다. 현재 30%대인 지지율이 20%대까진 내려가기 힘들다는 것이다.
배 소장은 “최근 국내 여론이 진영 간 대결 구도로 치달으면서 보수층이 결집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일본을 가장 적대시하는 70대 이상 연령층조차 제3자 변제 방안에 대해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전날 서울에서는 여러 시민단체와 대학생 단체들이 한일 정상회담과 정부 배상안에 반대하는 집회를 벌였다. 오는 주말에도 서울 시청광장에서 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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