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형사재판소(ICC)가 17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ICC는 푸틴이 전쟁 범죄에 책임이 있으며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불법 이주시켰다는 점에 주목했다.
ICC는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했을 때 이러한 범죄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정부는 혐의를 부인하고 영장 발부 사실에 대해 “터무니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ICC가 직접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많지 않다. ICC는 용의자를 체포할 권한이 없고 회원국 사이에서만 사법권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ICC 회원국이 아니다.
하지만 ICC가 체포영장을 발부함으로써 푸틴 대통령이 해외 활동이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ICC는 성명을 통해 푸틴이 직간접적으로 범죄 행위를 저질렀다고 믿을만한 합리적 근거가 있다고 밝혔다. 또 그가 대통령 권한을 활용해 아이들의 강제이주를 막는 데 힘쓰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ICC의 결정에 대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ICC 회원국은 아니지만 “(재판소가) 매우 강력한 요지를 전달했다”며 푸틴이 “전쟁 범죄를 저질렀음은 명백하다”고 했다.
재판소는 마리야 리보바-벨로바 러시아 대통령실 아동인권 담당 위원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과거 리보바-벨로바는 러시아로 이주시킨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에게 주입 교육을 행하는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언한 바 있다.
지난 9월 리보바-벨로바는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출신 어린이들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 험담하고 끔찍한 말을 하며, 우크라이나 국가를 부른다”고 불평했다.
또 그는 마리우폴 출신 15세 소년을 입양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ICC는 처음에 체포영장 발부 사실을 비공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더 이상의 범죄를 막기 위해 이를 공개하기로 했다.
ICC 카림 칸 검사는 BBC에 “어린이가 전리품으로 취급돼서는 안 되며, 강제로 이주돼서도 안 된다”고 밝혔다.
“이러한 종류의 범죄가 얼마나 지독한 지는 변호사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모두 알 수 있습니다.”
영장 발부 사실이 공개된 후 몇 분 만에 곳곳에서 다양한 반응이 쏟아졌다. 러시아 정부는 이를 즉시 일축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실 대변인은 재판소의 결정이 “무가치하고 무효하다”고 했으며,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러시아 대통령은 영장을 화장지에 비유했다.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화장지를 ‘어디에서’ 사용해야 하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는 내용의 글과 함께 화장지 이모티콘을 게시했다.
반대로 러시아 야당 지도자들은 ICC 결정을 환영했다. 현재 수감 중인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측근인 이반 즈다노프는 트위터에 “(재판소의 결정은) 상징적 조치”이지만 중요하다고 썼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국가 악”을 고발키로 한 칸 검사와 재판소에 감사하다고 밝혔다.
안드리 코스틴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은 “우크라이나에 역사적인 일”이라고 말했고,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안드리 예르마크 비서실장은 이번 결정이 “시작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러시아가 ICC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푸틴 대통령이나 리보바-벨로바 위원이 법정에 설 가능성은 매우 낮다.
영국 런던 킹스칼리지에서 국제정치를 강의하는 조너선 리더 메이너드는 BBC에 ICC가 용의자를 체포할 때 각국 정부 협력에 의존한다며 “러시아가 협력하지 않을 것이란 건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칸 검사는 과거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코소보에서의 전쟁 범죄로 재판받은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세르비아 대통령이 헤이그의 감옥에서 생을 마감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낮에 범죄를 저지르고 밤에 발 뻗고 잘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역사를 참고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이 법적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건 아니다.
그는 주요 20개국(G20) 국가 수장이자 오는 20일 러시아를 국빈 방문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날 예정이지만, 동시에 지명 수배자라는 신분을 갖게 됐다. 앞으로 그가 여행할 수 있는 국가가 제한된다는 뜻이다.
또 전쟁범죄 혐의를 꾸준하게 부인해온 러시아 정부로서는 ICC와 같은 영향력 있는 범국가적 기구가 자신들의 주장을 믿지 않았다는 점에서 당혹스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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