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당국이 일간지 ‘노바야 가제타’를 폐쇄할지라도 그곳의 편집장인 드미트리 무라토프는 여전히 침묵 당하길 거부한다.
BBC는 수도 모스크바에서 202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한 무라토프 편집장을 만났다.
무라토프 편집장은 러시아 당국이 서방과의 대결에서 과연 어디까지 나아갈지 걱정했다.
“지난 2세대가 핵전쟁의 위협 없이 살아왔다”는 무라토프 편집장은 “그러나 이제 (평화의) 시대는 끝이 났다. 푸틴은 핵 버튼을 누를 것인가, 누르지 않을 것인가? 누가 알겠는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를 본격적으로 침공한 이후 핵전쟁을 들먹이는 러시아의 위협은 점점 잦아지고 커지고 있다.
러시아 고위 관료들은 우크라이나를 돕는 서방 세계가 러시아를 지나치게 몰아붙여선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며칠 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웃국 벨라루스에 전술 핵무기를 배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후 푸틴의 가장 가까운 인사 중 하나로 알려진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가 러시아는 “미국을 포함한 모든 적을 파괴할 수 있는 독특한 현대 무기”를 지니고 있다며 경고했다.
이는 그저 큰소리에 불과한 허세에 불과할까? 아니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위협일까.
이에 무라토프 편집장은 러시아 내부에서 우려되는 징후가 포착됐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당국은 선전을 통해 국민들이 핵전쟁이 그리 나쁜 게 아니라고 생각하게끔 준비하고 있다”는 무라토프 편집장은 “러시아 TV 채널에선 핵전쟁과 핵무기가 마치 평범한 애완동물 사료처럼 (멀쩡히) 광고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당국은 ‘우리는 이런 미사일도, 저런 미사일도, 여러 종류의 미사일을 가지고 있습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영국과 프랑스를 겨냥한다고, 미국을 쓸어버릴 핵 쓰나미에 관해서 얘기합니다. 왜 이런 얘기를 해댈까요? 바로 국민들이 (핵전쟁에 심적으로) 준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한편 최근 러시아 어느 국영 TV의 저명한 토크쇼 진행자는 러시아가 “프랑스, 폴란드, 영국 영토 내 군사 목표물을 [러시아]의 합법적인 목표물로 지정해야 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전략핵으로 섬을 날려버리고, 전술핵을 시험 혹은 실제 발사해 아무도 오해하거나 뭐라 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러시아 당국은 러시아야말로 평화의 나라이며, 우크라이나와 서방 세계가 침략자라고 선전한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러시아 국민이 이를 믿는다.
이에 대해 무라토프 편집장은 “러시아 국민들은 당국의 선전에 피폭됐다”고 비유했다.
“선전은 일종의 방사능과 같습니다. 러시아 국민뿐만 아니라 모두가 이에 쉽게 영향받습니다.”
“러시아에선 TV 채널 12곳과 각종 신문, VK[러시아판 페이스북]와 같은 SNS 등에서 완전히 국가 이념을 따르는 선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편 BBC는 “그런데 갑자기 하루아침에 국가의 선전이 중단되면 어떡하냐. 갑자기 이런 선전이 중단되면 러시아 국민들은 어떻게 반응하겠냐”고 물었다.
이에 무라토프 편집장은 “우리 청년 세대는 훌륭하다”면서 “교육 수준도 높다. 약 100만 명에 가까운 러시아인이 조국을 떠났다. 남아있는 이들 중에도 다수가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절대적으로 반대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만든 지옥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저는 당국의 선전이 멈추면 그 즉시 청년 세대와 상식을 지닌 모든 러시아 국민들이 목소리를 내리라 확신합니다.”
또한 무라토프 편집장은 “이미 이들은 그렇게 목소리를 내고 있다”면서 “반전 시위에 참여한 러시아 국민들에 대한 행정 및 형사 사건이 2만1000건에 이른다. 반대파는 감옥에 간다. 각종 언론 매체가 폐쇄됐다. 많은 시민운동가, 민간인, 언론인이 외국의 스파이로 낙인찍혔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푸틴은 지지 기반이 있냐고요? 네, 엄청난 지지 기반이 있습니다. 그러나 푸틴을 마치 자기 친손자처럼 보는 노년층이 대부분입니다. 푸틴이야말로 자신을 보호해주고, 매달 꼬박꼬박 연금을 가져다주고, 매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인사해줄 사람이라 믿는 이들이죠.”
“이 사람들은 자신의 진짜 손자는 (싸움터에) 나가 싸우고 죽어야 한다고 믿는 셈입니다.”
무라토프 편집장은 우크라이나 어린이 난민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고자 2021년 수상한 노벨 평화상을 경매에 부치기도 했다.
한편 무라토프 편집장은 미래에 대해 그리 낙관적이지 못한 듯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다시는 정상적인 관계를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절대로요. 우크라이나는 이번 비극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무라토프 편집장은 “러시아에선 반대파에 대한 정치적 탄압이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제게 유일한 희망은 (러시아의) 청년 세대입니다. 전 세계를 적이 아닌 친구로 보는 이들이죠. 러시아가 국제사회에서 사랑받기를, 그리고 러시아가 국제사회를 사랑하길 바라는 이들입니다.”
“바라건대 이 청년 세대가 저와 푸틴보다 오래 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