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주식인 쌀 소비가 크게 줄면서 쌀값이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있다. 시장 논리에 따르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의견과, 식량안보를 위해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맞부딪치고 있다.

여야는 쌀 초과 생산 시 정부가 의무적으로 사들이도록 하는 양곡관리법(이하 양곡법)을 두고 대치 중이다.

4일 윤석열 대통령은 양곡법 개정안에 대해 취임 후 처음으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에 따라 양곡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재표결을 거친다. 재의결 요건은 재적의원(299명)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지만,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 수는 115명으로 3분의 1이 넘기 때문에 개정안은 폐기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양곡관리법이란?

양곡법 개정안이란 국내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이거나 쌀값이 전년보다 5~8% 하락할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모두 사들인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지난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기존 양곡법에 따르면 정부는 최저가로 입찰된 쌀을 자율적으로 구매할 수 있었지만, 양곡법 개정 후에는 시장 가격에 의무적으로 매입해야 한다.

양곡법 개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은 농민 생존권과 식량 안보를 위해 법 개정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021년 기준 한국 식량자급률은 44.4%, 곡물자급률은 20.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해외 의존도가 높다.

그나마 자급 곡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게 쌀인데, 쌀 생산량마저 줄어든다면 식량안보 위기가 발생했을 때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정부는 양곡법 개정안을 두고 “남는 쌀 강제매수법”이라며 반발했다. 국가 재정 부담이 커지고 쌀 생산 과잉을 초래해 결국 농업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지난해 12월 발표한 ‘양곡관리법 개정안 효과 분석’ 보고서에서 양곡법이 개정될 경우 정부가 개정 전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양의 쌀을 사들여야 할 것으로 봤다. 이에 따라 오는 2030년까지 연평균 1조303억원이 투입될 것으로 예측했다.

왜 쌀이 넘쳐나나?

수요에 비해 여전히 공급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간 사람들의 식습관이 변화하면서 쌀 소비량이 빠르게 줄었지만, 이에 비해 생산량은 많이 줄지 않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연평균 쌀 소비량은 56.7kg로 또다시 역대 최저치를 경신했다. 1992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감소한 것이다.

그런데도 농촌 인구가 고령화하면서 기계화가 쉬운 벼농사를 택하는 농가가 많은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지난 몇 년간 한국인의 식습관이 빠르게 서구화하고 다양화했다고 설명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서 오랜 연구 활동을 한 김초일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객원교수는 한국은 경제 발전 속도만큼이나 식습관도 급속도로 변화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아침밥을 거르거나 빵이나 면 등으로 간편하게 때우기 시작하면서 쌀 소비 감소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전반적으로 요리하는데 할애하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가공식품 판매도 크게 늘었다.

윤지현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또 최근에는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탄수화물이 병이나 체중 증가의 근원이라는 생각이 퍼지면서 탄수화물에 대한 거부감이 쌀에 대한 거부감으로도 이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이에 정부는 쌀을 밥 이외의 용도로 활용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최근에는 물에 불리지 않고 밀처럼 바로 쌓아 가루로 만들 수 있는 가루쌀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밀가루 대신 가루쌀로 가공식품 등을 만들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서다.

하지만 김 교수는 쌀 소비 감소는 개인의 취향과 선택지가 늘어나면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봤다.

김 교수는 “지금은 정부가 쌀 소비 진작이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내세우고 있지만, 60년대에는 쌀 생산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반대로 혼식, 분식을 장려했다”며 “쌀이 우리 농업에서 갖는 상징성은 있지만, 지나치게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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