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이 지난 5일(현지시간)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의 회동에 반발해 군사 훈련을 시작했다.
차이 총통은 미 뉴욕에서 지도자상을 받은 지 1주일 뒤인 지난 5일 캘리포니아주에서 매카시 하원의장과 만났다.
차이 총통은 대만과 미국의 “강력하고 독특한 파트너십”을 강조했으며, 매카시 의장은 미국의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가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반발한 중국 정부는 “단호한 대응”을 약속하며 대만섬 주변 해역에 군함을 띄웠다.
현재 대만은 위험한 삼각관계의 한가운데에 있는 모습이다.
차이 총통의 이번 미국 방문 타이밍은 절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현재 미국에선 중국을 향한 적대심이 점점 커지는 가운데 민주당과 공화당이 앞다퉈 대만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중국의 격앙된 반응에도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이 지난해 여름 대만 방문을 고집한 주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중국은 자국 영토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자체적인 정부가 있는 대만은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의 가장 예민한 인화점임이 틀림없다.
주대만 미 대사관 격 외교 공관인 ‘미국 재대만협회’ 사무소장 출신인 윌리엄 스탠튼 교수는 “나는 개인적으로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매우 반대했다”고 설명했다.
“미 고위 정치인의 대만 방문은 별로 돌아올 이득도 없이 중국을 건드리는 행위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후 (중국의 보복 등) 그 결과는 꽤나 심각했습니다.”
실제로 중국은 펠로시 의장의 방문에 항의하며 여러 위협을 늘어놓았으며, 중국발 미사일이 대만섬 상공을 지나가기도 했다. 그리고 중국의 대만 침공 시기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올해 1월 하원의원으로 선출된 공화당 출신 매카시 의장은 펠로시 전 의장의 선례를 따르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차이 총통은 긍정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다는 게 스탠튼 교수의 설명이다.
스탠튼 교수는 “매카시 의장은 펠로시 전 의장을 끌어들이고 싶었던 것 같다”면서 “그러나 차이 총통은 ‘아니, 괜찮다. (대신) 캘리포니아에서 차 한잔하는 건 어떠냐’는 반응을 내놨다”고 언급했다.
즉 차이 총통은 또 한 번 미국 고위급 관계자가 대만을 방문하긴 원치 않을 수 있으나, 중국이라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만 정부와 미국이라는 가장 강력한 동맹국 간 접촉을 막을 순 없다는 걸 중국에 보여줄 필요성은 느꼈을 수 있다.
그래서 미 캘리포니아로 날아가 만나는 길을 택했다. 중국은 미국이 “대만 문제에 관해 불장난을 하고 있다”고 경고했으나, 매카시 의장 또한 이번 차이 총통과의 만남을 “초당적”이라고 묘사하며 그 중요성을 축소하려 들지 않았다.
이후 미 백악관은 중국이 이번 회담에 “과잉 대응”할 필요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한편 호주국립대의 정치학자 웬티 성 교수는 이러한 소위 ‘경유 외교’가 대만에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수년간 중국은 대만의 여러 수교국에 가로채는 데 성공했고, 그 결과 대만 수교국 규모는 13개국으로 줄어든 상태다.
“(이번 차이 총통의) 해외 순방은 국제 사회의 인정을 바라는 대만 여론의 요구와 일치한다”는 성 교수는 “국제적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국제 사회의 지지를 보여주는 다른 (간접적인) 방식과 지표는 대만 사회에서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중국은 마잉주 전 대만 총통을 본토로 초청하는 등 독자적인 매력 공세를 펼치고 있다.
마 전 총통은 중국 본토 내 5개 도시를 순방하는 전례 없는 행보를 보였다.
표면상의 이유는 조상 묘 참배였는데, 실제로 마 전 총통 일가가 중국 중부 지역에 있는 조상 묘를 방문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순방에서 정치적 의도를 빼놓을 순 없다. 전현직 대만 총통으로 중국 본토를 방문한 건 1949년 국부천대 이후 처음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성 교수는 “중국은 대만에 대한 태도를 좀 더 부드럽게 하고자 노력 중…”이라면서 “대만 시민들의 마음을 얻고, 오는 [2024년] 대만 총통 선거에서 대만 민족주의가 급증하는 걸 막기 위해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마 전 총통의 이번 본토 방문이 중국의 이러한 목적 달성을 위한 “정치적 위장”이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주 난징에 도착한 마 전 총통은 “대만 해협 양쪽의 사람들은 (모두) 중국인이다. 모두 삼황오제의 후손”이라며 다분히 정치적인 연설을 했다.
이에 대해 스탠튼 교수는 “중국 당국은 마 전 총통이 (대만의) 항복을 대표하기에 그에게 잘해주고 있다”면서 “마 전 총통은 ‘우리 모두 중국인’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중국 당국은 동의하지만, 대만에선 동의하는 바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마 전 총통의 이러한 전략엔 위험 요소가 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만인 60%가 자신의 정체성은 중국인이 아닌 대만인이라고 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전략이 맞아떨어질 수도 있다.
조사에 따르면 대만인의 절반 이상이 중국과의 전쟁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답했다.
그리고 마 전 총통은 자신의 정당인 국민당만이 중국과의 전쟁을 피할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존재임을 대만 유권자들에게 설득하려 한다는 게 성 교수의 설명이다.
“(이번 본토 방문은) 대만 해협을 잇는 다리로서의 레거시를 굳히는 일입니다. 그리고 대만에선 총통 선거 운동이 시작됐죠. 그리고 국민당은 자신들이야말로 중국과의 관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이라는, 대만의 두 구혼자 간 악화된 관계는 불편하지만 빼놓을 순 없는 요소다.
최근 미국의 민간 싱크탱크 ‘저먼마셜펀드’의 아시아 프로그램 책임자인 보니 글레이저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1979년 수교 이래 그 어느 때보다도 가장 나쁘다고 설명했다.
“저들(중국)은 바이든 대통령이나 미 국방부의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는 글레이저 책임자는 “그리고 미 의회는 중국을 실존적 위험 요소로 선언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은 베이징 정부만이 유일한 중국의 합법 정부라는 중국 정부의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면서도 다소 미묘한 자세를 취했었다.
일례로 미국은 1979년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그러면서도 대만의 변함없는 동맹국으로 남아있으면서, 대만 방어를 도울 것이라고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이제 미국이 지난 40여 년간 대만 해협의 평화 유지에 도움이 됐던 이 태도를 바꾸기로 했다고 보고 있다.
글레이저 책임자는 “바이든 대통령은 앞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대만을 무기로 사용하지 않으며, 대만의 중국 분리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면서도 대만 지도자와 미 고위 정치인 간 공식 회담 등으로 인해 이러한 발언은 그리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따라서 마 전 총통이 중국을 여행하고 차이 총통이 캘리포니아에서 차를 마시는 동안 대만은 시 주석이 전화를 받길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