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탄을 쏘는 군인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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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밀문서엔 우크라이나가 외부로부터 지원받는 군사 훈련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담겼다

현재 다수의 미 국방부 기밀문건이 지난 6일(현지시간)부터 온라인상에 퍼지며 논란이 되고 있다.

각종 지도, 도표, 사진뿐만 아니라 알 수 없는 군사 용어 관련 약자 및 여러 일정표가 담긴 이 문건 중 일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1급 비밀’이라고 표시돼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의 사상자 규모, 양 진영의 군사적 취약점, 오는 봄철 우크라이나가 기다려왔던 반격을 시작했을 때 예상되는 양쪽의 상대적 장점 등을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누군가 식탁 위에서 펼쳐 사진을 찍어 온라인에 올린 듯한 이 문서와 그 내용은 과연 얼마나 사실과 가까울까.

그리고 이 문서엔 그동안 알지 못했던 내용도 담겼을지 살펴봤다.

우선 무엇보다도 14개월 전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래 가장 중대한 미 정보 당국의 비밀 유출이다.

작성된 지 6주 정도 지난 문서도 있으나, 이번 유출은 그 의미가 상당한 사건이다.

이번 논란과 관련해 미 국방부 관료들이 대부분 실제 문서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잡하게 원본 문서를 조작한 버전의 문서도 적어도 하나 이상인 것으로 보이지만, 100건에 달하는 문서에서 이는 비교적 사소한 세부 사항 정도로 보인다.

BBC가 본 문서 20여 건 중엔 우크라이나가 앞으로 몇 주 안에 시작할 수 있는 올봄 반격 공세를 위해 여단 12개를 새로 편성하면서, 이에 우크라이나 측이 외부로부터 지원받은 훈련과 장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담긴 문서도 있었다.

우크라이나 여단의 공세 준비 완료 타임라인도 기재돼 있으며, 서방 세계가 제공한 모든 장갑차, 군용차, 포탄 등도 나열해놨다.

또한 “(지원) 장비 도착 시간이 훈련 및 준비 상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도 담겼다.

곡사포 발사를 배경으로 귀를 막고 있는 군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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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곡사포 ‘PzH 2000’을 발사하는 우크라이나군의 모습

아울러 봄이 다가오면서 우크라이나 동부 전역에 지반 상태가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는 “얼어붙은 진흙 지면 타임라인” 지도도 있었다.

지난겨울을 거치며 우크라이나의 방공 능력이 심각하게 저하된 가운데 우크라이나 당국이 제한된 자원을 민간인과 주요 인프라 자원, 최전방 부대 보호 등에 모두 투입하려고 들면서 방공 능력이 더욱 소진되고 있다는 냉정한 분석도 담겨 있었다.

새로운 정보인가?

사실 이 문서에 담긴 여러 세부 정보는 이미 우리에게도 익숙한 내용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매우 많은 정보가 담겨있으며, 게다가 한 곳에 모여있다는 점이 특이할 뿐이다.

일례로 사상자 수를 살펴보면, 미국 측이 러시아의 사상자 규모를 18만9500~22만3000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는 건 그리 놀랍지 않다.

우크라이나 측 사상자 규모는 12만4500~13만1000명 정도로 예측하고 있는데, 이 또한 최근 몇 주간 미 당국이 언론에 말한 규모에서 그리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한편 미 국방부는 이러한 사상자 규모 예측치에 대해 “신뢰성이 낮다”면서 정보 격차, 작전상의 보안, 양측의 의도적인 사상자 규모 은폐 시도 등을 그 이유로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바로 이 부분에서 누군가 우크라이나 측의 사상자 규모가 엄청난 것처럼 보이게 하고자 조작했다.

친러시아 ‘텔레그램’ 사이트에 등장한 버전의 문서에선 우크라이나 측의 ‘전투 중 사망자’ 규모(1만6000~1만7500명)를 러시아 측의 사망자 규모로 바꿔치기한 뒤, 우크라이나 측 전사자 규모는 원래 기록된 숫자를 앞뒤로 뒤집어 6만1000~7만1500명 수준으로 기록해놨다.

그렇다면 누가 이 문서를 유출했으며, 왜 유출했을까.

온라인 커뮤니티에 유출

어떻게 미 당국의 기밀문건이 게임 채팅 플랫폼 ‘디스코드’, 온라인 게시판 ‘포챈’, 보안 메신저 플랫폼 ‘텔레그램’ 등에서 퍼지게 된 것일까.

이에 대해 오픈소스 정보를 바탕으로 한 독립적인 탐사보도 단체 ‘벨링캣’의 아릭 톨러는 유출의 원천 지점을 찾을 순 없으나, 게임 채팅 플랫폼에 지난달 초부터 등장했다고 분석했다.

게임 ‘마인크래프트’ 이용자들이 자주 찾는 ‘디스코드’ 서버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논쟁이 벌어졌고, 이어 지난달 4일 어느 사용자가 “여기 유출 문서 일부야”라는 글과 함께 문서 10건을 올렸다.

한편 이러한 유출 사건은 특이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일례로 2019년 영국 총선을 앞두고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과 ‘포챈’ 등에 미국과 영국의 무역 관련 문서가 등장한 바 있다.

해당 문서엔 민감한 부분이 삭제되지 않고 그대로 노출돼 있었는데, ‘레딧’에선 러시아를 배후로 지목했다.

또 지난해엔 온라인 게임 ‘워 썬더’ 이용자들이 다른 이용자와 말싸움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고자 민감한 내용이 담긴 군 기밀문서를 반복적으로 유출해 논란이 된 바 있다.

한편 이번 유출 사건은 더 민감한 사건으로, 잠재적으로 피해를 입힐 수도 있다.

우선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작전상 안보”를 빈틈없이 유지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는 상황에서, 게다가 봄철 반격을 앞둔 시점에 민감한 정보가 유출됐기에 불편할 수밖에 없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행정부에 이번 봄철 공세는 전쟁의 역학 관계를 뒤집고, 이후 있을 평화 회담에서 우크라이나 측에 유리한 조건을 내걸 기회가 될 주요 포인트다.

우크라이나 측은 러시아가 주도한 허위 정보 유포 가능성을 언급했다.

반대로 러시아 지휘관들을 거짓 정보로 오도하려는 서방의 음모라고 주장하는 군사 관련 블로거들도 있었다.

결정적으로 지금껏 유출된 문서는 우크라이나가 계획 중인 반격의 방향이나 강세 등은 가리키고 있지 않다.

(비록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의 첩보는 번번이 실패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으나) 러시아 측은 우크라이나의 봄철 반격 준비 범위에 대해 지금쯤은 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측은 반격의 성공 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공세에 대해 러시아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계속 추측하는 상황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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