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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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이 완전히 깜깜한 곳에서 식사하는 레스토랑이 있다. 이런 식으로 식사를 하면, 음식의 맛을 느끼는 방식은 어떻게 달라질까?

절제된 세련미가 돋보이는 레스토랑 입구에서 한 남성이 규칙을 설명했다. “시계나 휴대전화처럼 빛을 내는 장치는 안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입구 옆 사물함에 넣어주세요. 외투도 여기에 걸어놓고 가세요. 가지고 들어갔다가는,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곳은 취리히에 있는 ‘블라인드 카우’라는 레스토랑이다. 이곳에선 기대치를 낮춰야 한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우리는 주변을 마음껏 둘러볼 수 있다. 핸드백이 바닥에 떨어지면 주울 수도 있다. 하지만 새까만 커튼으로 빛을 차단한 이 식당에서는 다른 현실이 펼쳐진다.

안내가 끝나자, 우리는 머리카락이 붉은 직원의 뒤를 마치 기차놀이를 하듯 따라갔다. 희미한 불빛이 켜진 대기실을 지났다. 그리고 벨벳 커튼도 통과하자,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어둠이었다.

식당 안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와 웃는 소리,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만 가득했다. 사위는 칠흑같은 어둠, 눈을 감고 있어도 무방할 정도였다.

블라인드 카우와 같은 레스토랑은 ‘빛이 완전히 차단된 곳에서 식사를 한다’는 참신함을 무기로 삼는다. 손님들이 이곳에서 식사를 할 때는 시각 장애인이나 저시력자 직원들이 음식을 나른다. 이들에겐 어둠이 장애물이 되지 않는 것. 그들은 유유히 식당을 돌아다니지만, 손님들은 의자를 떠나지 못한다.

현재 이런 식당들은 몇몇 국가에서 볼 수 있다. 그중에 블라인드 카우는 시각장애를 가진 성직자가 세운 최초의 상설 식당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동생과 함께 이곳을 방문했다. 자리에 앉기 위해 더듬거리며 의자를 찾는데, 모든 감각이 긴장하는 듯했다.

그러다 문득 어둠 속 식사와 시각이 차단되지 않은 식사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졌다. 시각이 제한되면, 다른 감각이 더 날카로워질까? 내가 무엇을 먹는지 알 수 없다면, 음식을 더 적게 먹을까? 어둠 속에 있을 땐 심리적으로도 어떤 영향을 받을까?

어둠 속 식사는 일반적인 레스토랑에서 일어나는 여러 감각적 자극이 차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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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 식사는 일반적인 레스토랑에서 일어나는 여러 감각적 자극이 차단된다

첫 번째 한 입을 먹었다. 바로 그 순간부터 나는 이것이 굉장히 색다른 경험이 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식당 직원은 우리 앞에 수저와 ‘아뮤즈 부슈(식사 전 제공되는 한입거리 음식)’가 있다고 말했다.

나는 손을 더듬어 차가운 금속을 찾아낸 뒤, 입으로 가져갔다. 작은 옹이와 돌기가 느껴졌다. 마치 버섯이 피어난 이끼 낀 통나무를 먹는 것 같았다. 무슨 음식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시각적 정보를 대체하기 위한 흰색 윤곽이 검은 형체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듯했다. 동생은 음식 중에 사과나 양배추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의 추측을 뒷받침해 줄 시각 이미지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음식이 입안에 있을 때는 풍부하던 그 느낌과 기억이 음식을 삼키자마자 삽시간에 사라졌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시각이 기억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왔다. 사람들은 자신이 들은 것(당구장의 시끄러운 소리나 개 짖는 소리 등)보다 본 것을 더 쉽게 기억한다고 한다. 정보가 시각 형태로 주어졌을 때 다른 형태로 주어진 정보보다 훨씬 더 선명한 단기 기억을 남긴다는 연구도 있다. 어둠과 질감만 가득한 상태에서 나 역시 시각이 정보를 기록하는 데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두 번째 음식을 먹기 전, 우리는 혀의 감각만으로 다음 음식의 정체를 파악해보기로 했다. 동생은 두번째 음식이 분명 바삭바삭한 생 양배추와 말린 과일이 들어간 타트(속에 과일 등을 넣고 위에는 반죽을 씌우지 않고 만든 파이), 포도 같다고 말했다. “호두가 들어간 것은 아닐까?” 내게는 요거트나 코티지 치즈 같은 차가운 드레싱이 느껴졌다.

우리는 밀려드는 감각 정보를 과거 우리가 음식을 먹었을 때 기억과 연관지으려 했다. 식탁 위 음식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음식을 마지막으로 먹었을 때 야외에서 친구들과 함께 있었던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뭔가를 먹는 물리적 행위 자체는 생각보다 까다롭지 않았다. 포크를 접시 가장자리부터 원을 좁혀 그리듯 돌리다가 뭔가에 닿으면, 음식을 찾아먹을 수 있었다. 마침내 메인 요리가 나왔다. 우리는 알 수 없는 퓨레 위에 쇠고기가 올려진 요리라고 판단했다. 양고기는 아니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채소도 나왔다.

우리는 ‘파스닙(당근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색이 하얗고 달콤한 채소)’이라고 생각했다. 소스 안에서 헤엄치는 주사위 모양의 스쿼시 열매와 호박씨는 아삭아삭한 식감을 갖고 있었다. 접시 가장자리를 포크로 쓸어대며, 나는 형체를 볼 수 없는 이 음식에 이상하리만큼 집중했다. 그리고 모든 음식을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샐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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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어떤 음식에 대한 과거의 시각적 기억이 사라진다고 해도, 우리가 그 음식을 먹고 느끼는 방식이 동일할까?

어둠 속 식사에 대한 연구는 흔치 않다. 다만 이들 연구가 보여준 결과와 나의 경험은 일치했다. 연구는 식사를 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시각 정보가 없을 때는,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보통의 상황보다 음식을 훨씬 더 많이 먹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연구는 참여자를 둘로 나누어 정상적인 양과 많은 양의 식사를 어둠 속에서 먹도록 했다. 식사 후에는 모두가 밝은 방에서 자신이 먹을 만큼 가져다 먹는 식으로 디저트를 먹었다. 많은 양의 식사를 한 이들의 섭취 칼로리는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36% 더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비교 집단과 비슷한 양의 디저트를 먹었고, 이후 허기를 느끼는 시기도 비슷했다.

이것은 우리 앞에 놓인 음식에 대한 시각적 정보가 우리가 얼마나 더 먹을 수 있을지를 계산할 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블라인드 카우에서 나 역시 포크로 퍼낼 수 있는 모든 것을 먹었다. 추격전을 펼치는 듯한 짜릿함은 위장이 보낸 그 어떤 신호도 무뎌지게 만들었다.

(물론 이러한 어둠 속 식사가 물리적으로 어려움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마른 적포도주를 마시려다 코에 부을 뻔했다. 어둠 속에서 내 앞의 와인 잔 높이를 가늠하지 못하다 보니, 잔의 입구가 향할 곳을 제대로 찾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며, 식당 안은 점점 조용해졌다. 처음에 들렸던 몇몇 목소리들이 사라졌다. 식당 안의 매끄럽고 희미한 어둠 속에서 공포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마도 날이 저물며 생긴 진짜 어둠에 겁을 먹은 것 같았다.

어떤 면에서 이런 식당들은 초기 심리학자들이 감각을 연구할 때 사용했던 ‘감각 차단의 방’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감각 차단의 방에서 모든 자극이 제한됐을 때, 어떤 사람들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반면 어떤 이들은 그 상태가 위안을 준다고 생각했고, 또 어떤 이들은 그 시간을 이겨내기 위해 노래를 불렀다.

음식을 가져온 직원의 목소리가 어깨 너머에서 들려왔다. 디저트였다. 한 숟가락을 떴지만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다만 매우 친숙했다. 카더멈(생강과 향신료)과 작고 바삭바삭하며 달콤한 조각들이 있는 것 같았고, 부드러운 풀에서 따온 곡물이 있는 듯했다. 와플의 캐러멜 향에 부모님과 보냈던 여름날 저녁과 동네 시장 등 정겨운 기억이 떠올랐다. 이번에도 나는 엄청나게 많이 먹었다.

캐러멜 팝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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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에게 남은 식사에 대한 기억은 마지막에 입안을 가득 채웠던 캐러멜 팝콘의 향이다

이곳에서 나의 미각과 후각, 촉각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시각을 통해 정보를 결합하는 힘이 없다 보니 이들 감각이 서로 따로 논다는 게 큰 차이였다. 나는 숟가락에 있는 뭔가 바삭바삭한 식감의 음식을 먹으며 딱정벌레를 씹는 듯한 느낌에 크게 놀랐다. 하지만 그것은 바삭바삭한 재료가 들어간 밤 크림이었다.

마지막에 먹은 음식은 정확하게 짚을 수 있었다. 달콤하고 잘 구워진 캐러멜 팝콘 한 조각이었다.

이후 우리는 차를 마셨다. 다만 차와 함께 나온 쿠키를 보지 못해, 쿠키는 먹지 못했다. 사물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우리에게 안도감을 줬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그 대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보거나, 특정한 방법으로 먹거나, 정돈해야 한다는 책임감에서 벗어나게 해줬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우리는 식당에서 편한 자세로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이런 곳에서 사람들은 그저 앉아서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이곳에선 모두가 어둠 속 하나의 목소리일 뿐이다. 그렇다 보니 결국 모두가 자신의 육체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직원을 불렀다. “이만 갈게요.”

우리는 로비로 나오며 시간을 물었다. 생각에는 우리가 휴대전화도 시계도 없이 발이 묶인 채로 약 45분 정도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시각이 차단되자, 시간을 가늠하는 우리의 능력도 약해진 것이다. 어쩌면 빛과 함께 살아가고 어둠 속 생활에 대한 훈련이 없는 생물들이 시야가 제한됐을 때 시간을 잘 감지하지 못한다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 특이했던 식사 후 몇 달이 흘렀다. 나는 어둠 속에서 내가 경험한 맛과 감각을 재구성해보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저 첫 한 술을 먹었을 때의 그 이상하기만 했던 상황, 머릿속에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던 그 공허함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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