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와 아서가 정체를 숨기고자 종이 마스크를 쓴 모습

BBC
‘닌자 트롤 헌터’ 팀의 일원인 마리아와 아서는 자신들의 신원이 공개되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며 우려했다

트위터에서 기후변화 부정론자들과 맞서 싸우고자 비밀스럽게 나선 어느 온라인자경단 조직이 있다.

인터넷에서 고의로 기후변화와 관련해 선동적이거나, 공격적이거나, 거짓된 정보 등을 올리는 이른바 ‘트롤’을 타파하겠다고 나선 ‘닌자’들이다.

그러나 온라인상에서 서로를 물어뜯는 흉포한 정보전이 계속되면서 이들이 오히려 트롤이 될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 건 아닐지 살펴봤다.

스페인의 어느 작은 해안 마을,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꼭대기에서 마리아와 아서를 만났다.

마리아와 아서는 자신들의 정확한 이름이나 거주지를 밝히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지난 수년간 인터넷에서 수많은 적을 만들었기에 만약 신원이 공개될 경우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이유였다.

마리아는 “어떤 일을 하면서 그 결과가 두렵지 않으려면 눈에 띄지 않게 은밀히 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종이 마스크를 쓰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마리아의 모습

BBC
마리아는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의 트윗을 신고하는 데 “수천 시간”을 썼다고 말했다

지난 2019년 마리아는 다양한 국적의 25명 팀원이 모인 ‘닌자 트롤 헌터’ 팀을 공동 조직했다. 트위터에서 활동하는 기후변화 부정론자들과 맞서 싸우겠다는 취지였다.

마리아는 “트위터에 올라오는 것 중 거짓 정보가 많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마리아를 포함한 몇몇 팀원은 과학 관련 분야를 전공했다. 이는 기후변화와 관련한 복잡한 연구나 논문을 살펴볼 때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파란색 스누피 티셔츠 차림의 마리아는 언뜻 보기엔 ‘닌자’(특수 첩보원) 같아 보이진 않았다.

그 옆에서 조곤조곤 설명하는 아서 또한 마찬가지다. 아서는 마리아가 영입한 팀원이다.

아서는 “우리 팀은 함께 여러 전투를 치렀고, 또 매우 즐겼다”고 말했다.

지난 2019년 처음 조직된 ‘닌자’들은 트위터에서 발견한 허위 또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주장을 모아 사실 체크에 들어갔다.

이들은 점점 퍼지고 있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학술 논문이나 과학 보고서 등의 링크를 달며 사실로 맞서고자 했다.

그러나 마리아에 따르면 “몇 달 후 사실 적시는 사람들에게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사실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전술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들은 기후변화와 관련한 기본적인 과학적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유명 트위터 계정을 예의주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트위터 사용 규정을 어기는 트윗 게시물이 올라올 때마다 이들 계정을 신고했다.

물론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발언 자체가 트위터에서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타인에 대한 위협, 괴롭힘, 혐오 발언 등이 제재 대상이다.

또한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된 잘못된 주장을 담은 게시물은 트위터에서 삭제되거나 그 계정이 정지될 수도 있었다.

마리아는 “코로나19와 관련된 잘못된 주장 때문이든, 나치 상징을 올렸기 때문이든 간에 (계정 정지 및 삭제)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면서 “이러한 (거짓 주장을 펼치는) 계정이 사라지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수천 시간을 들인, 이 길고도 힘든 작업은 마침내 결실을 봤다. 적어도 ‘닌자’들은 그렇게 믿고 싶어 했다.

자신들이 나선 결과 트위터 계정 600여 개가 기후변화 관련 허위 정보를 더 이상 올리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물론 BBC는 이러한 주장을 독자적으로 검증할 순 없었다. 그러나 ‘닌자’들이 신고한 여러 공격적인 트윗 게시물과, 이들 덕에 정지된 계정이 적힌 목록 또한 볼 수 있었다.

한편 그렇게 정지된 계정 중에 호주 출신 엔지니어 마이크가 운영하던 계정도 있다.

마이크의 계정은 한때 팔로워가 2만3000여 명에 이르렀다. 대부분 음모론을 믿는 이들이다.

그러다 작년 4월 마이크는 코로나19 백신에 관한 근거 없는 주장을 펼쳐 영구적으로 계정이 정지됐다.

정지되기 전까지 ‘닌자’들 또한 마이크의 트윗 게시물 수십 개를 신고하며 계정을 예의 주시했다고 한다.

그러다 마이크의 계정이 정지되면서 ‘닌자’들은 이를 트로피 목록에 추가했다.

마이크는 “조금도 놀랍지 않다”면서 지난 몇 년간 자신은 ‘트롤링(트롤 행위)’ 혐의로 이러한 집단들에 의해 계속 표적이 됐다고 주장했다.

컴퓨터 책상 위에 올려진 종이 마스크

BBC
‘닌자’들의 정체는 베일에 싸여있다

한편 ‘닌자’들은 “효과적인 트롤 사냥을 위한 저항군 가이드’라는 문서를 통해 규칙도 공유한다. 표적으로 삼은 이들과 “엮여선” 안 된다는 규칙 등이 담겼다.

그러나 이들은 각자 자신만의 운영 방식이 있다고 털어놨다.

마리아는 자신은 언제나 이 규칙을 따르며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어딘지 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서는 자신만의 운영 방식으로 활동하다 트위터에서 “2번 정도” 일시적으로 계정 정지를 당하기도 했다.

“기후변화 부정론자들과 접촉해 이들과 엮인 적이 있다”는 아서는 “그랬더니 이들 중 일부가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계속 자극했더니 결국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는 트위터 사용 규칙 위반”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이들을 (트위터상에서) 제거해나갔습니다.”

이에 BBC는 아서에게 그러한 행동이 다른 트롤링과 크게 다를 게 없지 않냐고 질문했다. 이에 아서는 “부분적으론 맞다”고 답했다.

또한 아서에게 표적으로 삼은 이들이 선을 넘도록 자극하는 행동은 현실 세계에서도 피해를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아서는 “(내가 하는 행동이) 현실 세계에 주는 피해는 저들이 벌이는 짓보다 심할 수 없다”면서 “저들은 기후변화가 거짓이라는 소문을 퍼뜨리며 사람들을 믿게 하고 있고, 이는 우리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트위터의 새로운 주인이 된 일론 머스크 CEO

Getty Images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 이후 과거 정지당했던 계정 수천 개가 복구됐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하며 ‘닌자’들의 활동에 지장이 생겼다. 지난해 10월 트위터의 새 주인이 된 머스크 CEO는 같은 해 11월 이전에 정지된 계정 수천 개를 복구하겠다고 발표했다.

마이크의 계정도 그렇게 복구됐다.

이에 대해 마리아는 “크게 실망했다”면서 “과거 트위터 측이 정지시켰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관련해 설명을 요청했으나 트위터는 응답하지 않았다.

한편 마리아와 아서는 트위터를 떠났으나, 다른 ‘닌자’들은 여전히 활동 중이며, 이들의 온라인 전투 또한 아직도 진행 중이다.

BBC는 아직 ‘닌자’로 활동하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이들은 최근 트위터에 떠도는 기후변화 관련 허위 정보가 “많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서는 바로 이 때문에 ‘닌자’들의 활동이 현재도 유의미하다고 설명했다.

“만약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활동을 벌여준다면 우리의 목소리가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의 목소리를 합친 것보다 더 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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