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세레트 아디스(83)

Beka Atoma/BBC
메세레트 아디스(83)는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손주 세 명과 함께 작은방을 쓴다. 아디스의 딸은 당뇨병으로 숨졌고 남편도 세상을 떠났다.

메세레트 아디스(83)의 목소리는 낮게 떨렸다. 아디스는 하루 대부분을 침대에서 보낸다.

코에 산소 주입관을 연결한 채 심호흡을 한 다음 “고통이 싫다. 배고픔이 싫다. 추위도 싫다”고 말했다.

아디스는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손주 세 명과 함께 작은방을 쓴다. 아디스의 딸은 당뇨병으로 숨졌고 남편도 세상을 떠났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아침과 점심을 먹는다. 아디스는 손주들이 저녁을 먹을 수 있도록 얼마 없는 음식을 최대한 아낀다. 아디스는 하루 한 끼를 먹는데, 그마저도 매일은 아니다.

“콜로(볶은 곡물을 섞어 만든 전통음식)를 먹고 물을 마신 뒤 잠을 청합니다. 그마저도 없으면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곤궁에 처한 것은 아디스만이 아니다.

‘노인들은 보이지 않는다’

BBC는 글로벌 인플레이션 위기의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전 세계 고령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노인들은 극도로 취약해져 자선단체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었으며,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유엔(UN) 노인인권 독립전문가 클라우디아 말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고령자 데이터가 완전히 누락되어 있다”고 말했다.

또한, “노인들은 보이지 않아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다”며, 목소리를 내는 단체가 많을수록 노인들이 소외된다고 덧붙였다.

국제기구의 지원을 받는 노인인권단체 ‘헬프에이지’는 최근 10개국에서 새로운 연구를 진행했다. 그 내용에 따르면, 노인들은 생에 처음으로 구걸에 나서고 병원 치료를 포기하는 등 “생존을 위해 극단적인 행동 변화”가 나타난 것으로 확인됐다.

메세레트 아디스의 집

Beka Atoma/BBC
인인권단체 ‘헬프에이지’는 최근 10개국에서 새로운 연구를 진행했다. 그 내용에 따르면, 노인들은 생에 처음으로 구걸에 나서고 병원 치료를 포기하는 등 “생존을 위해 극단적인 행동 변화”가 나타난 것으로 확인됐다

메세레트 아디스는 차가운 침실에서 담요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제가 아픈 게 보이시죠? 저는 침대에 누워 있어요. 지원을 받지 못하면 아마 죽겠죠.”

앨리스 초바니안(67)은 4000km 이상 떨어진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또 다른 침대에 누워 비슷한 절망을 이야기했다.

초바니안은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는지 말하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인플레이션 위기가 노인들의 정신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유엔의 전문가 클라우디아 말러는 “(고령자의) 우울증은 질병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저 ‘노화에 따른 문제’, ‘별로 심각하지 않은 증상’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실제로는 큰 문제이며 완전히 간과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초바니안은 레바논 수도에서 작은 침실을 10명과 함께 사용한다. 최근 이혼한 두 딸과 손주 여덟이 곁에 있다.

초바니안은 2020년 이후 가계 상황이 악화됐으며 “지금처럼 힘들었던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위기의 연속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심각한 식량 불안에 직면한 인구가 2019년 1억3500만명에서 2022년 3억4500만명으로 증가했다.

코로나19와 기후 변화 문제에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더해져 전 세계 식량·에너지·의약품 공급망이 혼란에 빠지고 물가가 치솟았다.

레바논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도 이미 위기에 처한 상태였고 지난해 식료품 인플레이션이 372.8%에 달했다.

초바니안(67)

Zakaria Jaber/BBC
초바니안(67)은 레바논 수도에서 작은 침실을 10명과 함께 사용한다. 최근 이혼한 두 딸과 손주 여덟이 곁에 있다.

초바니안은 “손녀들이 치킨 냄새를 맡으려고 치킨 가게 앞을 지나다닌다”며 “어제는 손녀들이 배고프다고 했지만 내가 가진 것이 없었다. 그랬더니 손녀들이 ‘자면서 치킨 꿈을 꾸자’고 했다”고 말했다.

초바니안은 간병인으로 일하는 딸에게서 한 달에 20달러(약 2만7000원)를 받는다.

그는 “예전에는 코바늘로 뜨개질을 해서 옷을 팔았지만, 물가 위기가 닥치자 아무도 사주지 않는다. 뜨개질한 의류는 사치품이 됐고 이제 돈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없다”고 덧붙였다.

더 큰 타격을 입은 고령의 여성들

전문가들은 아디스나 초바니안과 같은 여성 고령자가 “이 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라고 말한다.

헬프에이지에서 소득보장 문제를 담당하는 밥 바바자니안은 “사회적·문화적 관습은 식량이 부족할 때 여성이 가장 먼저 식사를 포기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또한 기존의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해 여성은 소득을 올릴 역량이 부족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 상황이 (식량) 자원에 대해 통제력을 갖기 어려운 가정 내 역학관계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여성은 자녀 양육이나 친인척 간병을 전담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집 밖에서 일할 때 남성보다 임금이 적은 경우가 많고, 집안일을 더 많이 한다.

유엔의 전문가 클라우디아 말러는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가 자주 언급되는데, 연금에도 격차도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는 “여성이나 소녀들이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하면 남성과 동일한 취업 기회를 얻지 못한다. 이는 결국 연금이나 기타 수당 등의 지원·원조 부족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한편, 남성 고령자도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늦은 오후, 지아우딘 킬지는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의 차량 정비소 문 앞에 앉아 있었다. 아내는 7년간 투석을 받다가 지난달 세상을 떠났다.

연금이 없어 68세의 나이에도 계속 일해야 한다. 하지만 작년에 고객 대부분이 사라졌다.

킬지는 먼지로 뒤덮인 기계를 가리키며 “하루 종일 쉬지도 못하고 일할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아침부터 문을 열었지만 이제야 첫 번째 일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2023년 2월, 파키스탄의 소비자 물가는 거의 50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파키스탄의 지아우딘 킬지(68)는 정비소 뒤편에 있는 접이식 매트리스에서 잠을 잔다

Kiran Fatima/BBC
파키스탄의 지아우딘 킬지(68)는 정비소 뒤편에 있는 접이식 매트리스에서 잠을 잔다

킬지는 정비소 뒤편에 있는 접이식 매트리스에서 잠을 잔다. 하지만 지난달 임대료가 2배 이상 올라 이 잠자리마저도 장담할 수 없다.

아내의 치료비를 위해 대출을 받았는데, 금리 급등으로 인해 이자가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

“저는 당뇨병 환자이고 심장에 스텐트를 삽입했습니다. 신장도 아파요. 하지만 약 값이 너무 비싸서 가끔 복약을 중단하기도 합니다. 여유가 생기면 다시 약을 먹죠. 달리 방법이 있나요?”

에티오피아의 아디스도 폐 질환과 관련된 필수 의약품 구입을 대부분 중단했다.

두 사례 모두, 물가 상승으로 인해 노인들이 의료·의약품을 이용하지 못한다는 헬프에이지의 연구를 뒷받침한다.

인생 첫 푸드뱅크

고령자가 인플레이션으로 타격을 입은 것은 에티오피아·레바논·파키스탄 등 개발도상국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영국도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

타바니 시톨레(74)는 런던 남부에 거주하는 은퇴 간호사다. 시톨레는 지역사회에서 운영하는 ‘푸드뱅크’에서 필요한 음식을 조달한다.

“(예전에는) 푸드뱅크를 이용할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내게는 아무 문제도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작은 저축을 손에 쥐고 ‘왜 다른 사람들이 푸드뱅크를 이용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시톨레는 식탁 위에 놓인 통조림을 가리키며 “이제는 그러던 내가 줄을 설 차례가 됐다”고 말했다.

타바니 시톨레(74)

BBC
타바니 시톨레(74)

2019년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에서 은퇴했을 당시 시톨레는 “이제 막 인생이 시작됐다”고 생각했지만, 기록적인 물가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그는 “가끔 먹고 싶은 게 생기지만, 이제는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꼭 필요한 음식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시톨레는 딸이 생후 2개월일 때 남편과 사별했다. 현재 외동딸과 함께 살고 있으며, 거실 벽에는 딸의 사진이 가득하다.

“적어도 딸이 제 곁에 있어서 물건을 살 여유도 있는 거죠.”

이렇게 가족에게 의존하는 방식이 일반적이긴 하지만, 인구 고령화를 감안하면 영원히 지속 가능한 방식은 아니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의 노인학 연구소장 웨이 양 박사는 “영국에서 65세 이상 인구가 향후 20년 안에 2~3배로 증가할 것”이라며 “젊은 가족이 언제까지고 노인을 부양할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정부는 노인들을 위해 장기요양 재원을 마련할 새로운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톨레는 본인도 ‘인디펜던트 에이지’와 같은 자선단체의 도움에 의존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 나쁜 상황이 닥칠까 봐 걱정된다고 말한다.

그는 “주택 담보대출 이자가 두 달마다 계속 올라간다”며 “지금은 이자를 감당할 수 없어 이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집을 팔고 더 저렴한 곳으로 이사해야 하는데 그러면 딸의 통근길이 매우 힘들어질 거예요.”

시톨레는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하는 고령자에게 “부끄러워하지 말라, 겁내지 말라, 수치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예전에는 ‘가난하시군요, 간호사였어요? 왜 이렇게 됐어요?’ 이런 분위기였지만, 이제는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심지어 은퇴도 안 한 교사, 의사, 간호사까지 푸드뱅크에 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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