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어느 식당 한켠에 마련된 방에 서로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은밀히 모였다.
정치인, 과학자, 군 관련자뿐만 아니라 드러내기엔 너무 정체가 민감한 이들도 있다.
이들은 새로 창립된 ‘동북아외교안보포럼(Forum for Nuclear Strategy)’ 회원들로, 한국의 자체 핵무기 보유 방법 계획 모색이라는 야심 찬 의제를 갖고 이곳 점심 식사 자리에 모였다.
한때 소수의 생각에 불과했던 한국의 ‘자체 핵무장론’은 지난 몇 달간 주류 여론으로 폭발적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심지어 윤석열 대통령 또한 국방부 회의에서 자체 핵 보유 가능성을 언급했는데, 최근 한국 역사에서 대통령이 자체 핵무장론을 테이블에 올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울러 현재 한국 신문의 각종 칼럼에서도 이에 대해 큰 소리로 떠들고 있으며, 무려 국민의 4분의 3이 이를 지지한다.
한편 핵으로 무장한 북한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불안감은 갈수록 커지는 있는 가운데 윤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도움을 구하러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사실 과거 1970년대 한국은 비밀리에 핵 개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핵보유국을 꿈꾼 적 있다. 그러나 당시 이를 알아챈 미국은 최후통첩을 보냈다.
계속 핵 개발을 밀어붙이거나, 이미 핵무기를 지닌 미국의 보호를 받으라는 선택지였다.
그렇게 한국은 미국의 보호를 선택했고, 이에 따라 현재까지 미군 수만 명이 한반도에 주둔 중이다.
그러나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상황이 극적으로 변하면서, 특히 북한이 미 본토 전역이 사정권에 들어오는 더욱 정교한 핵무기를 개발 중인 상황에서 과연 미국이 여전히 한국을 보호해줄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호전적인 성향의 김정은 북한 최고 지도자가 한국을 공격하면 미국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데, 이때 북한이 미국을 향해 물러서지 않으면 미 본토에 핵폭탄을 터뜨리겠다고 위협하는 시나리오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어떤 선택을 할까. 서울을 지키고자 샌프란시스코를 잿더미로 만들 위험을 감수할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게 바로 이 비밀 점심 식사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내린 결론이다.
이에 대해 집권당인 국민의힘 소속 의원이기도 한 최지영 동북아외교안보포럼 이사장은 “다른 국가가 우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은 합리적이지 않다”면서 “이는 우리의 문제이자 우리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동북아외교안보포럼의 대표이기도 한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다음과 같은 제시안을 설명했다.
우선 향후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강행하면 한국은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을 탈퇴한다. 그리고 6개월 안에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복귀하지 않으면 한국은 독자적인 핵무기를 만들기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한국이 자체 핵무기를 갖추게 되면 김정은 또한 한국의 반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기에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낮아질 것이라는 게 정 대표의 설명이다.
그러나 미국의 싱크탱크 ‘38노스’ 소속 제니 타운 연구원은 한국의 핵무장이 북한의 행동 수위 조절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했다.
타운 연구원은 “더 많은 핵무기가 등장한다고 해서 세상이 핵전쟁으로부터 안전해지진 않는다”면서 “인도와 파키스탄을 그 예시로 봐라, 현실에선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오히려 인도와 파키스탄 모두 핵으로 무장하면서 (일정 수준에서) 더 나아가는 행동을 하게 됐죠.”
한편 자체 핵을 보유한 한국은 미국이 결코 원하는 그림이 아니지만, 이는 일정 부분 미국이 초래한 상황이기도 하다.
지난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한국이 안보에 있어 미국에 무임승차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주한 미군 비용을 더 많이 부담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철수하겠다고 위협까지 했다.
그리고 미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이 한국 사회에 일으킨 두려움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대로다.
오히려 점점 더 많은 한국인들이 미국의 약속은 다음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절실히 깨닫게 되면서, 자체 핵무장론에 찬성하고 있다.
한편 서울의 어느 사우나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람들이 모였다. 맥주와 치킨으로 한주의 고단함을 잊으려는 사람들이다.
이곳은 자체 핵무장론을 논하기엔 어울리지 않는 장소일 수도 있지만, 이젠 거의 어딜 가나 핵무기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곳에서 만난 구성욱(31) 씨는 자신의 군 복무 시절을 회상하며 “미국은 한국을 방어하고자 핵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 지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구씨는 지난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4명이 사망하면서 한반도가 큰 위기에 빠졌던 시기 군인이었다고 했다.
“그땐 정말 비상사태처럼 느껴졌다. 각자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고 유언장을 썼다”는 구씨는 이젠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도 걱정된다고 말을 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강력한 힘을 지닌 국가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상황이죠. 이들과 경쟁하기 위해선 핵이 필요합니다.”
사우나에 있던 모든 거의 모든 이들이 구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홍인수(82) 씨 또한 이에 동의했다. 유년기였던 1950년대에 한국전쟁을 겪은 홍씨는 원래 핵무기 반대론자였으나, 어쩔 수 없이 핵무기가 필요악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른 국가들이 자신들의 핵무기를 개발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핵무기 없이 어떻게 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세상이 변하고 있습니다.”

한편 한 여성은 미국이 과연 한국을 보호해줄지에 대해 우려하면서 “만약을 대비해 핵무기가 있는게 났다”고 했으며, 어린 자녀를 둔 어느 여성은 현재 한-미 관계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걱정했다.
현재 미국은 보호해주겠다는 “철갑 같은” 약속을 동맹국인 한국이 믿고 안심할 수 있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달 초엔 미국의 거대한 핵추진 항공모함이 부산항에 입항하기도 했다.
그런데 미국 정책 입안자들에겐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이러한 제스처는 더 이상 효과가 없는 모양새다.
한국 정치인들은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대신해 언제 핵 버튼을 누를 것인지 자신들은 아무것도 모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점점 더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유사시 바이든 대통령은 윤 대통령에게 사전에 알리지 않고도 핵 버튼을 누를 수 있다.
이에 대해 타운 연구원은 “여전히 (핵무기 발사는) 미 대통령이 내리는 결정이라는 점을 양국이 이해한다면 최소한 (발사 전 양국 간의) 의무적인 통화 라인 정도는 구축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한편 한국의 국방 전문가인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앞서 윤 대통령이 한국의 자체 핵무장론을 언급하던 그 회의 자리에 함께했던 인물이다.
양 위원은 윤 대통령이 미국을 간접적으로 압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한국과 자국의 핵 정책을 논의하기 꺼리는데, 만약 한반도에서 정말 핵전쟁이 발발할 시 가장 피해 보는 건 바로 한국”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핵무기를 둘러싼 계획과 실행안에 대해 좀 더 참여하고자 한다.
이는 미국이 한국에 핵무기를 배치하게 되는 형태일 수도 있고, 아니면 마치 유럽과 그랬듯 핵 공유 협정을 체결하는 형태일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유사시 미국의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아니면 핵 공동 기획 협의체 설립처럼 비교적 덜 극단적인 선택지도 있다.

한편 별로 큰 제안을 내놓을 것 같지 않을 듯한 미국이지만, 적어도 이번에 방문하는 윤 대통령에게 귀국 후 국민들에게 외교 성과라고 홍보할 수 있을 만한 구체적인 선물은 안겨줘야 하는 점은 알고 있다.
그러나 이젠 너무 늦은 것일 수도 있다.
한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한국의 자체 핵무장론은 이제 국민들 마음에 단단히 자리 잡아 뽑아내기 힘들어 보이기 때문이다.
핵무장은 정말 엄청난 결정이다. 현재의 국제질서는 핵무기 비확산에 기초해 세워졌으며, 이란이나 북한 등 이 질서를 위협하는 국가들은 큰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리고 한국 국민들은 아마도 이러한 대가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이 핵을 선택한다면 미국은 보호해주겠다는 약속에서 손을 뗄 수 있으며, 중국은 제재를 가해 한국을 괴롭히며 맹렬히 보복해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결국 고립돼 북한과 같은 왕따 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 한국의 눈부신 명성은 모든 빛을 잃고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사우나에서 시민들은 이러한 가정에 흔들리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오직 한 여성만이 만약 자체적인 핵을 보유한다는 의미가 결국 한국이 “악의 축”이 되는 상황이라면 아마도 그럴 가치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인정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한국은 북한처럼 외면당하기엔 경제적으로도 전략적으로도 너무 중요한 위치다.
대부분 전문가 또한 미국이 지난 수십 년간 이어온 군사 동맹을 끝낼 것이라 보지 않는다.
다만 한국의 잠재적 핵무장이 현 핵무기 비확산 체제에 균열을 일으킨다면 다른 국가들이 이를 따라 할 수도 있다는 점은 우려된다.
한편 사우나에서 만난 시민들 중엔 오직 홍씨만이 이러한 위험에 괴로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홍씨는 “제 눈 똥에 주저앉을 수 있다”며 도리어 심각한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핵무기는 결국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형태로 돌아오리라 생각한다”는 홍씨는 “그저 다음 세대가 안타까울 뿐”이라고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