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에서 쪽잠을 자는 피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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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수단에서 사우디 제다로 향하는 사우디 선박에서 휴식을 취하는 피난민들

수단 정규군과 준군사조직인 ‘신속지원군(RSF)’ 간 유혈 분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수단의 홍해 항구 도시 포트수단이 빠르게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리세 두셋 BBC 수석 국제 특파원은 포트수단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제다로 향하는 피난 행렬에 함께 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사우디아라비아의 군함 ‘HMS 알 디리야’호가 수단 해안에 접근했다. 사우디 선원들은 배가 안전하게 입항할 수 있도록 불빛을 깜빡였다.

이들이 향하는 곳은 심각해져 가는 수단 위기 속 주요 피난처이자 인도주의 활동의 중심지로 빠르게 변모한 포트수단이다. 수단의 최대 항구이기도 하다.

새벽 2시가 되자 또 다른 대형 선박 2척도 포트수단에 정박해 국제 구호 활동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파키스탄 출신인 하산 파라즈는 몸을 크게 떨며 “매우 안심이긴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역사의 일부가 됐다는 게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

한편 BBC 취재진은 HMS 알 디리야호에서 밤을 지새우는 등 홍해 건너편 사우디 항구 도시 제다에서 꼬박 10시간 기다린 끝에 사우디 예인선을 타고 포트수단에 들어갈 수 있었다.

소수의 외국 취재진에게 위기에 처한 수단에 들어갈 드문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승객 명단과 여권을 대조하기 위한 긴 줄이 만들어지자 파라즈는 “사람들은 앞으로 수년간 이 사건에 대해 말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포트수단에선 남아시아 출신 청년 노동자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이 지옥과도 같은 내전 환경에서 2주간 힘들게 버텼으며, 포트수단에서도 3일간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수단의 어느 주조 공장에서 일했다는 파키스탄 출신의 또 다른 남성은 “폭탄이 떨어지고 총알이 서로 날아드는 상황을 너무 많이 목격했다”면서 이내 입을 다물었다. 너무 충격이 큰 탓에 말을 이어가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수단을 뒤흔든 이번 사태는 현 수단 정부군 지도자인 압델 파타 알-부르한 장군과 RSF의 지도자이자 ‘헤메드티’로 더 잘 알려진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 장군 간 치열한 권력 다툼 끝에 벌어졌다.

몇 주간 유혈 사태가 이어지다 최근 양측이 휴전에 합의하면서 매우 불완전하고도 부분적으로 휴전이 이어지고 있다.

영국계 수단 기자인 모하나드 하심은 “이번 전쟁에서 포트수단의 상황은 상대적으로 괜찮다”고 설명했다. “내전 발생 첫날인 4월 15엔 이곳에서도 교전이 벌어졌으나, 현재는 수도 하르툼 등에서 탈출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는 설명이다.

BBC 취재진은 한때 멋진 모습을 자랑했으나 이젠 난민 텐트촌으로 변한 해군 건물도 지나쳤다.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탈출할 날만을 기다리며 길바닥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근처 호텔은 다양한 국적의 수많은 사람들로 이미 북적이고 있었으며, 각국 대사관이 급히 설립한 긴급 영사 서비스도 마찬가지였다. 대사관 직원들은 이미 대부분 수도에서 몸을 피했다.

한편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다며 걱정하는 이들도 많았다. 포트수단엔 비교적 탈출운이 좋지 않은 여권인 예멘, 시리아, 수단 여권 소지자가 많다.

일례로 주로 학생들이 대부분인 예멘인 3000여 명은 이곳 포트수단에서 몇 주째 빠져나가지 못하고 기다리는 중이다.

어느 관계자는 예멘인들을 고국으로 돌려보내고자 애쓰고 있다면서도 “사우디가 일부 예멘인들을 구조하고 있지만, 대규모 수용에 대해선 꺼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예멘에서도 내전이 벌어지고 있다.

분홍색 스카프를 머리에 두른 라샤와 꽃을 든 린의 모습

NAOMI SCHERBEL-BALL/BBC
아이들을 데리고 피난길에 오른 라샤는 “제발 세상에 수단을 구해달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사우디에 도착한 사람들은 짧게 호텔에서 머물 수 있다. 그러나 각국 정부가 자국 피난민의 숙박료를 지불해야 하며, 하루빨리 이들을 데리러 와야 한다.

한편 하심은 포트수단의 부둣가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친척이 없는지 살피고 있었다.

하루 전날, 하심은 취재진이 떠나온 제다의 ‘킹 파이살 해군 기지’에서 사촌과 극적으로 재회하기도 했다. 그 사촌은 10대 자녀 2명과 함께 18시간에 걸쳐 홍해를 가로질러 넘어왔다.

안전하게 홍해를 넘을 수 있는 외국 여권을 지닌 수단인들은 제다 땅을 밟으며 안도감과 함께 괴로움을 느낀다.

분홍색 스카프를 머리에 두른 라샤라는 여성은 “제발 수단에 남겨진 우리 가족을 도와달라”고 간청했다. 어린아이를 등에 업은 라샤 옆엔 아이 3명이 사우디 군인들이 나눠준 꽃을 흔들고 있었다.

라샤는 취재진에게 “제발 세상에 수단을 지켜달라고 말해달라”고 애원했다. 라샤의 가족은 지난달 15일 아침 총격이 벌어진 하르툼의 스포츠시티 근처에 살았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포트수단의 모습

AFP VIA GETTY IMAGES
최근 피난민 수천 명이 포트수단을 통해 수단에서 빠져나가고 있다

라샤의 8살 난 딸 린은 유창한 미국식 억양으로 무장한 남성들이 어떻게 집에 침입했는지 실감 나게 설명했다.

린은 어린이다운 허세를 부리며 “우리 가족 10명은 모두 뒷방에 숨었다. 나는 침착하게 굴었다. 소리를 내면 안 됐기에 울지도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린의 남동생이 끼어들며 “나쁜 사람들이었다”고 맞장구쳤다.

라샤의 남편은 자신들의 집에 침입한 이들은 RSF 요원들이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RSF는 약탈과 폭력 등 여러 범죄 행위로 지탄받고 있다.

한편 수단에서 가장 강력한 두 인물 간 갈등을 부추기는 요소엔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적대감뿐만 아니라 주요 강대국의 이익과 영향력도 있다.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 등 이 지역 주요국은 포함한 지역 거물들은 오랫동안 헤메드티 측에 자금을 지원했다. 헤메드티는 예멘 내전 초기 후티족과 맞서 이들 국가에 군대를 지원하며 더욱 부를 쌓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사우디는 알-부르한 장군과도 가까워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수단 정부군과의 관계도 깊다.

이뿐만 아니라 광활한 광물자원과 농업 잠재력을 지닌 국가 수단의 뒤엉킨 정치 상황엔 러시아의 민간 용병 조직 ‘바그너 그룹’, 이집트, 이스라엘, 러시아 등도 얽혀있다.

부둣가에 모인 피난민들

NAOMI SCHERBEL-BALL/BBC
수단을 탈출했어도 미래가 불확실한 피난민들이 많다

그러나 점점 더 나빠지는 상황 속 미국과 영국 및 평화 중재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여러 외부 세력도 개입했다. 이들은 이 비극적인 내전과 민간인의 고통을 끝내고자 한 목소리를 내는 듯한 모습이다.

하편 각국 외교 당국은 사우디의 민간인 구출 노력에 감사를 표하고 있다. 지금까지 사우디 군함이나 사우디 군이 빌린 민간 선박을 타고 홍해를 건넌 이들은 100여개 국 5000여 명에 이른다.

지난 29일 벌어진 최대 단일 작전에선 2000여 명이 한꺼번에 사우디로 탈출했다. 심지어 이중엔 사우디와 앙숙인 이란 국적자도 포함돼 있었다.

사우디와 이란은 최근 들어 대사관과 영사관을 재개하기로 합의하는 등 조금씩 신중하게 화해하려는 모습이다.

수다에서 오랫동안 엔지니어로 일했다는 이란 출신의 나즐리(32)는 마찬가지로 엔지니어인 남편과 함께 제다 땅을 밟으며 “행운이다. 양국 사이에 평화가 깃들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30일 포트수단에선 또 다른 예인선이 피난민을 가득 실은 채 파도로 심하게 요동치는 바다를 가로질러 사우디 군함으로 향했다.

그곳에 탄 승객들은 슬픔과 안타까움이 가득한 얼굴로 일제히 뒤를 돌아보며 아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는 나라에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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