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적 행사의 화려한 광경은 단순히 금박을 입힌 마차와 외국 귀빈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지닌다. 바로, 사회에 간과할 수 없는 더 큰 혜택을 가져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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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 행사의 화려한 광경은 단순히 금박을 입힌 마차와 외국 귀빈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지닌다. 바로, 사회에 간과할 수 없는 더 큰 혜택을 가져오는 것이다

2023년 5월 6일(현지시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행사 중 하나일 찰스 3세 국왕과 카밀라 왕비의 대관식이 거행된다.

장엄한 광경 속에 귀중한 상징물이 등장할 이 행사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캔터베리 대주교가 집전하고 수많은 외국 왕족과 국가 원수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전체 행사가 전 세계로 방송되며 수억 명이 시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왕관을 쓴 국왕 부부는 말 8마리가 끌어야 할 정도로 금을 가득 실은 황금마차를 타고 버킹엄궁으로 돌아올 것이다. 모든 군부대에서 모인 수천 명의 병력이 국왕 부부를 호위하며, 지난 3대를 통틀어 최대 규모의 군사 퍼레이드가 펼쳐질 예정이다.

8일 월요일이 국가 공휴일로 선포된 가운데, 축제는 긴 연휴 내내 계속될 것이다. 영국과 영연방 전역에서 다채로운 퍼레이드, 공개 콘서트, 화려한 조명 쇼, 수천 건의 길거리 파티 등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진다.

이 행사의 규모가 쓸데없이 크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찰스 국왕이 영국 해역의 모든 백조, 돌고래, 고래, 철갑상어를 소유하게 되더라도, 의례적 역할 외에는 정치 권력을 거의 행사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국왕 즉위를 위해 대관식이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다. 실제로 에드워드 8세는 대관식을 거치지 않고 군주로 군림했다. 명백한 왕위 계승 1순위이던 찰스 3세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한 2022년 9월 8일, 이미 자동으로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대관식의 화려함과 격식에는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이 있다. 모든 문화권에서 각종 의례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연구에 따르면, 의례를 진행하는 행위는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인과관계에 대한 직관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들이 생일 파티를 통해 나이를 먹는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어른들 또한, 스스로 의식하지 않더라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미국에서 수행된 한 실험에서, 농구 선수가 자유투를 던지는 동영상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각 화면을 정지시킨 다음 어떤 슛이 골로 연결될지 예측하도록 요청한 적이 있다. 참가자들은 선수가 공을 돌리거나 문지르는 등 슛을 던지기 전에 습관처럼 ‘절차’를 보였을 때 더 성공적인 결과를 예상했다.

찰스 3세 대관식의 많은 부분은 그의 조부 조지 6세의 대관식과 동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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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3세 대관식의 많은 부분은 그의 조부 조지 6세의 대관식과 동일할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특정 의례를 거치는 사안에서 의례를 생략하면, 실제로 그 사안이 달성됐다는 느낌이 약화될 수 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학생들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졸업식을 치르지 못했을 때 비슷한 상실감을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인류학자인 필자는 그리스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세례를 받지 않으면 출생증명서를 받을 수 없다거나 교회에서 결혼식을 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유효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하지만 실제로 필요한 것은 의례가 아닌 법적 문서에 서명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의례의 상징성과 화려함은 그 행위를 공식적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중요한 것은 서류가 아니라 의례라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의례에서 정해진 절차를 따르지 않으면 직관이 반대 방향으로 활성화될 수 있다. 버락 오바마의 첫 취임식을 생각해 보자. 오바마는 2009년 제44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미국 헌법에 따르면 선서는 다음과 같아야 한다. “나는 미합중국 대통령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바마는 다음과 같이 선서했다. “나는 충실히 미합중국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할 것입니다.” 같은 의미를 가진 같은 단어가 다른 순서로 사용됐다. 그런데 이 사소한 오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직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 결과 오바마는 다음 날 “많은 주의”를 기울여 다시 선서했다.

언뜻, 의례와 절차에 대한 집착이 부적절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어떤 행사가 순전히 “의례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실질적인 효용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례는 외부 세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여전히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편안함을 제공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소속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의 모든 사회 제도에 스며들 수 있었다.

의례·의식이 웅장할 때 우리 뇌는 중요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려준다

집단적 의례는 사회적 접착제로 작용한다. 집단 구성원의 상징적 표상을 내세우며 사람들의 복장, 행동, 감정을 조정한다. 이를 통해 개인을 공동체로 바꿀 수 있는 일체감을 조성하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단체 의식에 참여할 때 심박수가 서로 동기화되면서 유대감이 높아진다고 한다. 이러한 효과는 의식을 수행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공동체 전체로 확대된다.

특히 국가적 의식은 이러한 일체감을 국가 전체로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국가는 실재하지 않기 때문에, 더 필요한 과정이다. 국가 구성원은 태어나면서부터 일체감을 갖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 상상력에 의해서만 결속되는 것이다. 국가는 생존을 위해 신화, 상징, 의식을 통해 끊임없이 비유적 존재 가치를 유지해야 한다.

국가 의례의 핵심은 연속성이다. 전통은 고급 와인과 같아서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높아진다.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된 전통 관습은 수많은 세대에 걸쳐 수행되어 왔으며 그 가치를 인정받아왔다. 이 때문에 의례에 변화가 있더라도 사람들은 변화가 없었고 변할 수도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버킹엄궁 관리들도 이 부분을 간과하지 않는다. 왕실 웹사이트는 대관식이 “천 년 동안 본질적 동일성을 유지해 왔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왕실의 선호도와 시대정신을 반영해 대관식의 모든 절차가 매번 점진적으로 변화했다. 찰스 국왕 본인도 대관식에서 몇 가지를 수정할 계획이다. 그러나 연속성이라는 개념은 여전히 가장 중요하다. 끊이지 않는 전통을 이어간다는 것은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이며, 과거에도 미래에도 그러할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것이다.

국가 차원의 의식은 사람들을 공동체로 통합해 유대감을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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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차원의 의식은 사람들을 공동체로 통합해 유대감을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국기를 게양하거나, 근위병 교대식을 지켜보거나, 국왕의 크리스마스 연설을 듣는 등의 전통이 모두 이런 유대감을 강화할 수 있다. 반복은 신념을 불러일으키고 격식은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제고한다. 실제 연구에 따르면, 의례에 따른 행동은 평범한 행동보다 더 특별하다고 인식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 행사는 다소 단조로울 수 있으므로 그 효과는 일시적이다. 이에, 경우에 따라 추가 요소를 사용해 사회적 접착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장엄함과 화려함이 등장한다.

왕실 의례의 호화로움과 연극적인 요소는 시대적 상징성의 아우라를 부여한다. 빛과 색채, 음악, 화려한 볼거리가 폭발적으로 펼쳐진다. 이 모든 팡파르는 우리가 세상을 판단하는 방식과 관련된 심리적 처리 과정을 활성화한다. 웅장함이 가득한 의식에 참석하면 우리 뇌는 무언가 중요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낸다. 전 세계적으로 군주를 기리는 의식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 연설보다 훨씬 더 화려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1981년 찰스 왕세자와 당시 다이애나 스펜서 왕세자비의 결혼식은 역대 가장 비싼 결혼식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들의 연간 GDP를 넘어서는 비용이 들어갔다. 그리고 2022년 영국 정부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플래티넘 주빌리(즉위 70주년)를 기념하기 위해 “한 세대에 한 번뿐인 쇼”로 묘사되는 4일간의 축하 행사를 기획했다. 의례·의식은 손상되기 쉬운 전통을 정당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의례적 화려함이 미치는 영향은 국민의 경계를 훌쩍 넘어설 수 있다. 인류학자들이 “신뢰성을 강화하는 전시 효과”라고 부르듯, 지위의 상징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우리의 머리는 노력과 가치를 직관적으로 연결한다. 막대한 비용과 노력이 들어가는 기념식은, 기념하는 대상의 중요성과 그 대상에 대한 사람들의 헌신을 가시적으로 입증한다.

러시아의 공격성이 강화되고,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고, 전 세계적 팬데믹이 발생하는 등 정세가 불안정한 지금, 영국 정부는 이러한 사회적 접착제를 사용하고 싶을 것이다. 무엇보다, 왕실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영국 왕실은 지난 몇 년간 힘든 시기를 보냈다. 앤드루 왕자는 일관되게 부인해 온 성폭행 혐의에 직면해 군 직함과 왕실의 후원을 잃었다. 전 세계가 식민주의 유산과 씨름하면서, 점점 더 많은 국가가 영국 왕실과의 관계를 끊으려 한다. 그동안 해리 왕자와 그의 아내 메건(서식스 공작부인)은 왕실 생활에서 매우 공개적으로 물러났고, 미디어 활동을 벌이면서 이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대관식은 왕실이 입지를 유지하려는 고군분투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실제로 왕실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꾸준히 감소하는 가운데, 최근 여왕의 플래티넘 주빌리와 장례식이라는 2가지 성대한 행사가 열리면서 왕실을 바라보는 영국인의 태도가 개선되고 있다.

찰스 3세 국왕의 대관식은 금세기 가장 성대한 왕실 행사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찰스 3세가 작금의 영국 사회에서 국민에게 국왕의 필요성을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될지는 지켜봐야 하겠다.

디미트리스 시갈라타스는 코네티컷 대학의 인류학·심리과학 부교수이자 실험인류학 연구소장이다. 또한, ‘의례: 무의미해 보이는 행동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방법’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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