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실기 ‘로얄 스탠다드’를 게양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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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앤티가 바부다에서 게양된 영국 왕실기 ‘로얄 스탠다드’

오는 6일 런던에선 지난해 9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뒤를 이어 공식적으로 즉위한 찰스 3세의 대관식이 열릴 예정이다. 사실 찰스 3세는 영국을 포함한 15개국의 군주이기도 하다.

하지만 얼마나 더 오래 이를 유지할 수 있을까.

‘영연방 왕국’이란 영연방에 속한 국가 중에서도 영국을 포함해 영국 국왕을 자국 군주로 인정하는 15개국을 가리킨다. 물론 그 논의 정도는 제각기 다르나, 영연방 왕국 대부분에서 현재 군주제 폐지 및 공화제 전환이 논의되고 있다.

BBC 특파원들은 이들 국가의 현지 분위기를 취재하며 과연 가까운 미래에 군주제를 폐지할 가능성이 있는지 알아봤다.

세인트키츠 네비스

보도: 셀레스티나 올루로드

크리켓 경기장은 경기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관중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세인트키츠섬 소속 여자 크리켓팀과 네비스섬 소속 팀이 맞붙은, 그야말로 지역 라이벌전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스포츠 중에서도 크리켓을 좋아하고 즐긴다. 과거 식민 지배국이었던 영국의 영향력이 여전히 강력히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세인트키츠 네비스는 대서양과 카리브해 사이에 자리한, 섬 2개로 이뤄진 국가다. 이곳은 카리브해에서 영국 식민지 개척자들이 처음 정착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독립한 지 거의 40년이 지난 지금도 세인트키츠 네비스에선 국가 정체성과 공화제 전환 여부를 두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선수들을 향한 응원과 충고의 말로 시끄러운 크리켓 경기장이었으나, 잠시 잠잠해진 틈을 타 시민들에게 군주제에 대해 물었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려는 이들은 거의 없었으나, 그 와중에 들어본 시민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샬린 마틴이라는 여성은 이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찰스 3세를 국가 원수로 인정하면 어떤 이점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중국과 대만이 영국보다 우리를 더 잘 보살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잘 모르겠어요.”

더 많은 현지인의 의견을 듣고자 해가 떨어지기 전 어느 동네 술집으로 향했다.

이곳 주인인 줄리언 모튼은 “공화제 전환은 (세상에) 우리가 준비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그러니 (공화제로 전환해) 전 세계에 우리는 우리 문제를 스스로 처리할 수 있음을 알려야 한다”며 이는 국가의 자부심이 걸린 일이라고 주장했다.

모튼의 친구라는 크리스토퍼 로버츠 또한 이에 동의하면서도, 세인트키츠 네비스는 여전히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입은 피해를 완벽히 회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즉 궁극적으로는 공화제로 돌아서야 하나, 이는 국가 현안에서 시급한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곳에선 막 이와 관련한 토론을 시작했을 뿐입니다. 이제 거리에서도 이에 대해 말하고 있죠.”

그러면서 로버츠는 바베이도스와 같은 다른 카리브해 국가들에 비해 세인트키츠 네비스는 “신생 독립 국가”라며, 변화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때 ‘작은 잉글랜드’라는 별명까지 붙었던 섬나라 바베이도스가 지난 2021년 영연방에서 벗어나 공화국으로 전환하면서 다른 영연방 왕국 국가에서도 이와 관련한 논의에 탄력이 붙었다.

그러나 이곳 세인트키츠 네비스가 공화국으로 전환하기 위해선 헌법상 국민투표를 거쳐 찬성이 더 많아야 한다.

사실 세인트키츠 네비스 뿐만 아니라 영연방 왕국으로 남아있는 카리브해 8개국 중 국민투표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곳은 벨리즈뿐이다. 벨리즈에선 국회가 공화제 전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영연방 왕국’ 15개국과 그 외 영연방 집합체 회원국 위치

BBC
영국 국왕을 국가 원수로 인정하는 ‘영연방 왕국’ 15개국과 그 외 영연방 집합체 회원국

또한 국민투표를 거친다고 해서 모든 국가의 과정이 동일한 것도 아니다.

일례로 세인트루시아, 바하마, 자메이카, 세인트키츠 네비스에서는 국민투표 결과 단순 과반이 찬성하면 된다. 그러나 앤티가 바부다, 그레나다,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에서는 3분의 2 이상이 찬성표를 던져야 하기에, 공화제 전환이 더 까다로울 수 있다.

국민투표에서 언제나 찬성이 압도적인 것도 아니다.

지난 2009년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에서는 공화제 전환을 두고 투표가 진행됐는데,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대신 대통령을 국가원수로 교체하자는 주장에 동의한 비율은 45%에 불과했다. 이는 법이 정한 3분의 2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비율이다.

즉 공화제 전환 여부는 겉보기엔 간단해 보일 수 있으나, 카리브해 국가 제 나름대로 안고 있는 여러 세부적인 문제가 있다.

호주

보도: 티파니 턴불

호주 시드니의 거리에선 새로운 호주 군주가 즉위했다는 그 어떠한 조짐도 느끼기 힘들다.

찰스 3세의 대관식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던 시기, 어느 술집에서 만난 모든 이들이 대관식이 언제인지 모른다고 답했다. 심지어 대관식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다는 학생도 있었다.

올해 나이 73세인 그레이엄은 “(영국의 대관식은 나와) 상관없다. 무관하다”고 했다. 이곳의 여론을 정확히 관통하는 발언이었다.

오는 6일 밤 대관식을 기념해 호주 전역의 랜드마크가 영국 왕실을 상징하는 보라색으로 물들 테지만, 기념행사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TV를 통해 자세히 보도됐던 앞선 왕실 결혼식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과 달리, 호주 언론 또한 이번 대관식을 그리 대대적으로 다루진 않을 예정이다.

사실 찰스 3세의 인기는 여왕보다 못할 뿐만 아니라, 이번 대관식은 호주에서 공화제 전환 운동이 수십 년 만에 가장 크게 타오르는 시기와 맞물린다.

약 25년 전 군주제 폐지에 반대했던 호주였으나, 현재 다시 한번 공화제 전환을 외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공화제 전환은 “불가피하다”고 언급한 바 있으며, 호주 역사상 처음으로 공화제를 위한 각외장관을 임명하기도 했다.

가까운 뉴질랜드의 상황도 비슷하다. 이번 주 크리스 힙킨스 뉴질랜드 총리는 자신은 공화제를 지지한다며, 언젠가 뉴질랜드가 “이상적으로” 군주제와 작별하리라 믿는다고 밝힌 바 있다.

이곳 호주에서 군주제는 순전히 의례적이었으며, 호주는 영국의 그늘 밖에서 벗어나 오랫동안 자신만의 정체성을 형성해왔다는 게 국민들의 생각이다.

또한 식민지화가 호주 원주민들에게 미치는 지속적인 영향을 군주제 폐지의 근거로 드는 이들도 있다.

거리에서 만난 에스텔 패터슨(17)은 “지금 호주는 아마 역사상 가장 반식민지적일 것”이라고 말했으며, 옆에 있던 친구 모니카 자누레비츄트 또한 “이곳(호주)에 영국 왕이 있다는 사실이 정말 이상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공화제 전환엔 적어도 몇 년은 걸릴 것으로 보인다.

우선 호주 정부는 헌법상 원주민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내용의 국민 투표를 준비 중이다.

게다가 국가원수 임명 방식에 대해서도 아직 의견은 엇갈린다. 과연 투표로 선출해야 할까, 아니면 의회가 임명해야 할까.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최근 여론 조사에서 공화국 전환에 대한 지지율이 국민투표를 통과하기엔 여전히 너무 낮게 나왔다는 점이다. 호주가 군주제를 폐지하기 위해선 우선 국민의 과반수가 찬성표를 던져야 하며, 전체 6개 주 중 적어도 4개 주가 이를 지지해야 한다.

캐나다

보도: 제시카 머피, BBC News 토론토

많은 캐나다인이 찰스 3세에 대해 품은 감정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무관심’일 것이다.

캐나다인들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겐 애정을 품었다고 할 수 있겠으나, 찰스 3세의 대관식을 앞두고 이러한 감정은 찾을 수 없다.

실제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점점 더 많은 캐나다인이 군주제 폐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찰스 당시 왕세자 부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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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캐나다 오타와를 방문한 찰스 당시 왕세자 부부

이와 관련해 가장 최근 발표된 ‘앵거스 리드’사의 여론조사에서 절반이 넘는 캐나다인들이 앞으로 입헌군주제가 향후 몇세기 동안 지속되질 않길 원한다고 답했다.

그리고 응답자 5명 중 2명은 다가오는 대관식에 별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이러한 무관심은 간소한 축하 행사 일정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수도 오타와에선 대관식 기념 축하 파티가 열리고, 랜드마크가 에메랄드 초록빛으로 물들 예정이긴 하나 열기를 느끼긴 힘들다.

여왕의 뒤를 이은 찰스 3세의 즉위는 이곳 캐나다에서 군주제를 둘러싼 논쟁에 박차를 가했을 뿐이다.

특히 퀘벡 지역에선 군주제에 더욱더 부정적이다. 영국 식민지 지배하에 불어 사용 지역이었다는 역사에서 비롯된 감정이 그 원인이다.

일례로 지난해 12월 퀘벡 의회는 의원들이 군주에 대한 충성 맹세를 의무적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캐나다가 곧 바베이도스, 자메이카, 호주처럼 공식적으로 군주제를 폐지했거나, 폐지를 강하게 원하거나, 고려하고 있다는 건 아니다.

우선 개헌하기 위해선 상원과 하원의 승인은 물론 캐나다 전체 10개 주가 만장일치로 찬성해야 한다. 대다수 정치 전문가들은 만장일치를 끌어내긴 불가능할 것으로 내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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