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한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한일 정상회담이 7일 서울에서 열렸다.
지난 3월 일본 도쿄에서의 한일 정상회담 이후 52일 만에 열린 정상회담이자 12년 만의 ‘셔틀 외교’ 복원이다.
한일 정상은 북한 핵 개발에 따른 안보 협력 강화, 반도체 공급망 공조 강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현장에 한국 시찰단 파견 등에 합의했다.
기시다 총리는 과거 한국 식민 지배와 일제 강제 동원 문제에 대해선 “역대 일본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는 입장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재차 밝히며 일본 정부 입장의 추가 사과나 후속 조치는 발표하지 않았다.
다만 “나 자신은 당시 혹독한 환경에서 많은 분이 매우 고통스럽고 슬픈 일을 겪으셨다는 것에 마음이 아프다”고 밝혔다.
12년 만의 ‘셔틀 외교’ 복원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한일 정상회담은 이번이 네 번째다. 앞서 지난해 9월 미국 뉴욕 유엔총회 약식회담, 지난해 11월 아세안 정상회의 계기의 회담, 지난 3월 윤 대통령 방일 회담이 있었다.
다만 이번 정상회담은 한일 정상 간 ‘셔틀 외교’의 복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일 간 사용되는 ‘셔틀 외교’는 양국 정상이 상대국을 방문해 만난다는 의미로, 2011년 10월 당시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의 방한 이후 약 12년 만에 재개되는 것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날 한국 방문 첫 일정으로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해 한국 순국선열을 향해 참배했다.
일본 현직 총리의 현충원 참배 역시 2011년 노다 요시히코 총리 이후 약 12년 만이다.
기시다 총리는 이후 용산 대통령실로 이동해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 공식 환영 행사를 진행한 후, 소인수 회담과 확대 회담을 진행했다.

식민 지배 ‘사죄·반성’ 표현 직접 언급은 없어
기시다 총리가 이번 한국 방문을 계기로 일본의 과거 한국 식민 지배와 일제 강제 동원 문제에 대해 직접 사죄와 반성을 언급할 것인가는 큰 관심사였다.
지난 3월 16일 도쿄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기시다 총리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포함해 역대 일본 내각의 역사 인식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말한 바 있으나 직접적인 사죄와 반성은 없었다.
이에 한국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 발표에 대한 일본 측의 호응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앞서 기시다 총리의 방한 일정이 예정보다 앞당겨졌고, 기시다 총리가 일본 내 보수파의 동향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 한국 측의 ‘성의 있는 호응’ 요청에 응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바 있었다.
이번에도 기시다 총리는 ‘사죄와 반성’ 표현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기시다 총리는 과거사 문제에 대해선 “역대 일본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는 입장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재차 강조했다.
다만 “당시 어려운 환경 속에서 많은 분이 매우 고통스럽고 슬픈 일을 겪으셨다는 것에 마음이 아프다”고 밝히며 이런 언급이 일제 강제징용 노동자의 피해에 대한 발언이냐는 질문에는 “제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시다 총리는 “한일 간에 다양한 역사와 경위가 있지만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 온 선인들의 노력을 이어받아 미래를 향해 윤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 측과 협력해 나가는 것이 일본 총리로서 저의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강제 동원 해법에 대한 한국 정부 방침이 바뀔 수 있느냐’는 일본 기자의 질문에 “바뀌지 않는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은 앞서 확대정상회담 모두 발언에서 “양국이 과거사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으면 미래 협력을 위해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 없다는 인식에서는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국 전문가단의 후쿠시마 원전 시찰 합의
한일 정상은 올여름으로 예상되는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한국 전문가 시찰단을 현장에 파견하는 데 합의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과학에 기반한 객관적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는 우리 국민의 요구를 고려한 의미 있는 조치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밝혔고, 기시다 총리도 “한국 내에서 계속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다”며 “한국 분들이 이 사안에 대해 이해해 줄 수 있도록 이달 중 한국 전문가 현장 시찰단 파견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와 관련한 안전성 담보를 위해 한국과 협의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6월 국제원자력기구(IAEA) 최종 보고서 결과에 따라 일본 국내 절차를 진행하려고 한다”고 설명하며 “그때도 한국 측과 의사소통하면서 많은 우려와 불안에 답하는 노력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일본은 아직 IAEA 외에 특정 국가에 따로 검증을 허용한 적은 없다.
한국 전문가단의 구성과 시찰 범위, 기간 등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한미일 안보 협력 중요… G7 계기 3국 정상회담에서 논의
한일 정상은 북한 핵·미사일 고도화에 대응해 한일·한미일 차원의 안보 협력 강화에도 의견을 같이했다.
기시다 총리는 이달 19~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일 정상회담을 개최해 더욱 깊은 논의를 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특히 지난달 26일 한국과 미국이 ‘워싱턴 선언’을 통해 합의한 한미 양국 간 핵협의그룹(NCG)과 관련해 “일본 참여를 배제하지는 않는다”며 가능성을 열어두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워싱턴 선언은 완결된 것이 아니고 계속 논의하고 공동 기획·실행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내용을 채워가야 하는 입장”이라며 “먼저 이것이 궤도에 오르면, 또 일본도 미국과의 관계에서 준비가 되면 언제든지 같이 협력할 수 있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공급망 협력, 한일 미래 파트너십 기금 등 지속적인 교류 의지
한일 정상은 또한 수출 심사 우대국인 ‘화이트리스트’ 복원, 한일 미래 파트너십 기금 등 지난 3월 도쿄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내용들의 이행 상황을 재확인하며 지속적인 교류 의지를 다졌다.
또 한국의 반도체 제조업체와 일본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함께 견고한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도록 공조를 강화하고, 우주·양자·미래소재·AI 등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 공동 연구를 추진하는 방안 등을 논의했다.
민간 교류 확대를 위해 수도권뿐 아니라 한일 지방간 항공 노선을 코로나19 유행 이전으로 복원하고, 청년층 교류 프로그램을 확대하기로 했다.
아울러 양 정상은 G7 정상회의 기간 원폭 피해자 추모시설인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을 같이 방문하고, 한국인 피해자 위령비를 방문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한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히로시마 피폭지를 방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