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윤석열 대통령이 한일 정상회담 이후 ‘워싱턴 선언’을 통해 합의한 한미 핵협의체인 ‘핵협의그룹(NCG·Nuclear Consultative Group)’과 관련해 일본 참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향후 한일 안보협력이 어떻게 진행될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 7일 윤 대통령은 서울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후 기자들과 만나 “워싱턴 선언은 일단 한국과 미국의 양자 간 베이스로 합의된 내용”이라면서도 “일본 참여를 배제하지 않는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어 “워싱턴 선언은 완결된 것이 아니고 계속 논의하고 공동 기획·실행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내용을 채워가야 하는 입장”이라며 “먼저 이것이 궤도에 오르면, 또 일본도 미국과의 관계에서 준비가 되면 언제든지 같이 협력할 수 있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일본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지난 7일 1박 2일 일정으로 방한해 한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지난 3월 윤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가진 것에 대한 ‘답방’이다. 이로써 12년 만에 양국 정상이 상대국을 오가는 ‘셔틀외교’가 재개됐다.
일본 참여 ‘실익’ 있나?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신설된 NCG는 미국의 한반도 핵대응 의사결정 과정에 한국 참여를 늘리기 위한 양자 간 핵협의체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단기간 내 NCG에 가입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한일 양국 간 신뢰 관계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고, 우선적으로 체결해야 할 안보협정 등 선행 과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와 별개로 NCG에 일본을 참여시켜 한미 양자 간 핵협의체가 아닌 다자간 협의체로 운영하는 것이 실효적이냐는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한일 관계 전문가인 아산정책연구원 최은미 연구위원은 BBC 코리아에 “NCG도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지금 단계에서 일본이 참여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예상했다.
이어 “NCG는 양자일 때 의미가 있는 것”이라며 “다자회의에서 한국의 발언력이 낮기 때문에 이를 높이고 한미 간 핵 기획이나 운용 관련해 긴밀하게 협의하기 위해 만든 협의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NCG 참여는 현실성도, 실효성도 떨어진다는 판단이다.
반면 안보 전문가인 박휘락 전 국민대 정치대학원장은 NCG에 일본 등을 포함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핵기획그룹(NPG)처럼 핵 운영 계획 등을 공유하는 다자 간 협의체로 발전시킬 가능성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봤다.
박 전 원장은 “한미 간에는 한미안보협의회의(SCM), 억제전략위원회(DSC) 등 (NSC가 아니어도) 다른 대화 채널이 많다”며 “NCG를 만든 이유 중에는 향후 북한의 위협이 커지면 일본이나 호주 등을 참여시켜 아시아판 NPG를 만들겠다는 구상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척 헤이글 전 국방장관 등 일부 안보 전문가 사이에서 미국과 한국, 일본, 호주 4개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핵기획그룹(ANPG)을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NCG가 미국 주도로 한미일 안보협력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중간다리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워싱턴 선언’에 명시된 ‘미국 핵 작전에 대한 한국 재래식 지원’ 등 구체적 내용이나 최근 한미일 이지스함을 통한 미사일 정보 교류, 대잠수함전 훈련 등의 정황을 참고했을 때 NCG가 “협의체라기보단 (한미) 전력 통합용”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한미일 안보협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NCG에 일본이 참여하는 형태가 아니라 NCG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3자 간 별도 협의체가 신설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일본의 역할은?
북한이 핵 위협 수위를 나날이 높여가는 상황에서 한국이 일본과의 안보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많지 않다.
최 연구위원은 “한국과 일본이 동맹관계는 아니지만, 일본의 정책과 미국의 정책이 기조적인 측면에서 함께 가는 만큼 한미일 협력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실무적 관점에서 보자면, 일본이 전범국이라는 특수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직접 공격할 가능성은 없지만, 본토에 유엔사령부와 주일 미군이 있기 때문에 (미국이 한국을 지원하거나 할 때) 물자 등 어떤 기반을 제공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전 원장은 일본의 미사일 방어 역할에 주목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바다가 있고, 일본은 (성능이) 굉장히 뛰어난 ‘해상 배치형 요격미사일(SM3)’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미사일 방어에 굉장히 유리하다”라며 “한일 안보 협력을 강화하면 일본 땅에 대기하고 있던 북한에 대한 보복력을 유사시에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하는 데 현실적인 제약도 있다.
윤 정부 들어 한일 관계 개선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과거 일본이 한반도를 군사적으로 침략함에 따라 일본과의 안보협력에 회의적인 시각이 여전히 존재한다.
국민의힘 강대식 의원실을 통해 언론에 보도된 국방대 ‘2022년 범국민 안보의식 조사’에 따르면 ‘한일 간 군사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 1200명 중 절반 이상인 58.7%가 ‘필요하다’고 답했지만, 한반도 위기 상황 발생 시 일본의 대응을 묻는 질문에서 ‘일본이 한국에 우호적일 것’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28.8%에 그쳤다.
‘한미일’ 대 ‘북중러’ 진영 구도가 강화함에 따라 중국과 러시아의 견제도 예상된다.
주중 한국대사관은 최근 일부 중국 언론이 윤 정부 외교정책과 관련해 근거 없는 비난을 하고 있다며 항의 서한을 보냈다고 지난 5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