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촉발된 전쟁은 수많은 사람의 일상을 앗아갔다. 지난해 12월 한국에 온 세르미나즈(세미) 자브레일(33)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BBC 코리아가 만난 세미는 관절이 고장 난 의족을 착용한 채 지인의 부축을 받아 걷고 있었다.
러시아 남서부 자치공화국 다게스탄 출신인 세미는 2017년 교통사고를 당해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온몸의 뼈가 부러지는 심각한 부상에 일주일간 혼수상태에 빠졌지만, 기적적으로 깨어났다.
세미는 지인들이 돈을 모아 마련해준 의족을 착용하고 소셜미디어에 사진을 올렸는데, 곧 팔로워가 수십만에 이르는 인플루언서가 됐다. 그중에는 그를 지지하는 사람도, 그의 거침 없는 언행과 문신 등 과감한 스타일을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다.
세미는 인플루언서로 이름을 알리게 되면서 러시아 보그와 아디다스 등 유명 패션 브랜드들과 협업하게 됐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모든 활동이 중단됐다. 많은 브랜드들이 러시아에서의 활동을 중단하거나 아예 러시아에서 철수했기 때문이지만, 자신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전쟁 반대 관련 글 등을 문제 삼은 곳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세미는 “후회하지 않는다”며 “합리적이고 건강한 사고를 지닌 사람이라면 전쟁에 무관심할 수 없고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장애가 있거나 몸이 아픈 사람들은 전쟁에 특히 취약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러시아에는 치료제가 없거나 가격이 너무 비싸졌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한번 상상해 보세요. 곧 죽을 수도 있고, 화학 치료 부작용과 질병을 안고 간신히 살아가는데 약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을요. 너무 불공정하고 잔인하지 않나요?”
세미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해 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신체 일부가 절단된 환자들이 느끼는 환지통을 매일 겪고 있으며, 골반뼈에 금이 가고 탈장을 일으켜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의족은 무릎 관절 부분이 망가져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다. 세미는 러시아에서 새 의족을 주문했지만, 도중에 전쟁이 발발하면서 의족을 수개월 동안 기다렸지만 결국 받지 못했다고 했다.
세미는 결국 러시아를 떠나 한국에 오기로 했다.
세미는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로 정치적 발언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많은 사람이 친절하고 장애인 시스템도 잘 돼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굉장히 무섭고 어려운 여정이었지만, 러시아에 있는 게 더 위험하다고 느꼈어요. 러시아에서는 전쟁에 반대하더라도 침묵해야 해요. 하지만 저는 진실과 정의의 편입니다.”
현재 세미는 한국에 난민신청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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